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9/13)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4세기 중반 시리아의
안티오키아(현재 튀르키예의 안타키아)에서
태어나 독실한 어머니의 신앙을 물려받았다.
수도자들과 함께 엄격한 극기 생활을 하던 그는
은수자를 본받아 광야에서 기도와 고행의 시간을 보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자선과 저술 활동에 전념하다가
사제품을 받은 뒤에는 주로 설교자로 활동하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로 임명된 그는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악습에 젖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심지어 황제나 황후에게도 잘못된 점을 거침없이 지적하였다.
그 때문에 성인은 유배 생활을 하다가 407년 무렵에 선종하였다.
탁월한 설교로 ‘금구’(金口: 황금의 입)라고도 불리는
그는 설교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나인이라는 고을에서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의 죽은 외아들을 되살리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12-14.27-31ㄱ
형제 여러분,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28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
그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29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교사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
30 모두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질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를 해석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31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1-17
그 무렵 11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제자들과 많은 군중도 그분과 함께 갔다.
12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13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14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15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16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7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구약 시대에도 죽었다가 살아난 이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엘리야가 되살린 사렙타 과부의 아들(1열왕 17,17-24 참조),
엘리사가 되살린 수넴 여자의 아들(2열왕 4,18-37 참조),
엘리사의 유해에 닿아 되살아난 주검(2열왕 13,20-21 참조) 등이 있는데,
이들은 잠시 ‘소생’하였다가 때가 되면 다시 죽을 이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소생’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견줄 바 못 되지만, 분명 죽은 이를
다시 살린 이 행적은 하느님의 권능과 영광을 드러내는 강력한 표징이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남편이나 장성한 아들 같은 법적 보호자가 없는 과부는
으레 고아나 이방인처럼 절대 빈곤 계층으로 전락하기 일쑤였습니다.
나인에서 예수님께서는 삶의 유일한 의미인 외아들을 잃고 상여를 따르며
슬피 우는 과부를 가엾이 여기셨고, 아들을 되살려 어머니에게 돌려주셨습니다.
다른 기적들과 달리 당신께 신앙 고백이나 간절한 청원을 드리는 이도 없었고,
더구나 관에 손을 대실 때에는 주검과 접촉하는 것을 심각한 부정으로
여기는 율법마저(민수 19,11-19 참조) 거스르셔야 하였는데도 말입니다.
이 기적은 주님께서, 죽음이 삼켜 버린 지독한 고통 속에
‘주님, 살려 주십시오.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칠 기력조차 없는 이를 그 누구보다 가엾이 여기시는 분이심을,
서둘러 다가가 그를 생명과 구원으로 채워 주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심을 여실히 보여 줍니다.
한 분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을 이루는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소중한 지체입니다(제1독서 참조).
어쩌다 삶에서 생기를 잃고 잠시 어둠을 겪고 있다면,
“젊은이야, 일어나라!” 하고 명하시는
그분의 손을 잡고 힘차게 일어나 다시 생명의 길을 걸어갑시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출처 매일 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