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실 때 주시는 대로 심어야 거두리라.(막2:14-17)
이재흔 목사 저. 24/10/06.
우리에겐 건강검진이란 아주 좋은 제도가 있어
아프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건강을 체크 할 수 있다.
그 경우 외엔 아프기 전엔 병원에 가지 않으리라.
자신이 병에 걸린 것을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누구도 알지 못한다.
증상이 나타나도 자신의 경우가 아니라고 왜 나야만 하냐고 여간해선 인정하기 싫어한다.
죄에 대해서도 지적받기 전엔 그 일이 범죄임을 모른다.
관습처럼 몸에 배어있다면 더욱더 인정하기 어려운데 회개를 어떻게 하나.
1)예수를 구주로 믿으며 사는 것은 내가 의로워서일까?
마태의 이름이 레위인데 직업이 세리였다 그런데 주가 부르셨다.
세상은 세리라 하여 그를 죄인이라 하지만 그는 물질에 얽매인 가운데 살고 있지만 공의를 사랑하기에
그의 의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람이 정한 율법의 굴레 안에서 의로울 뿐이기에
예수는 자신의 의보다 복음명령에 순복하는 생명길로 행하라고 그 길이 생명 길이라고 부르셨다.
레위는 그대로 영접하고 집으로 모셔 내주하시는 주의 은총을 누리는 복을 누린다.
예수를 믿거나 따르는 자는 예나 지금이나 두 부류로 나뉘리라.
무엇인가 얻을까 하여 모여드는 자들과 하나님의 공의를 찾기 위하여 모이는 그 둘이다.
무엇인가 얻을까 하여 모이는 모두는 환자고 죄인이리라.
하나님의 공의를 찾는 자는 조금 낫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성령의 인도받기 전의 우리는 모두 영적 소경이고 문둥이고 귀머거리요 중풍병자다.
은혜의 역사가 내게 나타날까 하여 베데스다 못가의 환자처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택하여 고치시고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게 하려고 내주하셔서 함께 해 주신다.
그 사랑 앞에 내 생각과 지식과 유익을 앞세우면 되겠나?
2)예수님의 복음과 내 생각 중 어느 쪽을 따라야 할까?
예수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했으니 예수를 믿는다면 하나님을 믿고 있음이다.
믿음의 주는 예수보다 하나님이 먼저가 분명하고 하나님의 언약인 복음을 믿는다는 말이 분명하다.
복음은 죄의 소욕을 다스리라 함이고
하나님의 복음능력은 죄의 소욕을 다스리려는 자에게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하심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람이 할 수 있게 하심을 믿고 다만 순종할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은 어떤 표현이 아닌 삶으로 그냥 드러난다.
그러므로 복음에 순종하면 자신의 믿음이 필요없이 그냥 믿어지는데 왜 의심하고 믿는다고 난리인가?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천지를 창조했다고 하셨는데 누구에게 이 말씀을 했나?
당연히 이 글을 쓰고 읽는 나와 당신인데 누구를 위해 천지를 창조했고 누구에게 맡겨 나타내라 했나?
결국 나와 당신이란 말인데 할 수 없는 일을 시키는 하나님을 당신은 왜 아버지라 부르는가?
죄의 요구를 다스리고 이겨줬다고 예수를 구주라 부르는데 예수는 왜 십자가에서 죽었을까?
우리 죄를 사해주려고? 아니다 분명히 이길 수 있으니 복음에 순종하여
죄의 요구에 타협이나 굴종하여 종이 되지 말고 치료받고 승리의 찬양을 하라 죄의 요구를 이겨주었다.
오늘의 말씀 : 주실 때 주시는 대로 심어야 거두리라.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호흡을 거두시기까지 따질 것 없이
죄악의 욕구라는 질병에게 공격당하며 살아가는 죄인 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이 땅에서 천국을 이루었다던데 그들에게 욕심이 남아있는 한 아직 죄인이다.
신앙의 길에서 내가 할 수 있고 또 한다하는 생각을 주님 앞에 겸손히 내려놓자.
그렇게 하라고 찾아와서 구주가 되어주신다.
종교의 헛된 허울을 벗어버리고 신앙의 의를 입자.
오직 기쁨과 감사로 여호와를 찬양하면 이루리라.
할렐루 할렐루야!(성경 본문을 꼭 읽어봅시다.)
첫댓글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잠 5:23).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잠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