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5일 연중 제 21주간 수요일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7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28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29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30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31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32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회반죽 산소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집안의 전통 법도에 의해서 장례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초종예법을 참여하면서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바로 곁에서 모실 수 있었고, 할머니의 영구 곁에서 어린 중학생이 사흘을 같이 지냈습니다. 어린 아이의 상복을 입고, 장지까지 상여로 모시게 되었고, 많은 조문객들이 상여를 따라가며 울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나를 가장 귀여워해 주셨고, 나는 할머니의 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상여의 가장 가까운 데서 상여를 따라갈 수 있도록 허락받았습니다. 본래 상여를 따라가는 순서는 전통 상․장례 법도에서는 정확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그 때는 호상(護喪)이 그렇게 정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중학생인 나는 전통 장례를 모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호상은 나에게 지금은 무엇을 하고, 네가 지금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참석해야 하며, 이러이러하게 하는 것이 예법에 맞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때 나는 성당에 다니고 있었을 때지만 연도(煉禱 : 지금은 위령기도(慰靈祈禱)라고 합니다.)를 잘 바칠지도 모르고 어른들의 흉내만 내던 때라 전통방식의 장례를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경험이었습니다. 눈물로 범벅이 되었어도 왜 울고, 왜 절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자세히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호상어른의 소상한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장지에 도착했는데 이미 천광(穿壙:장례를 모시기 위해서 땅을 파고, 광중을 만들어 놓은 것)이 끝난 상태였고, 지관은 그 흙이 곱다고 상주에게 일일이 설명하였습니다. 호상은 그 흙을 어린 내게 만져보라고 하였습니다. ‘할머니께서 주무실 곳의 흙이라고’ 설명하시면서 울고 있는 나에게 안심이라도 시킬 요량처럼 만져보라고 하였습니다. 노란 흙은 꼭 밀가루를 만지듯 아주 부드럽고 고왔습니다. 마치 할머니의 부드러운 살결 같았고, 할머니를 덮어 줄 이불 결 같아서 흙을 붙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하관을 하고 횡대(橫帶)를 덮은 다음 회반죽을 먼저 쏟아 부었습니다. 흙을 백회가루와 같이 섞어서 아주 두껍게 다져 넣는 것입니다. 본시 횡대도 관에 직접적으로 회반죽이 닿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회를 흙과 섞어서 넣는 것은 시신을 잘 모시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동네의 공동묘지에서는 무덤을 파헤치는 여우를 일 년에 다섯 마리는 잡을 때였으니까 그런 장치가 필요하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호상은 충해나 동물들의 침입을 막고, 나무 뿌리가 깊이 파고 들어와 시신을 해하지 못하게 하고, 습기나 수맥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한 장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이장을 한다면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어른들은 걱정하기도 하였습니다. 나도 할머니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장치 같아서 조금 싫었습니다. 전통 상․장례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나는 이 문제를 은근히 걱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산소들이 이처럼 회반죽으로 많이 파괴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산소들이 사람의 육신을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돈을 들여 산소를 치장하고, 회 반죽으로 단단하게 만들거나 요새처럼 돌로 광중(壙中)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산천은 회 범벅이 된 무덤으로 많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처음 오늘 복음말씀을 들었을 때 60여년 전에 회 범벅으로 묘지를 덮던 그 회칠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묘지가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검고 칙칙한 바위를 하얀 색깔로 페인트를 칠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주님의 말씀을 다시 새겨듣게 되었습니다. 처음 홍콩이나 대만을 방문하였을 때 아파트가 모두 이끼가 끼고 칙칙하게 우중충한 모습이 꼭 불에 탄듯하고, 더럽게 느껴져서 왜 페인트칠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습기가 많아서 그렇게 곰팡이가 많이 끼고 매일 스콜(squall : 돌풍을 동반한 소나기 성 비바람)이 불어와 페인트로 견뎌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우중충한 외모와는 다르게 내부는 참으로 아름답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시절과 이스라엘에서는 회칠을 하면 아주 오래 동안 하얗고 깨끗하게 위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회칠한 무덤은 순전히 위장과 겉꾸미는 것에 치중한 것을 빗대어 말씀하시며, 위선자를 경계하시기 위하여 비유로 설명하시기에 아주 적절한 표현 같습니다. 예언자들의 진심어린 충고와 가르침을 무시하고, 권력에 눈이 어두워지고, 헛된 우상에 빠져서 예언자들을 핍박하고, 살해하고, 모질게 박해한 조상들의 그 어리석음을 그대로 본받고 뉘우칠 줄 모르는 그 위선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무덤이나 아파트를 하얗게 페인트칠을 했다고 그 안에 있는 시신이나 사람들이 모두 깨끗한 것이 아닌 것처럼 외양은 좋아 보이나 속은 냄새나고 더러운 위선자를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외적인 삶과 내적인 삶의 불균형으로 외적인 삶에 훨씬 비중을 크게 두고 내적인 삶을 가볍게 여긴 그들의 위선을 나무라고 계신 것입니다. 마치 겉은 멀쩡하게 생겼고, 옷도 잘 입고, 학식도 많은 사람처럼 보이나 속은 교만과 편견과 아집으로 가득 차 엉터리로 살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을 꾸짖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Jejus, I trust this situation to your unfailing love. You are my refuge and my stronghold. Help me to look beyond my circumstances to see your mighty power." <예수님, 당신의 다함없으신 사랑에 이 상황을 맡깁니다. 당신은 저의 피난처시며 요새시니, 제가 자신의 처지만 돌아보지 않고 당신의 전능한 권능을 보도록 도와주십시오.>(말씀지기 기도문)
<우리는 밤낮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2,9-13
9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10 우리가 신자 여러분에게 얼마나 경건하고 의롭게 또 흠 잡힐 데 없이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이 증인이고 하느님께서도 증인이십니다.
