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시는 글은 📸 스마트폰(smartphone) 화면으로 볼 수 있게 조정하였습니다.
🎧로마서 15*건강한 비판
로마서 2장 1–4절 / 이찬수 목사
지난주 말씀드린 것처럼 이 로마서 1장은 그 대상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을 마음에서 쫓아내 버린 이방인 인들을 겨냥해서 쓴 책이고, 로마서 2장은 그 대상이 유대인들 하나님 잘 믿는다. 그렇게 하나님 잘 믿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 마음에 복음을 거부하는 이 복음이 없는 유대인들을 겨냥해서 쓴 책이다. 이렇게 제가 설명을 드렸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로마서 2장에 들어가서 보면은 2장1절부터 3장8절에 이르기까지 이 유대인들의 문제점들을 아주 신랄하게 지적하는 내용들이 열고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2장 말씀을 묵상 하다가 문득 발견한 게 이렇게 수 없이 열고 되는 많으니 유대인들의 문제점들이 일치되는데 그중에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게 뭐냐 2장1절을 보십시오. ➤“1 그러므로, 오! 판단하는 사람아, 네가 누구이든 변명할 수 없나니 이는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들을 행하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서 네 자신을 정죄하기 때문이라.” 제일 먼저 지금 지적되는 유대인들은 문제점은 뭐라고 그럽니까? 남을 판단하는 패도 남을 비판하는 제도 이게 문제라고 가장 먼저 추적하는 겁니다. 그 제가 이 내용들을 묵상하다가 생각이 뭐냐면 그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 있었는데 하필 가장 먼저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이걸 가장 먼저 지금 여기 필역하고 있을까? 혹시 이게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시기에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니까? 남을 비판하고 수긍 거리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는 이게 생각보다도 중요한 문제로 그렇게 여기시는 것은 아닐까? 제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보니까요?
로마서 14장10절에 판단에 관련해서 심각한 말씀이 있어요. ➤“10.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무시하느냐?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리라.” 이게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게 이게 우리 생각보다 좀 심각한 거 아닙니까? 그러고 보면은 제가 앞에서 로마서 1장29절부터 하나님은 그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하나님을 쫓아내 버린 그런 인생들에게서 나타나는 수많은 그 죄악의 열매들이 쭉 열고 되는 그 말씀들 가운데 어떤 항목이 나오면 보니까 ➤“29. 그들은 곧 모든 불의와 음행과 사악함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하며 시기와 살인과 논쟁과 속임수와 적개심으로 가득하고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뒤에서 헐뜯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업신여기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한 일들을 꾸미는 자요,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자요, 31. 지각이 없는 자요, 언약을 어기는 자요, 본성의 애정이 없는 자요, 화해하기 어려운 자요, 긍휼이 없는 자라.”
교회당 안에 난무하고 있는 이게 뭘 의미 하느냐? 제가 이걸 보면서 깨닫는 게 뭐냐면? 예수님 믿는다고 하는 우리가 은혜 아래에 흠뻑 젖으면 우리 굉장히 고상한 사람이 되는 걸 느낍니다. 그러나 은혜를 못 받으면 하나님의 은혜와 단절이 되면 단전 될수록 우리 다 예수님 믿는 예수님 안 믿는 사람보다도 훨씬 더 저질이 되는 그런 걸 참 많이 느껴요. 제 자신을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제가 그 목사라고 하는데요. 제 스스로를 이렇게 돌아보면 참 은혜에 아래 흠뻑 조절 때는. 제가 막 정말 제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이게 막 천사 같을 때가 있습니다. 안 믿으시는데요. 저도 간혹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인데 불구하고 은혜에 공급을 못 받으면 제 스스로 생각할 때 이게 무슨 목사야. 이게 어떻게 목사가 이런 저급한 생각에 빠질 수 있냐? 여러분은 모르실 지만 저는 저이니까 그거 아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제 인격이 있다면 제게 여러분이 흠모할만한 어떤 그리스도의 어떤 닮은 뭐가 있다면 그건 저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고 은혜의 힘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자연인 목사는 절대로 믿으시면 안 됩니다. 목사 믿었다가 피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잖아요. 전 믿으시면 안돼요. 제가 어떻게 돌변 할지를 모르는 것은 그 원천이 저 내면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은혜에 공급이 있을 때에 목사도 목사다워지는 거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꾸 여러분이 지금 수근, 수근 하게 좋아하고 수근, 수근 하고 비방하기 좋아하고 남 헐뜯는 일에 시간을 잡고 쓰고 카톡으로 지금 그런 일을 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지금 영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 절대로 정상이 아니에요.
