6주차 마가복음 말씀묵상
첫째날 마가복음 말씀묵상
말씀의 힘
1.말씀의 능력 - 나귀 새끼의 주인(11:1-11)
2.말씀의 침투력- 라합(수2:1-24)
3.말씀의 파괴력- 로마 백부장(15:39)
오늘 우리가 묵상하게 되는 본문은 이름도 밝히지 않고 등장하는 나귀의 주인이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 앞에 순종하였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는 예수님의 계획에 차질이 없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아마도 예루살렘에 사는 익명의 제자일 것이다. 놀랍게도 말씀의 능력은 예루살렘에 이제 처음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제자가 예비되도록 하였다. 이것이 능력이다. 라합은 하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간담이 녹았다고 말한다. 이것이 말씀의 침투력이다. 그 강력한 성, 여리고에 이미 말씀이 들어가서 라합이라고 하는 예비된 주의 백성을 준비시키는 능력이 말씀에 있다. 뿐만 아니라, 로마 백부장은 주님의 행동으로 헌신하는 죽임당함인 십자가 사건을 총 지휘하다가 결국 그 예수님의 강력한 복음 앞에 굴복하게 된다. 이것이 말씀의 파괴력이다. 놀라운 것은 이제 우리가 이 강력한 힘을 노출하여야 할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이 말씀의 힘을 드러내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명령이다.
둘째날 마가복음 말씀묵상
열매있는 교회
1.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는 장사하는 교회이다(11:12-19)
2.열매 있는 무화과 나무는 믿음, 기도, 용서로 이루어진 교회이다(11:20-25)
3.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는 뿌리채 말라버린다(11:21)
나는 열매 있는 교회인가? 아닌가? 이것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내가 기도하는 집인가 장사하는 집인가를 보면 안다. 진정 나의 인생관이 나에게 유익을 끼치지 위해 장사하는 인생인가 기도하는 인생인가를 우리는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열매는 우리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기준은 내가 눈에 보이는 기준들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 기도, 용서 같은 기준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사람인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진정 주님의 저주를 받은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는 뿌리 채 말라 버렸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본질을 상실한 교회는 결국 말라 버린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이제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지난한 몸부림으로 오늘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셋째날 마가복음 말씀묵상
진전한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11:22-25)
1.믿음과 기도를 상호 연결하라
2.믿음과 용서를 상호 연결하라
3.용서와 기도를 상호 연결하라
4.믿음, 기도, 용서를 상호 연결하라
놀랍게도 믿음, 기도 그리고 용서를 연결한 분은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진정 우리 자신에게 이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믿고, 기도하여야 하며, 기도한 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상호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진정한 기도는 믿음이 연결되어 있는 간구이다.
기도하는 내가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대상이 있다면 우리의 기도는 그 능력을 상실할 것이다. 진정 기도가 능력을 발휘하려면, 우리는 기도하기 전, 용서하여야 한다. 기도한 후, 용서하여야 사람들에게 용서를 선포하여야 한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서게 만드는 힘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이웃을 용서하는 일이 거의 같은 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것이 같은 것임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진정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여야 한다. 이 세 가지의 기준이 가장 잘 조화를 이룬 분은 우리 예수님이시다. 그분의 기도생활과 인간관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운다.
넷째날 마가복음 말씀묵상
하나님의 인내의 한계
1. 우리의 변화가능성을 믿어주시는 하나님(12:1-5)
2. 최후까지 우리를 믿어주시는 하나님(12:6)
3. 결국 변화하지 않으면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시는 하나님(12:9)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산업의 주인도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인이신 하나님이 포도원의 소출을 원하는 것은 당연한데 우리는 그것을 주인에게 바치지 않으려고 하는 포도원의 소작인과 같다. 그래서 주님이 보내신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을 잡아 죽은 이스라엘 사람과 같은 실수를 우리는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인은 끝까지 우리를 믿으며, 아들을 보내면 영접할 것으로 여기는데, 소작인들은 그 아들이 상속인이기에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악한 생각이었다. 결국 아들을 죽인 그들을 하나님은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신다. 그 날이 오기전 우리는 회개하고, 주님에게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다섯째날 마가복음 말씀묵상
세상과 구별하라
1.가이사와 하나님의 것은 구별되어 있다(12:17)
2.죽은 자의 하나님과 산 자의 하나님은 구별되어 있다(12:27)
3.율법과 사랑은 구별되어 있다(12:29-31)
우리는 이제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할 사람들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우리는 세상과 구별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제 세상을 향해 그들을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우리의 영역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정신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는 말에 들어 있는 정신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이 세상의 죽은 논리를 가지고 덤벼들어선 안된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하늘의 역사는 하나님의 언어로 산 자가 되어 이해하려고 하여야 한다.
율법을 가지고 인간을 판단하거나,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사랑으로 인간을 이해하여야 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접근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인간을 하나님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러한 마음이라면 우리의 섬김과 봉사는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판단하심에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다. 놀라운 것은 그분의 판단은 정의롭다는 것이다. 서기관들이 자신들이 자료를 통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예수님은 동의하시지 않는다. 이것은 마태복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주님은 외식하는 행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 주님은 중심을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헌금의 액수에 놀라는 분이 아니시다. 헌금에 담긴 마음의 크기를 보는 분이시다. 우리의 예배와 헌신, 섬김과 봉사에 담긴 마음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가?
일곱째날 마가복음 말씀묵상
종말의 때에 있을 파괴들
1.성전 파괴(13:2)
2.신앙 파괴(13:5-6)
3.평화 파괴(13:7-8)
4.가정 파괴(13:12-13)
우리는 말세를 살고 있다. 이것은 분명하다. 이미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 현상들이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신앙이 미혹보다 크지 못하여 점차 그 색이 바래지고 있다. 세상에 전쟁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것들보다 더 구제적으 로 우리에게 오늘날 다가온 절망은 가정이 파괴되는 점이다. 더 이상 혈연이라는 가족의 의미가 절대적 가치가 아님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때에 복음에 더 집중하고, 근본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뿌리를 찾아주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