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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영적 침체(민11장16-23;롬8장38-39)
성경본문: 민수기11:16-23;로마서8:38-39
민수기11:16-23;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17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18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19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뿐 아니라
20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
21 모세가 이르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22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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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8:38-39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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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기업 수천 개의 흥망성쇠를 연구한 연구기관이 있습니다. 연구하면서 한 가지 원리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이<지브랏 법칙>입니다. 연구결과 30년전 100대 기업이 30년 후까지 생존한 기업은 14개뿐이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또 100여개의 기업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흥망성쇠입니다. 이 말은 내일을 장담 못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잘 나가는 기업도 내일을 장담하지 못합니다. 오늘 성공한 인생도 내일도 성공하리라고 장담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유연성이 떨어지고 그 시대를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는 지혜가 부족하면 여지없이 탈락합니다.
인간은 영적 존재입니다. 언제나 기분이 업 되고 충천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일은 고갈되고 침체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몇 주 동안 이런 영적 침체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먼저 모세의 영적 침체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모세는 출애굽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모세는 백성 앞에서 화려했습니다.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침체기를 맞습니다. 상상이나 할 일입니까. 그리고 하나님께 “죽여주소서” 하고 넋두리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모세의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세의 모습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Ⅰ.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이 아 바로앞에 군림합니다.
모세가 애굽으로 가서 바로에게 우리 민족을 보내달라고 말합니다. 바로는 어림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해서 순순히 보내줄 바로가 아닙니다. 그래서 모세는 열 가지 재앙으로 바로를 제압합니다. 바로는 꼼짝 못하고 모세에게 항복합니다. 상상도 못한 일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이끌고 일사천리로 애굽을 탈출하게 됩니다.
그때 애굽인들도 감동받고 많이 따라나섰다고 했습니다.
모세 같은 권위가 우리에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모세는 지팡이 하나를 들고 다니며 그 지팡이로 가리키면 그곳에 불이 일어났습니다.
바위에서 생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바다가 갈라졌고 하늘에서 우박이 내렸습니다.
홍해 앞에 당도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 놓여있고 뒤에는 애굽군대가 추격해 오고 있습니다. 순간 모세가 손을 들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무사히 백성들을 이끌고 건넙니다. 애굽군이 따라오다가 모두 물에 떠내려갑니다. 얼마나 통쾌한 모습입니까?.
그 모습을 보고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자 모두 일어나 춤을 추며 노래를 부릅니다.
그때 얼마나 영적으로 충천했습니까?
그런 모세 앞에 백성 누가 도전을 하고 거역을 하겠습니까?
그때 모세가 실패할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안 되는 일입니다.
사람에게는 이런 때가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큰소리를 치고 언제나 자신감이 넘칩니다.
사업이 좀 잘되면 기고만장합니다. 그래서 큰 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그의 앞에 실패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면 모세가 항상 성공만 하였습니까?. 항상 승리만 있었습니까?
성경은 서 있을 때 조심하라고 말씀합니다.
자칫하면 다음 차례는 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Ⅱ.모세는 한계점에 이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을 계속합니다. 시내광야를 지나 바란 광야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침체에 빠지는 모습이 민수기11장에 나오고 있습니다. 5절을 보면“나를 죽여 내가 고난 받는 것을 보지 않게 하소서”하고 한탄합니다.
모세가 이렇게 한탄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절을 보면 “백성들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라고 말씀합니다. 백성들이 원망했고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지친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공동체로 하여금 병들게 합니다. 지도자로 하여금 사기를 떨어뜨리게 합니다. 그리고 전진을 가로막는 걸림돌 역할을 합니다.
그때 누가 불평을 했는가 하면 4절을 보면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다른 인종은 애굽에서 10가지 재앙이 내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형통하게 하실 때 애굽인들과 타 인종들이 그 모습을 부럽게 보고 느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함께 나왔습니다.
출애굽기12장38절을 보면 “수많은 잡족들이” 그랬는데 이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이 왜 불평을 했는가 하면 4절을 보면 “그들이 탐욕을 품었다“고 했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4-5)하고 원망합니다.
그랬더니 4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도 울며 ...불평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비 이스라엘 민족들 즉 잡족들이 충동질 하고 불평을 주도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라서 울며불며 고기를 달라고 불평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배가 고파서 불평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만나를 먹고 있을 때 고기를 달라고 불평하였습니다.