오늘 이 비판에 대해서 좀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한 가지 이 본문 말씀을 가지고 오해 하시면 안 돼는 게 뭐냐 하면은 지금이 본문 말씀은 유대인들이 비판하고 판단하는 그 자체를 가지고 지적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구약의 그 선지서 같은데 보면은 비판하고 정죄하지 않는 걸 가지고 얼마나 신랄하게 꾸지람 하시는 대목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 56장10-13절에 ➤“10. 그의 파수꾼들은 눈먼 자들이요, 그들은 다 무지한 자들이며 다 말 못하는 개들이므로 짖지 못하도다. 그들은 잠자고 눕고 졸기를 좋아하니 11. 참으로 그들은 탐욕이 심하여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개들이요, 깨닫지 못하는 목자들이라. 그들이 다 자기 길만 바라보고 저마다 자기 구역에서 떠나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12.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니 우리가 독주로 우리 몸을 가득 채우자. 내일도 이 날과 같고 또 더욱 풍성하리라, 하느니라.”
지금 백성들이 타락하고 변질 했는데 지도자들이 그냥 눈이 어두워 가지고 그것을 꾸짖지 않고 비판하지 않는 이것을 가지고 무섭게 지금 이 통해 같은 개, 벙어리 개 같은 존재라고 이런 무서운 지적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비판 자체를 금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읽은 2장1절 말씀을 가지고 그냥 목회의 유리하게 하기 위해 가지고 보셨지요. 교회당 와서 비판하면 안 됩니다. 특히 주에 종은 비판하면 안 됩니다. 특히 담임 목사는 함부로 대들다가는 저주가 임합니다.
내가 만약에 이렇게 설교를 하시면 여러분은 그것을 막을 벌벌 떨면서 아멘! 하시면 안 돼요. 노멘! 말해도 안 되는 설교를 하니까? 아닙니다. 건강한 교회 일수록 건강은 비판이 필요해요. 우리 모두는 다 현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건강한 비판을 통해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 병든 비판이 문제지 건강한 비판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비판] 이라는 단어를 사전을 찾아보니까요. [사물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 비판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얼마나 좋은 등목입니까? 누구라서 여러분 평생 올바른 것만 갑니까? 누구라서 평생 천사 같은 생각만 하고 삽니까? 실족 하고 자빠지고 목사 아니라면 엉뚱한 길로 빠지고 이러기 때문에 인간은 비판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은밀히 보면은 지금 로마서 2장에서 바울도 유대인들을 향하여 무지막지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비판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고 이 병든 비판 이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올바른 의미에 비판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는 좋은 비판자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면 그것은 복 된 거예요.
우리 교회당 부교역자들은 다 알고 있지만 저는 무슨 일로 교역자들이 회의 자료를 가지고 찾아오든지 저는 항상 대화의 마지막은 기승전결(起承轉結)이 뭔지 아십니까? 마지막으로 나가게 되는 묻는 거예요? 혹시 당신이 가까이서 보기에 내가 그 목회하는 목회자로서 잘 못하는 거 뭐 없나? 그 지적해 줄 거 뭐 없나? 또 내가 지금 로마서를 하고 있는데 혹시나 지금 로마서의 설교를 잘못하는 것은 없나? 이걸 꼭 물어요?
우리교회 오래 있던 교육자들은 이제 회의 주제가지고 회의 오면? 마지막 네 번째 질문을 자기가 생각하고 온대요. 심지어는 올해 지금 신학교 처음 들어 한 완전히 햇병아리 우리 전도사님을 만나도 내가 마지막에 묻는 건 이거예요. 내 설교를 좀 지적해 봐라 당신 신학 공부 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면요 대부분의 신학생들을 다 긴장을 해요. 뭐 긴장을 하면서 아니 제가 어떻게 목사님이 설교를 비판을 하겠습니까?
