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다 !!
동양사상(東洋思想) 아니 직설적으로 우리나라를 보고 말하자 우리는 천명(天命)이란 말을 많이 쓴다. 하늘의 명령이라는 뜻이다.
“천명(天命)”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오제(五帝) 본기(本紀)에 기록되어 있다.
고대 중국 성군(聖君)이라는 요(堯) 임금이 나이가 많아서 순(舜)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었는데 이것이 “천명(天命)”에 부합(附合)하는지를 살폈다는 기록이 있다.
임금이 되는 것은 먼저 임금(先王)의 결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천명(天命)이 있어야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국가의 통치자(君主)는 하늘이 낸다는 천명사상((天命思想)이 생겼다.
최충헌(崔忠獻)은 고려(高麗) 무신정권(武臣政權)의 제5대 집권자다. 최충헌(崔忠獻)의 집안에서 부리는 사노(私奴) 만적(萬積)은 노비(奴婢)들에게
將相 寧有種乎이라! 영의정이나 장수가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느냐 우리도 될 수 있다. 라고 선동(煽動)하였다.
이글은 고려사 “최충헌(崔忠獻) 열전(列傳)”에 나오지만 원전(原典)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있는 것을 인용한 것이다.
사기(史記) “진섭세가(陳涉世家)”에 기록에는 잡일하는 머슴에 불과했던 진승(陳勝)이 같은 하층민과 농민들에게 민란(民亂)을 부추기며,
王侯將相寧有種乎 "왕과 고위벼슬(왕후장상)들이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느냐” 는 말이 나온다.
천명(天命)과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느냐”는 이 말 사이의 간격(間隔사이)은 크다. 통치자는 천명(天命)에 의하여 결정되는데 “누구나 할 수 있다” 라고 했으니 천지개벽(天地開闢)의 차이다.
이말에 의문이 되는 것은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동양 최상급의 역사책인 사기(史記) 세가(世家) 에는 국왕(國王)이나 제후(諸侯)들의 사적(史蹟)만 기록하게 되어있는데 이런 한갓 농민 반란 지도자인 진승(陳勝)의 사적(史蹟)을 세가(世家)에 기록해 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록된 배경설명은 없다.
논어(論語) 제14편 헌문(憲問) 27장에서도 子曰 不在其位 不謀其政. 공자께서 말하기를 그 지위(통치자)에 있지 않는다면 그 지위에 따르는 정사(政事)에 발언하거나 의논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요즘 민주주의와 국민참여 정치와는 공자시대와의 2500년의 간격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공자(孔子)의 유학사상(儒學思想)의 도통(道統)을 이은 맹자(孟子)는 왕조(王朝) 즉 통치자를 갈아 치우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정당화(正當化)했다.
이 거대한 간격(間隔)을 메우고 좁히는 것이 바로 민심(民心)이다. 민심(民心)을 따르지 못하는 통치자는 갈아치워햐 한다고 했다. 아니 “가믐에 비를 주십사”하고 각종 귀한 제물(祭物)로 기우제를 지냈는데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하느님도 가라치워야 한다” 고 했는데 국가 통치자쯤이야 !!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思想家)이며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순자(荀子) 왕제(王制)편에는 水則載舟 水則覆舟라 ! “임금은 배이고, 백성(庶人)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엎어버리기도 한다 고 하였다.
우리역사에도 있다. 정조(正祖)의 어록인 “일득록(日得錄)”에는 “임금이 백성이 아니면 누구와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그래서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후세대 우리가 “정조(正祖) 정조(正祖)” 하는 것은 이런 정치사상 때문이다.
필자가 장황하게 동양 고전을 인용한 것은 선거가 짧은 시간에 다가왔다. 물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국민의 선택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지만 선택을 잘못하면 그 불행이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의무와 책임도 생각해야 될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국민은 자유민주주의와 친북좌파 공산주의로 나누어져 있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행복과 안전 문제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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