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8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6-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다락골 성지와 갈매못 성지
충청남도 청양은 구기자와 청양 고추로 유명한 곳입니다. 예전에 통행금지가 있을 때에도 충청남도에서 유일하게 통행금지가 없던 곳이고, 충청남도의 알프스라고 하는 ‘칠갑산’이 있는 청정 고을입니다. 그 청양은 대전교구에서 가장 천주교의 교세가 약한 곳이랍니다. 이렇게 교세가 약한 동네가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답니다. 이 청양 고을은 옛날에는 충청도 홍주(洪州 - 홍성)목 관할구역이었습니다. 지금도 홍성에는 최씨들이 많이 살고 있고, 옛날에는 청양과 홍성에 최씨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었답니다. 이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 일대는 옛날에는 ‘다락골’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다락골은 성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 성인의 고향입니다.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는 두 번째 한국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입니다. 성인의 집안은 원래 교회창설 때부터 천주교를 믿어왔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고, 결혼한 다음에는 가족들과 상의하여 교우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서울로 이주하였다고 합니다. 외교인들의 탄압으로 가산을 버리고 서울을 떠나 강원도 금성, 경기도 부평을 거쳐 과천의 수리산에 정착하여 교우촌을 건설하고 오로지 신앙생활에만 몰두하였고 1836년에는 큰아들 최양업을 모방 신부에게 신학생으로 맡겨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1839년 초대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곧이어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순교자들의 유해를 거두어 안장하였고, 교우들을 위로하고 돌보아 주다가 1839년 7월 31일에 서울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마을 교우들과 일가 등, 교우 40여 명과 함께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습니다. 아들을 나라 밖으로 내보내어 신학공부를 시킨다는 죄가 추가되어 남달리 혹심한 형벌로 큰 고통을 받았답니다. 태장 340도, 곤장 110도를 맞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았고, 9월 11일 최후로 곤장 25도를 맞고 그 다음날인 12일에 옥중에서 일생을 마쳐, 순교하셨는데 그 당시 39세였습니다. 그래서 청양 사람들은 천주교를 믿으면 죽는다고 소문이 났고 또한 최씨들은 모두 천주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소문이 나서 지금까지 교세가 가장 약한 본당이 되었답니다.
<내포지방에 대한 박해의 손길은 이곳 다락골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포졸들이 포악하게 교우들을 잡아갈 때 어린 아이들이 무서워 울음을 터뜨리니 엄마가 "얘야, 지금 죽어야 천당 간다."라고 달래어 함께 천당으로 데리고 갔다 합니다. 그 당시에 감영은 홍주, 그러니까 지금의 홍성에 있었습니다. 1866년 대원군에 의한 병인박해 때 순교한 치명자들의 묘소로 추정되는 37여기 묘가 이곳 다락골에서 줄무덤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묘들의 주인공들이 누구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홍주와 공주에서 순교한 교우들이라는 설과 해미나 갈매못에서 순교한 교우들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다만 최양업 집안에서 이들의 유해를 순교지로부터 야음을 타 급히 옮겨다가 이 마을 뒷산인 이곳에 매장하였다는 증언을 이 마을 노인들이 전하였습니다. 최양업 신부님 집안들은 박해가 닥칠까봐 이 무덤이 신자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으나 몇 년 뒤 이 사실을 안 조정에서 이 마을을 불살랐고, 교우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오기선 요셉 신부님은 당신의 회고록인 '곡예사 같은 인생'에서 줄무덤에 대하여 두 가지 증언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1952년 당시 청양 사람들을 통해 조사한 내용인데 박해를 목격하였던 최영천 노인을 직접 만나 증언을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1964년에 오 신부님은 이곳을 현지 답사하여 순교자들의 집터와 줄무덤 17기를 확인하셨습니다. 또 하나의 증언은 1920년대에 공주에 사시던 송 아오스딩 노인께서 "청양 고개 너머에 숱한 치명자들의 묘가 있느니라."하시며 공주 감옥 뒤 황새바위에서 250여명의 교우가 치명당하셨는데 그 시체를 밤중 암암 철야에 이곳 청양 산 너머 외딴 비탈에 매장하느라 두 발가락이 다 문드러졌다고 오기선 신부님께서는 증언하십니다.>(대전교구 다락골 성지 소개서 인용)
오늘 복음에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걱정하시는 주님의 심정을 묵상합니다. 파리 외방선교회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한국으로 떠나는 아들 신부의 발에 입 맞추며 “오 거룩한 선교의 발이여, 주님의 축복을 내리소서.”하면서 눈물로 입 맞추는 부모님의 기도를 묵상합니다. 조선으로 가면 가는 즉시 죽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들 신부를 보내며 그 발에 입 맞추며 기도하던 신부님들의 부모님들의 그 깊은 성심을 오늘 다시 묵상합니다.
