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일과 휴식의 구분이 없었다
필요한 사람
이시형 박사
어느새 올해로 여든여섯이 되었다.
그동안 의사로, 작가로, 촌장으로, 세로토닌 문화원장으로,
끊임없이 다양한 일들을 해왔지만 난 단 한 번도 은퇴를
고려해 본 적이 없다.
은퇴는 단순히 직장을 그만두는 ‘퇴직’과는 차이가 있다.
사전적 의미로의 은퇴는 사회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로이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내 사전에 은퇴란 없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은퇴란
우리 인생에서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중간 생략>
성균관대에서 교수 퇴임을 맞았다.
퇴임식을 준비한다는 말을 듣고
총장에게 나는 안 간다고 했다. 왜?
나는 생애 현역이니까.
나이 들었다는 이유 하나로 쫓겨나는 뒷모습을
학생들, 후배 교수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하철을 탈 때는 꼭 돈을 낸다.
여전히 당당한 현역이기 때문이다.
저녁 무렵 붐비는 여의도역에 내리면 퇴근을 하는
젊은이들 무리에 휩쓸려 이리저리 밀리긴 하지만
기분은 흐뭇하다.
때로는 그들과 어울려 포장마차에서 대포도 한 잔한다.
어느 순간 내가 늙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그들처럼 어엿한 이 사회의 일원으로
제구실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고요한 밤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쓸 때도
이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의 생각을 함께 공유하고 읽어줄
누군가를 생각하면 힘겨운 일도 즐겁기만 하다.
평생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처럼 쉬지도 않고
바쁘게 일을 해왔지만 나는 ‘한가로운 삶’을 꿈꾸지 않는다.
은퇴를 선언한 적이 없다는 것은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에게는 일과 휴식의 구분이 없었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책을 읽었고,
여행을 갈 때면 보고 겪은 것을 눈과 마음에 한껏 담고 돌아와
글로 풀어냈다.
사회에 대한 관심을 유지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덕에
화제가 되는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음악회를 가는 것이 공부이자 일의 일부였다.
환자들과 원활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즐거움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한 번도
따로 작정하고 휴가란 것을 가본 적이 없다.
내 생활 전체가 휴가인데 무슨 휴가를 따로 가?
그렇다고 나이가 들어서 일을 계속하는 것이
그저 편하고 즐겁고 좋기만 할 리는 없다.
일이란 어디까지나 힘겨움을 동반한 노동이 본질인 것이다.
강연을 끝내고 나면 말 한마디 더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이 빠진다.
갈비뼈가 시큰시큰하고 등허리에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특히 그날 청중들의 반응이 좀 시큰둥했다는 생각이 들면
한참을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있다.
그다음 며칠은 밥맛까지 뚝 떨어진다.
그래도 결코 ‘은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나에게 일이란 나의 존재를 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즐거움이다.
일이 주는 희로애락은
그것이 말 그대로 기쁨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나의 감정에 진폭을 만들어
생생하게 살아있는 나를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내가 아직도 쓸모 있고 필요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준다.
그러니 굳이 일에서 벗어나 그저 하릴없이
노닥거리는 삶을 택할 이유가 내게는 없는 것이다.
주위에서 내게 어떻게 그 나이에도
그렇게 젊음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심심찮게 한다.
내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나는 지금껏 현역이니까.”
앞으로 얼마를 더 살게 되든지간에 그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현역일 것이다. -041~
출처 >이시형 에세이 [어른답게 삽시다]
이시형(李時炯·89세<2023년현>)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노익장(老益壯)이다.
경북대 의대 졸업후 미국 예일대에서 신경정신과학 P.D.F.(박사후 펠로우)과정을 거친 그는
고려병원 의사로 있던 1982년 <배짱으로 삽시다>를 냈다.
10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라 지금까지 200만부 정도 팔린 이 책으로 그는 일약 유명 인사가 됐다.
≪후기≫ 유성 박한곤
사람은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사는가?
지식인의 노년에서,
노년에 지식인이 갖는 삶의 진면모를
탐닉耽溺 할 만하기에 곱씹어 보며 새벽을 연다.
다음은 아들에게 전한 유배지에서 쓴 정약용의 글에서
이시형 박사님의 삶을 깊고 맑게 조명해 본다.
“나는 전원을 너희에게 남겨 줄 수 있을 만한 벼슬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직 두 글자의 신령한 부적이 있어서, 삶을 넉넉히 하고
가난을 구제할 수 있기에 이제 너희에게 주니,
너희는 소홀히 여기지 말아라.
한 글자는 부지른 할 근(勤)이요 또 한 글자는 검소할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전답보다도 낫고,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又示二子家誡 =우시이자가계]<정약용이 자식에게 남긴 유산>에서
첫댓글 대단하신 분 임니다 하나 난 다른 생각도 함니다 누구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무지렁이에게 배우는 것도 듣는 것도 나이 들면 꼭 해야만 하는 역할 같아요 예 할매 대단 하심니다 예 할배 굉장이 잘 하시네요
소중한 멋진 작품 감상 감명 깊게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