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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기독저널신문 기자)
기독저널신문
(4).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재검증한다
<편집자주> 본지가 기독교텔레비젼에 안식일교회가 주주로 참여한 사실과 관련 이단배격 이라는 입장에서 강한 비판보도를 하자 많은 독자들이 안식일교회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싶다는 문의가 쇄도하여 본지는 지난해 11월부터 개신교문제연구소와 함께 안식일교회에 대한 집중연구를 해오고 있으며 그 연구내용을 일부 긴급진단 형식으로 11회에 걸쳐 비판과 변증형식으로 편견없이 연속 보도합니다. 특히 비판은 박영관, 탁영환, 안토니훼케마. 플주 이트(美플러신학신학조직신학교수)등의 견해를 주로 인용하였으며 아울러 변증은 신계훈목사 (삼육대학총장)및 안식일교회측에서 주장하거나 제공하는 자료들을 근거로 하였습니다. 추후 공청회동을 개최하여 신학자들의 폭넓은 연구결과를 게재할 예정이며 안식일교회가 과연 이단인가? 아닌가를 재진단코저 합니다.
안식일문제
(비평 : 박영관) “그러나 사도 요한이 기록한 계시로 1장 10절 “주의 날”은 주후 96년 경에 기록하였고, 주후 107년에 기록한 이그나티우스(Ignatius)의 서신 “마그네시아인들에게” 제 9항(장)에서 “그러면 만일 구습을 따르던 사람들이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는 새로운 소망에 이르게 되었다면 우리의 삶도 주님을 통하여 새로와 진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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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박영관 목사는 계 1:10 절의 “주의 날”이 일요일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계시록보다 15년쯤 뒤인 서기 115년경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순교당하기 위하여 로마로 잡혀가는 길에 서머나에서 마그네시아 교회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을 증거로 인용하고 있다.
이러한 성경밖의 기록들이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요일 준수를 정당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변증 : 안식일교회)
(가) 로마 황제 트라얀 (Trajan. A D 98 ~ 117) 당시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 었던 이그나티스가 순교를 앞두고 쓴 것으로 알려진 일곱개의 편지가 세가지 형태로 분류되는 여러개의 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내용이 바르게 보존된 것을 확인 할수가 없고 대부분 4세기 이후에 가필(加筆)한 것들이다.
그 외에 가짜 편지도 여럿이 있어, 상당수의 학자들은 아예 모든 편지를 믿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나) 비평에 인용된 내용의 참뜻을 보다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앞뒤 문맥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서외 그 “구습을 따르던 사람들”이란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게 거룩한 생애를 살았던 구약의 선지자들인 것이다.
(다) 박영관목사가 인용한 것과 같이 “주의 날”(the Lord’s Day)에서 “날”이란 말이 가장 근본적이고 잘 보존된 헬라어 원문 사본들에는 없다. 그것이 일요일을 가리키는 “주님의 날”이 되자면, 여성명사인 “날”(hemera)의 대격(目的格)을 삽입해야 하거나, 그것이 문법에서 동족목적어(同族目的語) 구문에 함축돼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이그나티우스의 모든 편지들에게는 이런 구문을 쓴 예가 한번도 없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본들의 모체가 되는 가장 오래된 헬라어 사본[Codex Mediceus Laurentinus] 등에는 “주님의 생명”( Lord’s Life)이라고 쓰여 있어, 여성명사[생명﮲Zoe]를 필요로 하는 문법에도 맞고, 같은 문장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Thanatos)을 대조시킨 문맥에도 적절히 어울린다.