그런 것 같은 으면서 다 해요. 아 물으시니까 마지못해 드시는데 그러면서 큰 목사님은 이렇게 하시면 좋겠다고 그 저희 교회는 1부 예배가 마치고 나면 교역자들이 3-4명에게 매일이 와요. 비판의 메일이 와요. 그 본문을 그렇게 해서 하시면 됩니까? 그렇게 메일 아까 1부 마치고도 2-3명이 메일 와서 그것을 제가 보다가 나중에 2부 예배 마치고 전화 통화하면서 같이 이걸 의논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병든 비판을 보니까 특징 두 가지가 정리가 되어요.
첫 번째 병든 비판의 특징이 뭐냐?
이 교만이나 우월감으로 하는 비판 이것이 병든 비판이 되는 거요.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봤지만 로마서 2장 1절에 나오는 판단하다 그 할 때 이 판단 하다는 이게 그 법적 용어라고 그래요. 자기는 재판장에 자리에 앉고 상대방은 죄인의 자리에 앉혀 가지고 그렇게 행하는 비판이 병든 비판이라는 거요. 그 당시 유대인들은 자기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 것이 이게 너무 강해 가지고 자기 민족 외에는 나머지는 다 이방인들은 그 인간도 아니에요.
오죽했으면 이방인들 생각에 그 당시 이방인들이 생각할 때 저 쓸데없는 이방인들을 왜 만들었을까? 아 하나님이 지옥의 불소시게 깜으로 만들려고 이 이방인들을 만들었구나? 이런 교만한 생각을 우월감을 가지고 있던 게 이 유대인들이니까 그런 교만을 가지고 하는 비판은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참 가슴 아픈 것은 교회의 중직자들 중에 같은 목사들 중에 이 유대인의 교만이 이런 교만을 가지고 비판하는 일들이 교회안의 의외로 많다는 거예요.
이런 교만이나 우월감을 갖고 하는 비판이 얼마나 이게 무서운 거냐면 제가 앞에 설명해드렸던 로마서 14장10절을 다시 보십시오. 왜? 이런 비판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는 비판이냐? ➤➤“10.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무시하느냐?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리라.” 인간이 여러분 우리가 남을 비판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이런 그 우월감이 교만을 가지고 하는 비판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병든 비판의 특징이 하나 더 있는데요?
자기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비판이 그것입니다. 로마서 2장1절 보십시오. ➤“1. 그러므로 오! 판단하는 사람아, 네가 누구이든 변명할 수 없나니 이는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들을 행하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서 네 자신을 정죄하기 때문이라.”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나요? 상대방이 잘못하는 거 저희가 정확하게 알고 정확하게 판단해 줬는데 왜 자기는 똑같은 잘못을 저지릅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 비판의 잣대를 상대 밖에만 돌리고 자기에게는 적용하지 않으니까 이런 얘기 좀 나는 거 아닙니까? 2-3절도 마찬가지예요. ➤“2. 그러나 그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3. 오 그런 일들 행하는 자들을 판단하고도 같은 일들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사람이 할 때는 분명히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왜 같은 일을 행하느냐? 이 비판을 자기야 에게는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 결정이 내게 없다면 그게 뭔지를 모른다면 상대방의 결점이 그렇게 잘 보이게 했냐구요. 내가 그 결정을 행하기 때문에 익숙하니까 비판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누구를 비판할 때 항상 우리는 그 비판을 자기에게도 적용을 해야 합니다. [너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야기하면서 그게 돌아서고 내 귀에도 들려 진다는 거 이걸 기억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왜 중요합니까? 여러분 후에 자기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상대방만 타켓 하는 비판이 이게 왜 위험 하냐?
여러분 지난번에 제가 로마서 1장을 그 설교할 때 이 하나님의 진노의 양상을 3번의 걸쳐서 [내버려 두사] [내버려 두사] [내버려 두사] 이걸로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자 그렇다면 [내버려 두지 않으사 내가 목사데 목사답지 않은 짓을 하는 동시에 하나님이 내 버려두지 않으시고 매를 들어 징계 하시면 그래서 내가 고통을 느끼면 그것은 복이라는 거예요. 아무리 타락한 짓을 하고 저질러도 들키지도 않고 고통도 없고 하나님의 매도 없고 그러면 끝에 가서 완전히 거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수치의 자리에 빠지는 거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여러분에게 매를 드신다면 그건 복이에요. 변장 하고 찾아온 복 이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겪는 고난입니다.