10절을 보면 “백성의 온 족족들이 각기 자기의 장막 문에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소수의 잡족들이 불평을 시작하니까 그 불평이 점점 확대되어 “나중에는 백성의 온 족속들이 자기 장막 문에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데모하는 것을 보면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몇 명의 시위대가 시위를 시작합니다. 그러면 얼마 안가서 시위대가 시청 앞 광장을 메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모세가 보았습니다.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여기가 광야인 것도 모르고 고기를 달라고 불평하면서 울고 앉아있는 백성들이 무지하고 철없게 보였을 것입니다.
순간 모세가 힘을 잃습니다. 지칩니다. 사기를 잃습니다. 너무 힘겨운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한탄합니다.
11절을 보면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모세가 마침내 감정을 폭발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까지 백성들이 하는 짓을 보니 정이 떨어졌었는데 오늘 모습을 보니까 완전히 정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탈진합니다. 기진맥진 합니다. 모든 힘을 소진합니다. 만사가 귀찮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소연을 한 것입니다.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를 죽여 내가 고난당함을 보지 않게 하소서“(15). 그 말은 한마디로 “죽고 싶다”는 말입니다.
오늘 모세의 모습은 어제의 모습과 너무 다릅니다. 이것을 탈진이라고 합니다. 번 아웃되었습니다. “기름이 소진되었다” 그 말입니다.
부모들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아이가 한꺼번에 속을 썩일 때 하는 말이 “자식이 원수여”, “무자식 상팔자여”라고 말합니다.
욥이 “내가 태어났다고 모두 좋아하던 날 죽었더라면”하고 탄식합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의 도전을 받고 “내가 족하오니 죽여주소서!”하고 탄식합니다. 똑같은 말입니다. 사람의 일생은 항상 평온한 것이 아닙니다.
큰소리치면 안 됩니다. 조금 성공했다고 자만해도 안 됩니다.
모세의 그 권위, 기적, 능력, 애굽의 바로를 이기고 여기까지 백성을 끌고 옵니다.
모세는 권위 있는 강력한 지도자였습니다. 카리스마가 넘칩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불평 불만할 때 탈진합니다.
그리고 “죽여주소서”하고 하소연을 합니다. 사람은 이런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언제든지 큰 소리 치면 안 됩니다. 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Ⅲ.모세가 영적침체에 빠집니다.
모세의 영적 침체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과로와 격무 때문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능력을 소유한 사람일지라도 자기 능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혼자 일 못합니다. 하나님도 혼자 일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혼자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우리를 부르신 것이고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혼자 일했습니다.
혼자 권위적으로 일하고 나를 따르라고 호령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면 곧 한계가 오게 됩니다.
격무는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오늘 혼자 일하는 스타일이 있습니다. 회사나 교회에서 일을 독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일하는 사람은 가장 서툰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쓰러지는 것입니다.
모세가 격무 때문에 한계에 부딪치게 된 것입니다.
능력 있는 지도자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일하며 움직이게 만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우리들에게도 제자들에도 일을 맡겨 놓으시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능력을 주시고 감당하게 하십니다.
Ⅳ.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극복방안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모세는 그 침체를 어떻게 극복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해결방안이 3가지입니다.
☞하나는 업무 분담입니다.
16-1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백성중 지도자 될 만한 사람 70명을 데리고 오라 내가 그들에게 영을 주어 네 짐을 담당하게 하리라“. 이것이 오늘날 장로제도의 시초입니다.
“그들이 너를 도와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모세는 그 위기를 업무 분담으로 해결하게 합니다.
즉 백성들의 불평을 70명의 장로들이 함께 담당하여 처리하게 하였습니다.
그동안 모세 혼자서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재판도 혼자 하였습니다. 그곳에 장정만 60만 명이 모였습니다. 일반인까지 포함하면 300만 명이나 되었을 것입니다.
가축들은 모래처럼 많았습니다.
울타리도 없이 300만 명이 모여 광야에서 하루 저녁 잠자고 나면 그동안에 무슨 일인들 없었겠습니까?
그러면 다음날 모세 혼자서 재판을 하였습니다.
뙤약볕에서 백성들은 길게 줄서 있었고 모세는 혼자 듣고 판결하였습니다.
일을 이렇게 혼자 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몸과 마음과 영이 피곤해지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면 짜증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모세가 불평불만을 듣게 됩니다.
모세는 그 순간 탈진하게 되고 침체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적당한 분담이 필요합니다.