사지(死地)로 보내시는 주님의 그 마음을 감히 상상하고 있습니다. 누가 감히 주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복음을 선포하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지해서 믿음으로 떳떳하게 복음을 선포하여야 한다는 말씀에 용기를 얻고, 반드시 돌아오셔서 우리를 받아 안아 주시리라는 희망으로 행복함을 느낀답니다. 정말로 좋으신 주님의 사랑을 가슴 깊이 간직한답니다. 오늘 나는 친구들과 같이 갈매못 성지와 다락골 성지를 순례하면서 성인들의 순교를 묵상하고 왔습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4,2-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3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죄악은 모두 없애 주시고 좋은 것은 받아 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
4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않으렵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고아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5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6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7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8 그들은 다시 내 그늘에서 살고 다시 곡식 농사를 지으리라.
그들은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명성을 떨치리라.
9 내가 응답해 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프라임이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싱싱한 방백나무 같으니 너희는 나에게서 열매를 얻으리라.
10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축일7월 8일 성 아퀼라 (Aquila)
신분 : 사도들의 제자, 순교자
활동 연도 : +1세기
같은 이름 : 아귈라, 아뀔라, 아킬라
축일7월 8일 성녀 프리스킬라 (Priscilla)
신분 : 사도들의 제자, 순교자
활동 연도 : +1세기
같은 이름 : 브리스킬라, 쁘리스까, 프리쉴라, 프리스까, 프리스낄라, 프리스카, 프리실라
폰토스(Pontus, Pontos) 출신의 유다인으로 천막 만드는 일을 했던 성 아퀼라(Aquila)와 로마의 귀족 출신인 성녀 프리스킬라는 부부 사이이다. 성녀 프리스킬라는 성 아퀼라와 우연히 만나 그의 인품과 신앙에 이끌려 결혼을 했다. 그런 부부에게 위기가 닥쳐왔는데,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정치적 이유로 모든 유다인의 거주 금지령을 내려 로마를 떠나야만 했다(사도 18,2). 그들은 당시 지중해 연안의 유명한 항구 도시이자 국제도시인 코린토스(Corinthos, 코린토)로 갔다. 그곳에서는 민족이나 인종에 따른 차별 없이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던 중 코린토스에서 복음을 선포하던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를 만나 친분을 맺게 되었다. 마침 성 바오로와 생업이 같아 함께 지내며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이들 부부는 당시 아테네에서의 선교 활동에 별다른 성과 없이 코린토스로 돌아온 성 바오로를 그들의 집에 모시고 살면서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다. 당시 성 바오로는 많은 유다인들에게 공격받는 처지라 그와 함께 있다는 것은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재물을 봉헌해 사도의 활동을 돕고, 그들의 집을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들이 모이는 가정 교회(Domus Ecclesiae)로 사용했다.
날이 갈수록 유다인들의 위협이 증가하자 사도 성 바오로는 코린토스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성 아퀼라와 성녀 프리스킬라도 그를 따라나섰다. 그들은 바오로 사도를 따라 에페수스(Ephesus, 에페소)로 가서 그곳에 머물렀다. 사도 성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여러분에게 다시 오겠습니다.”(사도 18,21)라는 작별 인사를 하고 에페소를 떠나 예루살렘을 거쳐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에페수스에서도 이들 부부의 집은 가정 교회이자 교리교육의 중심이 되었다.
한 번은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성경에 정통한 아폴로(Apollos)라는 유다인이 에페소에 도착했다. 그는 이미 주님의 길을 배워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성 요한(Joannes, 6월 24일)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설교하자 성녀 프리스킬라와 성 아퀼라는 그의 말을 듣고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하느님을 길을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사도 18,24-26). 성경이 전해주는 대로 성녀 프리스킬라는 남편인 성 아퀼라와 함께 학식이 높았던 사람까지 가르치는 교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들 부부는 에페수스의 가정 교회 안에서도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특히 당시 유대 사회에서 여성이 종교적으로 무엇인가 가르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성녀 프리스킬라가 초대교회의 선교 활동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마지막에 성 아퀼라와 성녀 프리스킬라는 로마로 돌아갔다. 사도 성 바오로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그들의 공덕을 다음과 같이 칭송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의 협력자들인 프리스카와 아퀼라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내 목숨을 구하여 주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모든 교회가 그들에게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도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로마 16,3-5) 이를 통해 성녀 프리스킬라와 성 아퀼라 부부가 로마의 교회 공동체 내에서도 중요한 봉사를 수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전히 그들의 집이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가정 교회로 사용되고 있음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로마 순교록은 7월 8일 목록에서 그들이 소아시아 지방에서 순교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전설에 따르면 그들은 로마에서 장렬하게 순교했다고 한다. 가톨릭교회에서 성 아퀼라와 성녀 프리스킬라의 축일을 7월 8일에, 동방 정교회에서는 2월 13일에 함께 기념하고 있다. 다른 정교회에서는 성 아퀼라 홀로 소아시아 지역의 주교로서 7월 14일에 기념한다. 성녀 프리스킬라는 사도행전(18,2.18.26)에서 그렇게 불리지만 사도 성 바오로 사도의 서간에서는 프리스카(Prisca)로 불리고 있다(로마 16,3; 1코린 16,19; 2티모 4,19).
오늘 축일을 맞은 아퀼라 (Aquila) 형제들과 프리스킬라 (Priscilla)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