지난번에도 그 얘기를 한번 드렸는데요. 이제 오늘 어떤 분이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는데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가 똑 부러져 버렸어요. 그러면 이제 아파 가지고 응급실로 달려가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제 응급실에서 카톡을 해요. 순장님에게 “순장님 다리가 부러졌어요. 아파 죽겠어요. 빨리 낫도록 기도 해 주세요.” 그러면 순장님은 다른 순원들에게 또 비상 연락해서 그 자매님이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기도합시다. 그리고 부러졌던 다리가 또 깨끗이 치유가 되요. 그래서야 역시 기도가 놀랍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감사 헌금을 드리는 거 아닙니까? 자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게 뭐 모순이 뭐예요?
그 하나님은 병주고 약주고 하는 분입니까?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리를 안 뿌려 지도록 해줘야지 괜히 남의 다리 뚝 부러지게 해놓고 막 기도하면 또 막 고쳐 주시고. 또, 감사한 헌금 챙기고 아 하나님은 병주고 약주고 하는 분입니까? 그게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제 이 저에게 이런 아픔 저는 고통을 당해 가지고 눈물로 기도 부탁하러 오시는 분에게 꼭 해 드리는 말이 있습니다. “성도님 이 문제가 해결되도록 기도 해드리겠습니다. 그 이전에 하실 일이 있습니다.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가 뿌려지는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무슨 메세지를 주기 원하시는 지를 찾아 내셔야 됩니다. 내버려 두지 않은 다리를 부러뜨리는 일속에서 내게 주시는 경고가 뭔지? 깨달아 서야 됩니다.”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요. 거기서 아무런 교훈을 못 찾는 사람이 고생만 실컷 하고 이게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로마서 2장으로 들어가서 더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예요. 자기 다리 뿌려지는 고통을 통해서도 교훈을 찾아내는 게 지혜롭다면 더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다리가 부러진 게 아니고 지금 옆에 있는 남의 다리가 뿌려진 그것을 보고 내 교훈으로 삼으면 그 지혜 아닙니까? 로마서 2장에 나오는 유대인들이의 의식이 그거라는 거요. 1장에 나오는 하나님 알지 못하는 자들의 엄청난 변제를 보면서 남 욕이나 할 줄 알았지 이거를 내 것으로 소화하는지를 못한 거예요. 이게 남만 비판하고 자기에게 적용하지 않는 사람의 어리석음이에요. 제가 이걸 왜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한 4-5년 됐습니까? 어느 해인가 막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한꺼번에 이런 저런 사건 사고로 우리를 혼미하게 만든 그런 때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렇게 유명한 어떤 목사님이 갑자기 성추행을 해가지고 실족하는 일이 있고, 이런 일이 있고 또 좀 있으니까 어느 목사님이 또 그 교회당 공금 문제를 못 해결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다가 감옥으로 가시고 막 이런 일도 일어나고 그래서 혼미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우리 목회자들은 3355 그 문제를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비판을 많이 했습니다. 어떻게 목사가 이룰 수가 있느냐고? 어떻게 그 여성도를 성추행 할 수가 있느냐고? 그러면서 비난을 많이 했는데요. 그 즈음에 제가 전체 교육자들은 모아놓고 무서운 경고의 메시지를 우리 교역자들에게 제가 던져야 하면? 그 사건을 비판해야 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것은 일벌백계(一罰百戒) 하는 거 맞다. 그러나 비판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이 비판을 내게로 돌려야 된다. 이게 무슨 말인지를 제가 이제 그 이렇게 그 다윗을 가지고 설명을 보통 자주 하는데요.
여러분 성경을 하나님이 왜 주셨습니까?
다윗이 남편이 있는 그 부인을 막 그냥 성폭행해서 뭐 임신을 시키고 막 살인을 저지르고 하는 그걸 여기다 왜? 기록했습니까? 또 여러분은 성경은 왜 읽으세요. 표정이 안 읽으신 것 같아서 내가 참 난감한데요? 그 Q.T를 왜 하세요? 오늘 여러분이 Q.T 하려고 본문을 딱 보았더니 다윗이 이제 막 여자를 성폭행하고 막 그 남편을 죽이고 하는 그 대목이 Q.T 본문이에요. 그러면 여러분이 이걸 어떻게 적용 압니까? 오늘의 적용/ 다윗 이 자식 나쁜 자식이다.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나?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놈, 이게 큐티 적용입니까?