(라) 또한 비평에서 인용된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에서도 안식일은 명사가 아니고 헬라어 원문에는 현재분사를 써서 뜻을 달리하고 있다. 영어로는 “no longer Sabbatizing”으로 번역되는데, 이 뜻은 실제로 문맥에도 나타났듯이 유대교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빗나간 율법주의를 경계한 것임이 다음의 문헌에서도 분명해 진다. 즉, 같은 편지를 4세기에 가필 (加筆)하여 확대 설명한 사본의 같은 9장에 아래와 같은 해설이 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유대인적인 방식을 따라 안식일을 지키지 말고, 나태한 날들을 즐기지 말자. 왜냐하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 모두는 영적인 방식을 따라 안식일을 지킬 것이니﮲ ﮲ ﮲”
(마) 마지막으로 박영관목사의 비평이 결론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입증하는 단서가 있다. 즉,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을 지키게 된 것”으로 표현된, “구습을 따르던 사람들” 이란 앞에서 본문 문맥을 가지고 지적했듯이 다른 사람이 아닌 “가장 거룩한 “구약의” 선지자등 임을 기억해야 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언제 안식일 준수를 그만 두고 주일 중 첫날인 일요일을 지킨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가?
문맥을 바로 아는 일이 중요하고, 주어(主語)로 쓰인 대명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확인해야 한다. 원문에는 없는 “날”을 삽입하여 편지의 본 뜻을 크게 왜곡시킨 신학적 편견은 위험한 것이다.
(비평 : 칼빈)
“외식적인 속성을 가진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의하여 의심 없이 폐지되었다. 그는 진리이시기 때문에 그 분의 임재로써 모든 상징들은 사라졌다…그는 안식일의 참된 성취라고 나는 말한다… 안식일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니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라”(골 2:16,17) 고 사도는 말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미신적으로 날들을 준수한다” 모든 일에서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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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 : 안식일교회)
칼빈은 “그리스도교 강요”에서 골 2:16,17절을 인용하여 안식일은 그림자와 같은 의식적인 법으로 초림과 함께 폐지되었다고 강조하고, 네째 계명에 따라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을 미신적인 행위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평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
위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이러한 권면이 하필이면 골로새교회에 주어졌는지 그 배경, 문맥이 중요하다.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이 편지를 쓸 무렵(AD 62년경), 소아시아의 골로새 교회는 “골로새 이단”(The Colossian Heresy)으로 알려진 특별한 이단에 의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들은 페르샤와 헬라의 이원론(二元論)에 기초를 둔 동양의 신비 사상을 혼합한 일종의 종교철학으로 영지주의로 불리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도 각급 천사들을 높은 하나님과 낮은 인간을 연결하는 창조와 구원의 중보자로 소개하고,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성과 성육신을 부인하였다. 또한 십자가 로 이루어진 구원을 무시하고 자기 학대와 연결한 금욕을 실천하여 충만에 이르려고 노력하 는 한편, 할례 등 구약의 의식을 구원의 방편으로 소개하고 자신들이 물려받은 은밀한 영적 지식에 구원을 전파했다.
이러한 이단에 맞서 바울은 골로새서신을 기록했다. 전자에서 언급한 성경본문을 분섯해 본다. 십자가에 못박으셨다는 “의문에 쓴 증서”는 무엇인가? “의문”은 헬라어로 “도그마”(dogma)인데 고시된 일반 법규나 종교적인 제도나 규정으로 모두 법적인 책임을 내용으로 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스스로 만든 여러가지 의식적인 법규들을 가리킬 때도 이 말이 쓰였다(엡 2:15). “증서”라는 이 말은 성경전체에서 이곳 한곳 밖에 쓰여지지 않은 특별한 용어인데 “증서”가 헬라어로는 “케이로그라폰”인데 “손으로 쓴 것”을 뜻하고, 실제로 쓰일 때는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를 인정하고 직접 날인한 “빚문서”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라므로 14절의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 ﮲” 의 참 뜻은 흔히 해석하는대로 “모세의 율법을 폐지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셨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개정역 성경에 마로 번역되었듯이, “법적인 요구를 가지고 우리를 맞섰던 법적인 “죄의” 채무 증서를 끄집어 내사 십자가에 못박으심으로 폐기하셨다”는 뜻이 나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희생으로써 죄의 빚을 갚아주셨기 때문에 죄의 채무증서가 폐기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의지에 근거한 인간의 노력을 내세우는 “자의적 숭배(골 2:23)와 금욕을 실천하는 영지주의적인 유대주의자들이 16절에 나오는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의 의미를 왜곡시키고 그릇된 준수 방법을 부과하여 자신들의 목적에 맞추어(골 2:23) 가르침으로써 십자가로 이루어진 구원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누구든지 [거짓교사들] 16절에 언급된 행사들에 관하여 너희(골로새 교회 신자)를 [함부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이렇다 저렇다]폄론(판단)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사도는 지금 절기 자체를 정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기의 의미와 준수를 왜곡시키고 있는 거짓 교사들을 경계시키고 있는 것이다.