집안 가사도 교회일도 기관 일도 서로 분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담에 참여자가 많은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이것은 그 공동체가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거기에 능률이 있습니다.
적당한 쉼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팔짱만 끼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또 뒤에서 불평불만을 많이 합니다.
고로 그 공동체가 약화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백성에게 응답하셨습니다.
18절을 보면 “고기를 실컷 한달 동안 먹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모세의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반가워서가 아니고 기대감에서도 아닙니다. 너무 하나님 말씀이 황당해서 입니다.
그래서 22절에서 말하기를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 즉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즉 족하리이까?”하고 말합니다. 모세는 그 정황에서도 “왜 불가능한 말씀을 하십니까?” 하고 항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이 장정만 60만 명인데 노약자 여자 아이들까지 하면 300만 명 이상이 될 것인데 무슨 재주로 그들에게 싫도록 코에서 고기냄새가 날 때 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피곤하고 짜증나고 탈진한 것입니다.
탈진이라는 말은 영적 침체라는 말입니다.
지금 모세의 귓전에는 백성들의 불평불만 소리만 들리고 있습니다. 물을 달라, 고기를 달라 아우성 소리만 듣고 있습니다. 지금 몸도 마음도 피곤에 지쳐 있는데 고기를 달라는 그 불평소리에 순간 질려버렸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만 마음속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어제의 기적, 어제의 감격과 놀라움과 은혜는 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엊그제 있었던 출애굽의 기적이나 홍해를 건널 때 나타났던 기적들은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고 오늘 아침도 그것을 먹었습니다. 지금 불기둥과 구름기둥 밑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도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 또 기적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 순간 깜짝 놀라서 “왜 불가능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하고 항변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영적으로 침체에 빠지면 인간적이 이렇게 됩니다.
그러다가 우리 앞에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엊그제의 기적, 미래의 소망도 다 잊게 됩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침체하게 되면 신앙의 눈이 멀게 됩니다.
오늘 가정에 큰 문제가 발생하면 감당하기 어려워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 주어진 현실은 훨씬 더 크게 보입니다.
더 무섭게 보입니다. 더 감당하기 어렵게 보입니다.
영적 침체는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빨리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일을 분담시키셨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고 쉼의 여유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백성에게 고기를 먹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불평불만을 야기한 사람들의 징계입니다.
31절을 보면 하나님은 바람으로 바다의 메추라기를 끌어오십니다.
메추라기는 철새입니다. 그 지역은 철새 이동지역입니다. 하나님은 동남풍을 이용해서 철새들을 몰아오셨습니다. 그랬더니 하룻길 즉 32km 정도의 넓은 지역에 두 큐빗 높이 즉 1m 높이로 쌓였다고 했습니다.
32절을 보면 “백성들이 메추라기를 주어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고 했고 33절을 보면 “고기가 아직 이사이에 있을 때에 진노하사 큰 재앙으로 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34절을 보면 “욕심을 낸 백성들을 거기에 장사지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모세에게 불평 불만한 것을 모세에게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한 것으로 해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한 것으로 해석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문제를 징계로 마무리 하신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불평불만을 주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불평불만은 모세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섭게 책임을 물으신 것입니다.
“아직 고기가 이사이에 있을 때에 진노하사 큰 재앙으로 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불평불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평불만은 영을 병들게 합니다. 그리고 전염되게 합니다.
또 공동체와 지도자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누가 됩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또 사역은 즐겁게 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침체에 빠지면 이 즐거워야 할 사역이 고통의 사역이 됩니다.
하나님을 위한 사역이나 헌신은 즐거운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늘 영적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안의 영적 고갈을 막아야 합니다.
자동차의 기름이 바닥나기 전에 주유해야 합니다.
영적 은혜가 고갈되면 그때 일이 발생하면 감당을 못합니다.
오늘 현대의 신앙인들은 이 영적 탈진을 조심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의 탈진이 어디서 오는가 하면 업무의 과중에서 옵니다.
사람의 인체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무시하고 계속 과도하게 일하면 영적 탈진이 오게 됩니다.
문제는 영적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충만한 상태는 사도바울의 경우입니다.
로마서8장38-39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아주 신나는 고백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의 줄에서 끊으리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일이나... 그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것이 영적으로 정점에 있을 때 나오는 신앙 고백입니다.
이런 사람 앞에 무슨 장애물이 있겠습니까?
이런 충천하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