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과외공부
박용운
어둠에 잠긴 청계호수
저녁 한 권을 다 읽은
촉촉한 물의 알갱이들이 호수를 빠져나온다
소리 없이 주변을 다 암기한 물안개
호수를 딛고 일어나 허공 한 귀퉁이를 펼친다
주변을 감싸는 자욱한 물의 필체들
무지개로 날고 싶은 꿈
뼈가 없어 흐느적거리며
산자락을 휘감고 계곡을 오르지만
하루도 살지 못하는 헐렁한 물방울들
수 없이 날갯짓을 하여도
하늘에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가만히 걸어오는 아침
어둠을 살펴 조심조심 걷지만
햇살에 녹아내리는 물의 손가락
풀잎의 겉장이 다 젖었다
호수를 빠져나와 날마다 주변을 복습하는
물의 과외공부
또 새벽을 기다린다
깔세
햇살도 비껴가는 골목 안 쪽방
철새가 부리를 다듬고 있다
높이 날 수 없는 천성
매일 한 번씩 바라보는 새벽 별이 유일한 벗이다
소득세를 내야 하는데 납부할 청구서는 없고
계절을 품기엔 둥지가 허술하다
번식은 사치이고 미래는 무정란 같아
사랑 따윈 주고받지 않는다
높고 멀리 날아 용을 잡아먹는 가루다*가 되는 꿈을 매일 꾸는데
허약한 날개의 일상은 한 번도 끝에 다다라 본 적이 없어
중천을 향한 힘겨운 날갯짓, 겨우 파닥임만 있을 뿐이다
매정하게 등짝을 할퀴는 그믐의 날카로운 손톱
깔세를 독촉하는 문자,
유리창을 두드리는 시린 바람이
철새 이마에 음산하게 서린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 예보도 흐려있다
먼저 살다 간 새들은 어느 전망 좋은 우듬지에 둥지를 틀었을까
얼어붙은 생각까지 녹일 아랫목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허약한 부리로 허공 속 질문만 매일 쪼아댄다
양지쪽 햇볕은 얼마나 따뜻할까
물 한 컵만으로도 한 달 넘게 살아가는
창틀 위의 선인장
끝까지 버티면서 가시 사이로
꽃봉오리를 올리는 끈기
기어이 불꽃같이 붉은 꽃을 펼쳐낸다
입 안이 헐도록 생을 오독 하던 철새
낙타가 선인장 가시까지 먹는 이유를 알았다
*인도 신화에 나오는 인간의 몸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가진 새.
비슈누의 화신인 나라야나를 태우고 용을 잡아먹으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