골로새서의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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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3장을 보면 “제칠일 안식일”과 일반적인 “절기”들이 구분되어 있다. 23장 3절에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라”라는 말로 “제칠일안식일”을 설명하고 있고, 4절부터는 “기한에 미쳐(in the season)지킬 (절기)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이것은 유월절, 무교절, 요제절 등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표하는 각 절기에 대한 설명이고, 그 절기에 따른 휴일(안식일)이 여러 곳에 언급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의 공휴일 제도에 요일에 따른 공휴일(일요일)이 있고, 명절이나 기념일과 관계되는 날자 공휴일(신정 삼일절, 어린이날, 제헌절 등)이 있듯이 성경 시대에는 공휴일이라는 말대신 안식일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두 종류의 휴일이 있었던 것이다. 골로새서에 나타난 더 이상 논란할 필요가 없는 안식일이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폐지된 절기와 관련된 안식일(날자 공휴일)을 말하는 것이다.
“장래일의 그림자(골 2:17)였던 유월절은 실체 “몸”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취됨으로써 없어졌지만 성만찬으로 기념되고 있으며, 요제절(1월 16일, 레 23:10,11)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성취됨으로써 없어졌지만 침례로 기념되고 있다.
무교절은 십자가에 찢겨진 그리스도의 몸이 안식일에 드려진 누룩 없는 빵이 되셔서 인류를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되심으로 성취되었지만, 무교절 안식일이 제칠일 안식일과 포개짐으로서 무교절 안식일은 없어졌지만 본래 창조의 기념일이었던 제칠일 안식일은 성별의 체험과 함께 십자가로 이루어진 구속의 기념일로 확증된 것이다(신 5:15).
하나님이 창조주이신 한 사람이 도덕적인 존재로 남아 있는 한, 안식일은 존재할 것이다. 이것이 신학적 상식에 속하는 일로, 자신들이 일요일을 지키는 성경 주석학자들인 감리교의 클라크(Adam Clarke), 장로교의 반스(Albert Barnes) 그리고 대중적인 개신교 성경주석에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증언 : 클라크)
“(골 2:16)에는 그리스도교가 소개됨으로써 안식일이 폐지되었다거나 안식일의 도덕적인 적용이 다른 것과 바뀌었다는 위험이 없다.
(증언 : 반스)
“십계명 가운데 한 계명이 인간을 구속하는 일을 그쳤다고 사도 바울이 가르쳤음을 최소한의 이유도 없기 때문에, (골 2:16)에서 사도 바울이 아무 거룩한 시간을 준수할 의무가 없다고 가르친 증거가 없다. 도덕률의 어떤 부분, 십계명의 어느 하나도 “장래일의 그림자”로 불리울 수가 없다. 이 계명들은 도덕률의 속성에 따라 영원한 것이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비평 : 일반교회)
“안식일은 폐지되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시작된 신약시대에는 모든 날이 다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로마서 14장 5,6절에서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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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 : 안식일교회)
로마서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부분(1장 ~ 11장)은 구원의 기본 진리인 믿음으로 의롭게 됨, 인간의 죄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등 교리적인 면을 다루고 마지막부분(12장 ~ 16장)은 깨달은 진리를 실생활에 어떻게 적응하여 실천해야 하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14장은 음식먹는 문제로 시작된 말인데 5,6절에서 어떤 날에 관한 문제를 잠시 언급한 후 끝절까지 음식문제로 형제를 판단하지 말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선 날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에 언급된 음식에 대하여 이해해야 하는데 14장은 레위기 11장에서 말하는 식품위생에 대한 것도 아니고 믿음이 약한 사람은 채식하고 믿음이 강한 사람은 음식을 한다는 표현도 아니다. 문제가 된 음식, 곧 육식은 “우상의 제물”에 관한 것이다(고전 8:1). 이에 대한 바울의 권면은 고전 10:25 ~ 27, 29:8,9에 열거되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때 “이날 저날”(14:5,6)의 참 뜻은 무엇인가?