11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아버지가 자녀들을 대하듯 여러분 하나하나를 대하면서,
12 당신의 나라와 영광으로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느님께 합당하게 살아가라고 여러분에게 권고하고 격려하며 역설하였습니다.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축일8월 25일 성 루도비코 (Louis)
신분 : 왕, 3회원
활동 지역 : 프랑스(France)
활동 연도 : 1214-1270년
같은 이름 : 누수, 루도비꼬, 루도비꾸스, 루도비쿠스, 루수, 루이, 루이스
성 루도비쿠스(Ludovicus, 또는 루도비코)는 프랑스 왕 루이 8세와 카스티야(Castilla)의 블랑쉬(Blanche)의 아들로 푸아시(Poissy)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1226년 그의 부친이 서거했을 때 그의 나이는 12세에 불과했으므로 어머니가 섭정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아들의 왕권을 노리는 샹파뉴(Champagne)의 티보 4세(Thibaud IV)를 비롯하여 야심 많은 귀족과 대항했고, 어떤 때에는 전쟁도 불사하였다.
그는 1234년 5월에 프로방스의 공작 레이먼드의 딸인 마르가리타(Margarita)와 결혼하여 열 명의 자녀를 두었다. 같은 해에 그는 왕권을 물려받고 통치자가 되었고, 모친 블랑쉬는 고문관으로 아들을 도왔다. 그는 1242-43년의 남프랑스 반란을 진압했고, 또 잉글랜드(England)의 헨리 3세(Henry III)를 타유부르(Taillebourg) 전투에서 격퇴하고 프랑스 서부의 푸아투(Poitou)를 손에 넣는 등 국가의 권력을 점점 확대하였다. 1248년 그는 십자군을 지휘하여 출정하였으나 1249년에 이집트 북부의 다미에타(Damietta)에서 포로가 되어 사라센인들의 손에서 곤욕을 치렀다. 그 후 그는 석방되어 이스라엘 성지로 가서 1254년까지 머물다가 모친의 사망 통보를 받고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는 플랑드르(Flandre)와의 평화를 이룩했고 리모주(Limoges)와 카오르(Cahors) 등 수많은 지역을 평정하였다.
성 루도비쿠스는 천성적으로 신심이 깊었고, 또 실제로 이상적인 수도자를 꿈꾸었다. 이 때문에 그는 정의를 펴고 그리스도교적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왕으로부터 농부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권리를 옹호하여 성왕(聖王)으로 불리었다. 동시에 그는 예리하고 힘찬 군주였으며, 동시에 평화를 사랑하는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불경한 태도나 말을 한 사실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맏아들에게 한 유언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그대로 설명하고 지켜나가도록 부탁할 정도였다. 1270년 그는 재차 십자군을 일으켰다가 8월 25일 튀니스(Tunis)에서 당시 그의 군대를 휩쓸었던 전염병인 이질에 걸려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프랑스로 옮겨져 생드니(Saint-Denis) 수도원 성당을 비롯해 여러 곳의 성당에 모셔져 공경을 받고 있다.
성 루도비쿠스는 한마디로 가장 이상적인 중세의 그리스도인 왕이었다. 그의 치하에서 프랑스는 최대의 번영을 누렸다. 그의 신심은 스스로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됨으로써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래서 그는 작은 형제회 제3회의 남자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1297년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Bonifatius V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선종 때에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주님, 저는 이제 당신의 집에 들어가렵니다.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서 예배하리이다. 당신의 이름에 영광을 드리나이다.” 그리고 오후 3시경에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라고 말을 한 후 숨을 거두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프랑스 왕실의 문장인 백합 문장을 들고 있거나 예루살렘 성지에서 가져온 성물인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들거나 쓴 모습으로 주로 그려진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쓰셨던 가시관은 성 루도비쿠스가 사라센 사람들에게 노예가 된 그리스도인들의 석방을 위해 많은 도움을 준 것에 대해 동로마 황제가 감사의 선물로 보내준 것이다. 평소 신심이 깊었던 그는 수천 명의 신자와 함께 맨발로 먼 길까지 마중 나와 손수 가시관을 모시고 행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가시관과 십자가 보목(寶木) 등을 모시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파리에 생트샤펠(Sainte-Chapelle) 왕실 성당을 1248년에 완공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루도비코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