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9일 대림 제4주일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9-45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늦은 밤에 눈 내리는 아파트 뒷길 오솔길을 따라서 잠시 걸었는데 온 천지가 하얀 눈으로 덮이는 것을 보면서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역으로 비치는 까만 눈송이가 내 앞에서 하얗게 변하는 신비로움을 오랫동안 지켜보았습니다. 어릴 적 눈이 오늘처럼 많이 내리던 날, 외할아버지께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나에게 해 주셨던 옛날 얘기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옛날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 호랑이 한 마리가 겨울밤에 너무 배가 고파서 마을로 내려와서 길 가던 선비 하나를 물어다가 호랑이 굴에 놓고는 가만히 선비의 모습을 살펴보니 너무 잘생기고 똑똑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랑이가 그냥 잡아먹기가 아까운 것 같아서 선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먹으려고 잡아왔는데 그냥 잡아먹기가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시구(詩句)를 운을 뗄 테니 네가 대구(對句)를 잘하면 살려줄 것이고, 잘 못 대면 잡아먹으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선비는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는 속담이 생각나면서 정신이 번쩍 들어 기왕에 잡혀온 몸 “좋다!”라고 응대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호랑이가 이렇게 운을 떼더랍니다.
“월백설백천지백(月白雪白天地白)하니!” 그러니까 선비가
“산심야심객수심(山深夜深客愁深)이로다.” 하고 응대하자
호랑이가 “야야! 너는 도저히 잡아먹을 수가 없구나!” 하고 놓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를 모든 감정을 무시하고 그냥 해석하면
운은 <달도 하얗고 눈도 하얗고, 천지가 모두 하야니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어 너를 잡아왔단다.>
이에 선비의 대구는 <산도 깊고, 밤도 깊고, 네게 잡혀온 나그네의 시름은 더 깊소.> 라는 뜻이어서 호랑이가 살려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 이 시는 김삿갓이 금강산 백운암에 거처하면서 입석봉에 올라 공허스님과 서로 주고받은 시 중의 한 대목이라는 것을 알게도 되었습니다. 공허스님이 호랑이고, 김삿갓이 잡혀온 선비가 되어서 그 복잡한 심정을 토로한 것이랍니다.
연말이 되고 모든 세상천지의 기운이 차가워지고 한 일도 없이 한 해가 다 지나갔습니다. 연 초에 많은 계획을 세우고 많은 것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것들 중에서 이루어 놓은 것 없는 해가 아니었는지 많이 허전합니다. 모든 것이 하얗게 눈으로 아름답게 덮여 가는데 나는 오염되어 시커먼 속내를 드러낸 추한 모습 같아 숨을 수 없어 부끄러운 마음도 들고 쓸데없는 욕심으로 순수하고 아름답게 살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으니 아름다운 성탄절에 주님을 기쁘게 맞을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이지만 어느새 밤은 깊어 갑니다.
때로는 우리가 희망이 보이 않을 것 같은 삶 속에서 절망과 괴로움으로 웃음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자신은 아닌지 대림절의 촛불은 짙은 자주색에서 옅어지고 분홍색에서 이제는 흰색으로 점점 밝은 빛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마치 눈이 오듯 그렇게 하얗게 빛과 같이 변하고 있는데도 나는 어둠에 자신을 묻고 주님을 떠나서 희망과 기쁨이 사라져버리고 사는 것만 같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의심 없이 믿지 못하고 내 가늠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주님의 어머니를 만나서 기쁨에 가득 차 희망과 행복으로 성모님을 찬양합니다. ‘행복하신 분이라고, 정말 복되신 분이라.’고 외칩니다. 태중의 아기도 즐거워한다고 성령을 충만히 받아 외칩니다. 그리고 주님의 어머니께서 그렇게 복되고 행복한 분이라는 이유를 이렇게 단언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의심 없이 믿었기 때문에 성모님은 행복하시고 그 행복이 엘리사벳에까지 전달되고 태중의 아이까지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나는 믿음이 약하고 부족하여 자신을 추스르는데도 힘들고 삶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여 우울하며 이처럼 막바지 대림시기에 허전하게 하얀 눈앞에서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차마 주님을 바라볼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수심이 가득 차 있는 나그네로 지금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5-10
형제 여러분, 5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축일12월 19일 성 아나스타시오 1세 (Anastasius I)
신분 : 교황
활동 연도 : +401년
같은 이름 : 아나스따시오, 아나스따시우스, 아나스타시우스
막시무스(Maximus)의 아들로서 로마(Roma)에서 태어난 성 아나스타시우스(또는 아나스타시오)는 399년 11월 27일 교황으로 즉위하였다. 그의 재위 기간 중 가장 큰 사건으로는 오리게네스(Origenes)의 단죄를 꼽을 수 있고, 아프리카 주교들에게 강권을 발휘하여 도나투스주의(Donatism)를 반대하도록 한 일이다. 그리고 그는 개인적으로 뛰어난 성덕과 청빈 정신으로 높은 명성을 얻었다. 401년 12월 19일 선종하여 포르투엔시스(Portuensis) 가도에 있는 폰티아누스 카타콤바에 묻혔다.
교황 성 아나스타시우스 1세는 이단자들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대처하였다. 교황의 축일이 "히에로니무스 순교록"(Martyrologium Hieronymi)과 "로마 순교록"(Martyrologium Romanum)에 수록되었는데, 로마 순교록에서는 그날이 "극도의 가난과 굳건한 사도직을 실천한 사람인 성 아나스타시우스 1세 교황을 기념하는 로마의 축일"이라고 하였고, 성 히에로니무스는 열성적으로 사도직을 수행한 교황이라고 극찬하였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아나스타시오 1세 (Anastasius I)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