로마서가 쓰여진 서기 57년경은 안식일 준수에 관한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이 확고했던 분위기 였다. 남의 판단에 따를 것 없이, “각자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롬 14:5)는 권면에 해당하는 날로 어떤 날일까? 그 날이 안식일처럼 공적인 예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개인적인 확신에 따라 개별적으로 처신하라는 권면을 받은 날이고 보면 개인 신앙에 연관된 행사임을 알수 있다.
당시에 이러한 특성을 지닌 날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가? 1세기 전후에 초대교회를 위한 교회요람으로 알려진 디다케(The Didache)라는 문서를 살펴보면 이런 단서들을 찾을 수 있다. 유대교 신앙에 기초를 두고서 복음서의 내용을 인용한 이 교훈집에는 성만찬과 물에 잠기는 침례와 함께 금식과 기도에 관한 교훈 등을 담고 있다. 그런데 금식일을 유대인처럼 월요일이나 목요일로 하지 말고, 수요일과 금요일로 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레에 두번씩 금식”(눅 18:11)했던 유대인의 전통이 초대교회에 전승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금식과 같은 개인적인 신앙 실천문제에 대하여 외적인 규정보다는 개별적인 판단에 맡기는 일은 합당한 일이다.
이상과 같은 금식일과 연관되어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동안 준수해온 절기에 관한 날들이 이상의 문제에 포함될 여지가 있다. 이상과 같은 롬 14장의 현실을 종합해볼 때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하라는 날이 안식일이나 일요일 날짜에 관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 당시 그러한 문제는 있지도 않았다. 자신도 철저한 안식일 준수자였던 바울이(행 17:2), 당시의 분위기에서 할례 이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킬 제칠일 안식일 준수를 무시하고 아무 날이나 상관 없으니 개의치 말고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하여 준수하라는 원칙을 제시하였을 리는 만무하다. 그것은 장차 있을 예루살렘 멸망을 앞두고 안식일 준수를 강조하신 예수님의 말씀에도 어긋나는 것이다(마 24:20).
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역사
(증언 : 주이트)
“왜 그리스도인들이 첫날에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가는 아직도 문제로 남아있다. 모든 학자들은 한 가지 절에서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즉 첫날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부활의 기념일로 축하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부활 사건에다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발생과정을 정확히 설명하기란 용이하지 않다. 옛부터 인정되고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일요일 예배와 같은 관습이 그 정확한 기원에 대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설명)
일요일을 주일(主日)로 옹호하는 대표적인 현대 신학자 주이트(Jewett)자신이, 그 기원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면서도 일요일을 옹호하는 것은 더욱더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연유에 대하여 성경과 역사에 몇가지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부당한 부활의 기념
성경 어디에도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다는 기록이 없다. 또 부활을 기념하라는 말씀도 없다. 마 28:10절은 오히려 예수님의 활동을 묘사하고 있다. 부활을 성만찬과 연관하여 일요일의 의의를 부여하려고 하나 이에 대한 신학적, 역사적 근거가 없다. 성만찬은 부활의 기념이 아니라 “주의 죽으심을 오실때까지 전하는 것”(고전 11:26)이다.
부활절
일요일의 발단이 된 유월절도 본래는 부활하신 일요일에 기념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1월 (Nisan) 14일이 해당되는 어느 날이나 준수했다. 그것은 본래 그리스도의 수난의 기념일이었지 부활을 기념한 것이 아니었다. 천주교에서 나온 책 [교부의 신앙](1990년판, 108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의무의 예를 들어 보자. 이는 물론 신자의 가장 중요한 의무와 하나이지만 성서에서는 그에 대한 명백한 구절을 하나도 찾아 볼수 없다. 성서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지 일요일은 아니다.”