하나님이 다윗의 범죄를 기록하게 할 때는 다윗을 욕하고 끝내라고 주신 게 아니고, 그 사건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이 이일을 통해 무서운 경고를 주시는가? 나도 다윗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해야 되느냐? 이거를 위해서 주신 거 성경 아닙니까? 제가 우리 교역자들에게 그때 던졌던 메시지 게 이거예요. 똑같아 어느 대형 교회 목사님이 성폭행을 했다. 어는 대형 교회당 목사님이 공금을 횡령했다. 이런 일들이 터지면 그 사람 그 나쁜 인간이 그 목사도 아니네, 비난하고 끝내면 안 되고 거기에서 그것을 내게로 이것을 흡수해야 되는 거예요.
제가 왜 이걸 심각하게 생각하는가? 저도 기억이 되는데요. 저도 사실 비난을 많이 했거든요.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요즘에 지금 비난 가급적이면 하지 않습니다. 왠지 아세요? 제가 그렇게 막 그 목사님들 비난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제게 경고를 주셔서 경고를 무슨 경고를 주신 것을 전에 말씀드렸지요. 그 다음은 뒤 차례야! 제가 여러분 그 다음은 이 차례라는 하나님이 경고의 말씀이 왜 제게 두려움 인지 아십니까?
이제 병든 비판의 두 가지 양상이 있다면? 이번에는 이제 건강한 비판
그럼 건강은 우리가 취해야 될 건강한 비판은 뭐냐? 이것도 두 가지로 정리해 봤는데 첫째로, 뭐가 건강한 비판이냐? 복음이 지닌 긍휼의 정신으로 하는 비판이 건강한 비판 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4복음서를 읽어 보세요. 집에 가셔서 쭉 읽어보시고 그 중에서 이제 예수님이 이제 기적을 베풀어 주시고 병을 고쳐 주시고 또 귀신을 쫓아내 주시고 이런 이적을 베푸시는 기사들을 읽어보면? 그 기록한 내용의 공통된 단어가 하나씩 붙어 있습니다. 그게 뭐냐? [불쌍히 여기사] 영어로 보니까 had compassion라는 단어요. [동정심이 있었다.]
몇 구절만 보여드릴게요. ➤누가복음 7장13절 “13 [주]께서 그녀를 보시고 그녀를 불쌍히 여기사 그녀에게, 울지 말라, 하시고” ➤마태복음 20장34절 “34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니 그들의 눈이 즉시 시력을 받고 그들이 그분을 따르더라.”
여러분 시간이 없어서 다 더 이상 못 들어 드리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지워 해주시고 병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 주시는 그 모든 주님의 그 동력은 그 일로 고통 않은 인생을 향한 [불쌍히 여기사] [동정심이 있었다.] 여러분 이게 복음 되신 예수님이 라면 우리가 남을 비판할 때 무슨 정신으로 해야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남을 비판할 때 어떤 마음으로 저 사람이 지금 옆길로 나가고 타락의 길로 나가고 변질 한 걸 비판할 때, 그 비판 속에 그 형제에 대한 고통 아픔을 느끼는 이 아픔으로 다가가는 게 건강한 비판이라는 거요.
오늘 교회당 안에서 난무하는 비판은 이 [불쌍히 여기사]가 담겨있지 않은 비판이 대부분입니다. 이게 가슴 아픔 일 아닙니까? 그렇지만 늘 그 주님 앞에 구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않아요. 제가 많은 우리 부 목사님들을 생기다 보니까 비판해야 될 때가 많아요. 담임목사 역할이 그거 아닙니까? 화요일마다 지적하고 야단치고 이런 일이 많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뭘 구하느냐? 하나님 사랑하지 않고는 비판하지 않게 해주세요. 이게 참 실천이 어려워요. 너무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구하고 또 구합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비판하지 않게 해주세요.
