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탄생>
2022. 12. 11. 오후 1시 40분
CGV건대점.
'조선 근대의 길을 열어젖힌 청년 김대건의 위대한 모험'이란
타이틀을 내 건 영화 <탄생>을 일요일 오후 딸과 함께 보았다.
얼마전 나는 솔뫼성지와 신리 성지를 순례하였기에 꼭 보고 싶었다.
김대건 신부(1821.8.21~1846. 9.16)는 조선 최초의 신부로
2021년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유네스코가 '세계의 인물'로 지정하였다.
솔뫼성지 에서 보았던 김대건 기념관의 조선전도와 생애가 떠 올랐다.
조선의 천주교는 정하상, 장약용 등 당시의 유학자들이 학문으로 받아들였지만,
그 교리가 유교와 맞지 않아 박해를 시작하였고, 박해 이후 중인, 상인 등
일반 백성들이 박해를 피하여 숨어서 미사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이어 나갔다.
소년 김대건도 부모님의 권유에 의하여 프랑스 모방신부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후, 신학교에 들어갈 것을 권유받고 처음에는 "내가 왜요?"
하였다가 가슴 속에 뜨거운 열정을 느끼고 신학생이 되기로 결심한다.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16세에 마카오로 유학을 떠난다.
당시 중국도 아편 전쟁 등 외세의 영향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최방제는 유학 생활중 병에 걸려 어린 나이로 죽고 둘만 남는다.
마카오에서 라틴어, 프랑스어, 중국어, 철학 등을 공부하면서
김대건은 프랑스의 함대에 올라 그들의 항해술이 발달한 것을 보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심을 가지고 관심을 보이고 공부하고 싶어 한다.
마카오의 상황이 좋지 않아 그들은 잠시 필리핀으로 옮겨 신학생활을 한다.
필리핀의 야자나무 아래서 마음껏 학문을 익히는 청년 김대건과 최양업은
눈부시게 젊고 건강하고 자유스러운 모습이 참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학구열과 모험심이 강한 김대건은 조선 국경이 삼엄한 검문을 피해
조선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고 단신으로 험난한 길을 헤쳐
조선의 의주까지 다녀오는 모험을 하고 조선의 소식을 갖고 돌아온다.
다시 마카오로 돌아온 김대건을 맞이한 최양업은 부모님의 순교소식을
전해 받고 김대건 앞에서 눈물을 보이려고 하지 않아, 오늘은 실컷 울어라는
말을 하며 자리를 피해 주었는데 그때 부터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부제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온 김대건을 지척에 어머님이 계셨지만,
자신이 조선에 왔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였기에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는다.
다시 상해로 들어간 김대건은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의 신품성사를 받는다.
김대건은 신학과 학문에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상술도 발휘하여
조선의 홍삼과 한지를 상해의 비단과 책으로 교환하여 경비로 사용한다.
서해에서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겪었지만 그의 모험심으로 성공한다.
10년 만에 조선의 첫 신부가 되어 돌아온 김대건은 자신의 세례를 받았던
은이공소에서 어머니와 동생, 신자들을 모시고 첫 미사를 집전한다.
미사가 끝난 후 어머니와 맞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10년 만에 돌아온 아들을 조선교구의 신자들을 위해 다시 떠나 보내는
그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감격스러우면서도 안타까울까?
더구나 조정의 눈을 피해 다녀야 하는 위험한 사지로 떠나 보내야 하였으니.
상해에서 조선으로 입국하는 바닷길을 개척하기 위해 조선에 들어왔다가
결국 그는 체포되고 그를 심문한 포도대장 이응식은 그가 비밀리에
보내려고 하였던 지도와 외국어로 쓴 편지를 조정으로 올려 보낸다.
역사에서는 가정법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그 당시 조선은 유럽의 발달한 문물을 받아 들이고 문호를 개방하였다면,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겠지....새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포도대장은 라틴어와 프랑스어, 중국어 까지 능통한 그의 천재성을 아까워하여
배교를 회유하였으나 그는 순교할 것을 원하여 결국 새남터에서 참수된다.
영화는 끝이 났으나 안타까운 죽음앞에 눈물로 범벅이 되어 일어날 수 없었다.
한참동안 그대로 앉아있다가 관중들이 다 퇴장하고
청소하는 직원이 들어와서야 옆에 앉은 아라의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나왔다.
"에구.... 우리 엄마의 이 소녀적 감성, 이 눈물을 어쩌누...." 하고 내 등을 토탁였다.
아라와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만약 그런 박해시대에 살았다면 어떻게 하였겠느냐?"고 물었다.
글쎄....내 미약한 신앙심은 당장 배교를 하고 목숨을 구걸하였을 것이다.
이번 영화는 박흥식 감독의 각본과 연출로 2021년 부터 촬영을 하였고
얼마 전 로마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앞에서 상영도 하였다고 하였다.
배우의 연기력도 좋았지만 의상, 배경 등영상미도 뛰어난 참 좋은 영화였다.
영화 <탄생> 포스터.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최초 신부가
김 대건 신부인 줄은 알지만
그분의 천주교에 대한 발자취는
몰랐지요.
유네스코에 세계의 인물로
등재되었다 하니 축하할
일입니다.
푸른비님은 천주교 신도로써
*탄생*의 주는 의미가
더 깊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오래만에. 실컷 울었더니 카타르시스가 되었습니다
좋은 영화 보셨네요.
박해시대에 살지 않음이
큰 행복이라고 여겨집니다.
평화가 함께 하시길!
살롬!
저도 꼭 보려고 하는데 가까운 곳이 어디 있는지
알아봐야 겠어요
우리나라에 김대건 신부님 같은 분을 처형 하지 않고 살려 두었으면 이나라의 역사가 바뀌었을거예요
그 똑똑한 사람 인재를 몰라보고 그리 무참히 죽였으니 이 왕가도 망했지요
공감의 댓글 감사합니다
새로운 시작, 탄생은 늘 큰 기쁨과 지극한 아픔이 함께하나 봅니다.
예전 출장길 해거름에 솔뫼성지를 들렀던 기억이 납니다.
탄생의 진통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군요
코로나를 무릎쓰고 영화관을 가시는
푸른비님도 못지않은 용기가 있으십니다요~
채 2달이 안된 싯점에 약국에 코로나 처방을 들고
온 환자가 60명이 넘었으니 말입니다.
백성의 안위보다 언제나 위정자들의 안위가 우선이었던
역사적 사실에 쓸쓸함을 느낍니다.
그토록 감동이 크셨다 하시니 시간내어 꼭 한번 관람하고
싶군요!
저도 오랫만에 가본 극장이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