예루살렘 총회(서기 49년경)당시
할례에 대한 폐지 결의는 있었으나 안식일 폐지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었다.
예루살렘 멸망(서기 70년)이후
예루살렘 파멸이후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 24:20)는 예수님의 권고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을 빠져나와 요단 등판펠라 지방에 정착했던 사실이 4세기 역사가 에피파니우스(315 ~ 403)에 의해 확인되었다. 예루살렘 멸망 후에 로마 황제 베스파시안(69 ~ 79)은 산헤드린 의회와 대제사장 제도는 폐지하고 성전에서의 예배는 금했으나, 안식일 준수 자체를 법으로 금하지 았았다.
바르 – 코케바 반란(AD 132 ~ 135)이후
예루살렘 멸망 이후로도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 회당에 참여하여 안식일에 예배한 사실과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회당의 기도문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을 저주하는 문구까지 첨가한 실례가 있다. 그러나 서기 132년 로마 황제 하드리안(Hadrian. AD 117 ~ 138)이 예루살렘에 로마의 주신 쥬피터(Jupiter)의 신전을 건립하려는 계획에 항거하여, 자신을 메시야로 자처하는 지도자 바르- 코케바(Simeon Bar – Kokeba)가 주동이 되어 일으킨 대반란은 안식일 역사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일개 군단의 전멸 등 로마군의 막심한 손실과 함께 유대인만도 58만 명의 인명 피해를 내면서 135년까지 3년간 계속된 이 반란으로 예루살렘은 다시 한번 폐허가 되었고 유대인은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축출되어 출입조차 금해졌다.
로마정부는 서기 70년의 반란 이후 유대인들에게는 특별과세를 부과했고 특별히 유대인의 안식일 준수와 할례를 미신행위로 간주하고 혹평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유대교의 한 분파로 알려져 온 초기의 그리스도교가 유대교로 오인되어, 무고한 증오와 핍박의 대상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후 그리스도교가 취할 수 있었던 자구책은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다르다는 것을 변증하는 일이었으며 이들이 2세기 대량으로 출현된 지식층 변증교부들인 것이다. 그들은 로마제국에 그리스도교를 변호하는 변증서를 써서 상신하는 한편,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유대인의 신앙과 문화를 경멸하고, 안식일과 할례를 정죄하는 활발한 활동과 변론을 계속했다.
로마교회와 일요일의 기원
유대인에 대한 로마제국의 증오가 더욱 피부로 느껴진 곳은 로마였고, 동시에 이방인 신자가 다수였던 로마의 그리스도교회는 핍박을 피하고 살아남기 위하여는 유대교에서 철저히 분리되어야 할 강박감에 사로 잡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사람이 비슷한 때에 로마교회에 등장했는데, 저스틴(100 ~ 165)이요, 다른 하나는 영지주의 이단자로 낙인찍힌 마르시온(d﮲ 160)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도덕한 과거 때문에 구약과 구약의 하나님, 유대인과 안식일을 증오하였다.
유대인을 미워했던 그는 “안식일에 관한 하나님의 작정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이 날에 금식”하라고 강조 하였다. 로마교회는 그를 이단으로 출교시키는 했지만, 그의 가르침에 일치하여, 본래 즐겁게 잔치하던 안식일을 슬프게 금식하는 날로 정하여 역대의 감독[교황]들은 이를 법으로 집행했다. 이러한 로마 교회의 처사에 대해 동방의 교회들과 암브로스(Ambrose. D 397)감독, 당시의 밀라노교회등 사방의 중요한 교회들도 이를 반대했다.
19세기 루터교의 교회사가인 네안더는 “동방교회에서는 안식일에 금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규칙이었다”고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교회의 여러 교회들 특히 로마교회와 스페인 교회는 유대인과 유대주의자에 대한 적대감 때문에 안식일을 금식하는 날로 지키도록 이끌어 나갔다” 로마교회의 이러한 적극적인 노력으로 안식일은 점점 어두운 그늘 속에 가려지고 일요일은 각광을 받는 축제일로 부각된 것이다.