여러분의 경우는 한 가지 도전을 드릴까요? 여러분 이번 한 주간 동안 이 복음에 능력이 복음이 깊던 이런 삶을 한번 살아 보기를 원하십니까? 별로 안 원하세요. 복음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을 한번 살아 보기를 원하십니까? 한 가지 실천 하시면 되요. 뭘 실천하는 야 함 따라해 보십시오. 사랑하지 않으면 비판하지 말자 사랑하지 않으면 비판하지 말자 저도 한 주간 여러분도 한 중안 한번 실천해 보시겠습니까? 사랑하지 않으면 비판 하지 않겠다면 이 결단 이 의지 속에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으로 인도해 주시는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어떤 비판이 건강한 [비판]입니까?
상대방을 깨우치고 상대방을 살리기 위해 사는 비판 이게 근 나는 비판 이라는 겁니다. 지금 바울이 로마서 2장에서 유대인들을 향하여 실라한 비판을 붙고 있는데 그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가? 로마서 2장2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2. 그러나 그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바울이 왜 유대인들을 그렇게 신랄하게 비판한다고? 유대인들이 지금 저대로 내버려 두면 저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방치할 수 없는 사랑의 마음으로 신랄하게 비판한 되는 거예요. 바울의 비판이 유대인들의 비판하고 결정적으로 다른 차이가 있다면 이거 하나에요. 여러분 우리에게 이 애절한 마음이 있습니까? 오늘날 교회가 병들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교회 안에 이 바울의 애절한 상대방을 깨우치고 상대방을 살리고자 하는 이런 절박한 마음으로 하는 비판은 눈 씻고 찾아보기가 어려운 게 우리 현실 아닙니까?
자 그러면 이제 우리가 병든 비판은 모으며 굉장한 비판은 뭐며 이거 알았는데 문제는 뭐에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겁니다. 오늘 이거 뭐 필기하고 받아 졌고 머리 끄덕거리며 오신 거 아니잖아요. 그 어떡하면 이제 내의 익숙한 병든 비판은 내려놓고 어떡하면 원래부터 건강한 바울의 비판을 나도 받을 수 있느냐? 바울을 보시면 되요?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한 여러분 다 하시지만 바울이 악랄한 그렇게 굉장한 비판자 하였습니까? 원래부터 그래서 사랑의 사도입니까? 아니잖아요. 바울은 안질이라는 병등 비판지 아니었습니까?
자기와 조금만 다르면 잡아 죽이고 포악한 짓을 하고 그랬던 바울이지만 그걸 어떻게 그런 놀라운 건강한 비판적으로 바뀔 수 있었나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복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 아닙니까? ➤사도행전 9장 4-6절을 보십시오. ➤“4. 그가 땅에 쓰러져 들으매 한 음성이 있어 그에게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 그가 이르되, [주]여, 누구시나이까?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가시 채를 걷어차기가 네게 고생이라, 하시거늘 6. 그가 떨며 놀라 이르되,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하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도시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듣게 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건강한 비판자로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것은 내 노력으로 되는 거 아닙니다. 내 인격으로 되는 거 아닙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은혜,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3장 9-12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그들보다 나으냐? 결코 아니라. 우리는 앞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검증하여 그들이 다 죄 아래 있음을 입증하였느니라. 10.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12. 그들이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
그리고 로마서 3장21절에서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 밖에 있는 [하나님]의 의로움 곧 율법과 대언자들이 증언한 의로움이 드러났느니라.” 율법 은 안 된다 남을 비판하는 잣대로 쓰이는 일만 가지고는 굉장한 비판자가 될 수 없다.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로움이 나타났는데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지신 주님 복음이신 그 분이다. 여러분 저는 사실 한 주 내내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고통스러웠습니다. 공교롭게도 용서할 수 없는 마음 북미 나는 마음이 미안해 이번 한주 내내 가득차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실패했습니다. 전원이 설교할 자격을 잃은 사람이 내가 무슨 낯짝으로 하나님 앞에 이 굉장한 비판을 해야 된다는 이 설교를 내가 할 수 있겠습니까? 은혜를 구하고 또 어이쿠 하는 거예요. 지난 주 내 내 마음속에 여러분이 찬양해요.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이 하나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영상녹취 / 김은영 목사-
|
첫댓글 💖행복은 남에게 나눠 줌으로써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나눔으로써
채워지는 신비로운 것입니다. 베푸는 만큼 행복의 양도 그만큼 많아 집니다.
오늘 하루도 주위 사람들에게 베푸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 6:1,2).
감사합니다.
아멘! 말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