그리스도교와 태양의 날
주이트의 말처럼 2세기의 교부 저스틴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억지로라도 그의 군주인, 황제(Antonius pius)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로마제국이 혹성신(惑星神)들 가운데 최고 신으로 높이기 시작한 태양을 위해, “태양의 날” “일요일 ﮲ the day of the Sun”이라는 명칭을 그의 변증서에서 제일 먼저 사용한 그리스도교 저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저작에서 안식일을 철저히 부정하고 경멸하는 한편 일요일을 그리도스인의 예배일로 격상시키는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시킨 최초의 사람이기도 하다.
일요일 성수로자인 주이트는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Sunday)이란 말을 사용하게 되자 그리스도교 신학은 그 말이 빛을 상징하는 표현이라는 입장에서 해석하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가 일요일에 재림한다는 전통이 세워지자, 그리스도인들은 그 날에 서서 기도를 하되 동쪽과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했다. 기원 4세기 이래 일요일이란 명칭은 그리스도교의 용어가 되어 있었다.” 이는 일반 자연신교에서 태양을 숭상하게된 과정과 흡사한 우상숭배적인 예배 현상이었다.
로마 교회와 부활절 – 일요일
안식일 대신 일요일 준수에 앞장선 것이 로마교회였듯이, 유월절 수난행사 대신 부활절을 확립시키는 일에도 로마교회가 앞장을 섰다. 그리하여 2세기 중엽에 이르러 1월 14일 유월절 수난기념일 대신에 유월절 다음에 오는 일요일(Easter – Sunday)로 날짜를 바꾸어 준수하려는 시도가 노골화되자 이를 반대하는 동방의 교회와 큰 충돌을 빚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름바 부활절 – 일요일 논쟁(Easter – Sunday)이다.
부활절 – 일요일을 반대한 편은 사도 요한이 죽기까지 봉사한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로서 요한의 제자로 순교자가 된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갑(polycarp. AD 155)를 비롯하여 에베소의 이름난 감독 폴리크라테스(Polycrates, AD 130 ~ 196)등이었다. 이에 맞선 로마교회의 감독은 식스투스(Sixtus, 116 ~ 126)를 시작으로, 아니케루스(Anicetus, 154 ~ 165), 빅토르 ǀ1세 (Victor – 189 ~ 199)로 이어졌다.
논쟁은 계속되었으나 유대인에 대한 로마인들의 증오심 때문에 시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 로마 교회는 오랫동안 준수되어온 안식일과 유월절 수난 기념일 대신 매주 일요일과 매년 부활절 – 일요일을 그리스도교의 예배일과 명절로 확립시키는 일을 쉽사리 수행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321년 로마 황제 콘스탄틴의 주재로 개최된 역사적인 니케아 종교회의 칙령에 포함된 감독들에 보낸 서한을 통하여 동방에 있는 교회들도 유대인과 함께 하지 말고, 로마교회와 같은 날을 부활절로 기념하고 명령함으로써 오랜 부활절 – 일요일 논쟁에서 로마 교회가 승리했음을 공인했다. 이러한 일련의 배경때문에 부활절을 “로마 교회 – 부활절”(Roman – Easter)이라고 부르기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교의 최대 명절이 된 부활절의 진상은 그 근원을 성경에 두지 않고 교부들의 기록과 부활절 – 일요일 논쟁 역사를 보면 당장에 수 있다.
참고로 고대 앵글로 색슨족등이 섬겨온 봄의 여신 “오스타라”(Ostara 혹은 Eoatre)를 위하여 베풀어졌던 다산(多産)을 비는 봄의 축제가 “이스터”이다. “동쪽(Ost)에서 태어나 땅에 새 생명을 가져오는 봄의 태양”을 상징하기도 한 이 여신은 “부활절 달걀”이나 “부활절 토끼”가 드러내듯 왕성한 생식과 다산(多産)을 약속했다. 여하튼 그리스도교의 부활절은 크리스마스의 경우처럼 고대 이교의 축제를 대신한 것임이 분명하다.
(카스다 게시판발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