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1일 월요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4─1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11,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미지근한 사랑은 원치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평화를 주시러 오셨습니다. 그분께서 주시는 평화와 구원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 21)하시며 우리를 축복해주시는 분이 오늘은 세상에 칼을 주시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부모와 자식 간에 사랑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화끈한 사랑을 원하시는 주님께서 형편없는 사랑으로 만족해하는 사람들을 보고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못한 사랑을 또한 하느님께 바치면서 자신의 예배는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기 싫으셨던 모양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서, 하느님께 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집안 식구 간에 불화하면서 하느님께는 기도를 잘하고, 신심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착각하기도 하고 자기 자식에게 사랑을 많이 주기 위해서 부모를 헌신짝 버리듯 하면서 하느님을 흠숭한다고 장담합니다.
우리가 부모를 100점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식도 100점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평화의 원천이시며,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은 1000점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를 50점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식들은 40점으로 사랑하고, 하느님을 30점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더 많이 사랑받아야할 하느님이 제 3위로 4위로 밀려납니다. 아니 돈 때문에 하느님이 꼴찌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더불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사람들에게 대접은 후하면서 하느님께 바치는 헌금은 아깝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 칼을 주시며 미적지근한 사랑을 과감히 잘라버리고 시원찮게 사랑하려거든 아예 ‘인연을 끊어버리고 싶으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을 하려거든 제 십자가를 지고 죽을 만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사실 저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며 살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1960년대에 한 유명한 말은 “앞으로 10년 이내에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도전할 만한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지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의미가 있고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쉬운 일이고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목숨을 버리고 전념해야 할 가치가 없습니다.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도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만큼 도전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고 해볼 만한 일입니다.
흔히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는데 ' 같이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의 됨됨이를 보려거든 그들의 부모를 보거나 그들의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이어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예언자를 알아보는 사람은 그들이 예언자이기 때문에 알아볼 수 있고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예언자가 받을 상을 당연히 받아야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을 믿음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받을 만한 상을 받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우리는 용기와 희망을 가집니다.
의인은 의롭게 살기에 의인을 알아보고, 의로운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만이 의인을 닮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천국을 상으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하느님께서 그런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실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의롭게 살지 못하면서 선행을 많이 하고 제아무리 삶을 잘 살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선행을 하느님께서 인정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선행을 보고 그 일에 협조하는 사람들이나 성직자의 사목을 돕는 사람과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노력하는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돕는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격려하십니다. 물 한 모금이라도 마시게 한다면 그 공적을 당신께서 갚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비유적으로 오늘 그들의 공적을 아주 높이 평가하시며 사목의 협조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십니다. 골고타 십자가의 길을 힘겹게 걸으시던 예수님께 키레네 사람 시몬은 물 한잔이라도 마시게 한 협조자로 구원의 길에 동참한 위대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구원사업의 협조자가 되어줄 그런 사람이 되기를 주님께서 간절히 바라십니다.
<너희 자신을 씻어라. 내 눈앞에서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1,10-17
10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11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12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13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14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15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17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축일7월 11일 성 베네딕토 (Benedict)
신분 :수도원장, 설립자
활동 지역 :누르시아(Nursia)
활동 연도 :480?-547년?
같은 이름 :베네데토, 베네딕도, 베네딕또, 베네딕뚜스, 베네딕투스, 베네딕트, 분도
서방교회 수도 생활의 아버지인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또는 베네딕토)는 480년경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의 누르시아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했다. 성녀 스콜라스티카(Scholastica, 2월 10일)는 그의 쌍둥이 누이동생이다. 그는 청소년기에 로마(Roma)에서 수학하면서 서로마 제국의 멸망 후 분열과 갈등을 겪는 교회의 혼란스러운 모습과 도시 생활의 윤리적 타락과 유혹에 환멸을 느껴 고향 근처의 고요한 광야를 찾아갔다. 그는 500년경 로마 동쪽 내륙의 엔피데(Enfide)라는 작은 산골 마을로 가서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는 준비 없는 독거 생활이 영성 생활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동방교회의 사막 은수자처럼 살기 위해 장소를 찾다가 인적이 드물고 사람들이 찾기 어려운 수비아코(Subiaco)의 한 동굴에 정착하게 되었다.
성 베네딕투스는 3년 동안 그 동굴에 살았는데, 자신을 그곳으로 인도한 로마누스(Romanus)라는 은수자가 가끔 밧줄에 매달아 내려주는 음식을 먹으며 고독 속에서 철저한 금욕생활을 실천하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온갖 육신의 유혹과도 맞서 싸워야 했다. 그는 온전히 독수자가 되어 기도와 성경 말씀으로 사는 것이 소망이었지만, 그의 성덕과 엄격한 생활이 주위에 널리 알려지자 인근 주민들이 영적 지도를 받기 위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소문이 비코바로(Vicovaro)에 있는 한 수도공동체에 알려져 그들로부터 원장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를 수락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성 베네딕투스의 엄격한 규칙에 반대해 마침내 그를 독살하려고까지 하자 다시 수비아코의 동굴로 되돌아왔다.
그 후에도 수많은 제자가 그를 찾아 몰려왔다. 그는 자신이 임명한 원장의 지도하에 있는 12개의 수도원을 조직하고 일과표의 하나로 육체노동을 실천하도록 했다. 수비아코는 곧 영성과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자 인근 본당의 사제인 플로렌티우스가 그의 활동을 시기해 죽이려고 하자, 그는 다른 수도자들의 안전을 위해 몇몇 제자들과 함께 수비아코를 떠나 529년경 몬테카시노(Monte Cassino)로 이주해 자리를 잡았다. 그는 아폴로 신에게 헌정된 이교도의 신전을 파괴하고 우상 숭배에 물든 인근 주민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으며, 530년경에는 서방교회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는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인근 피우마롤라(Piumarola)에 여자 수도원을 설립하고 쌍둥이 여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에게 초대 원장의 직분을 맡겼다. 그의 성덕과 지혜 그리고 기적에 대한 명성이 계속 퍼져나가면서 또다시 많은 제자가 몰려왔다.
그는 그동안의 체험을 통해 흐트러진 수도 생활을 바로잡고 서방교회에 적합한 새로운 형태의 수도 생활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그래서 그는 수도자들을 단일 수도원 공동체로 조직하고, 상식을 존중하면서 올바른 금욕생활 속에서 기도와 독서(Lectio Divina) 그리고 노동을 실천하도록 한 명의 원장 아래 있는 공동체 생활을 규정하는 규칙서를 썼다. 이렇게 해서 성 베네딕투스의 수도 생활 정신을 온전히 담아 서방교회 수도 생활의 기초가 된 “수도 규칙”(Regula Monachorum)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가 만든 “수도 규칙”은 순종과 정주 그리고 신심을 강조했는데, 이후 서방교회에 새로 설립되는 수많은 수도원의 규칙에 적용되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수도 생활의 모토를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로 정해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중심으로 한 공동기도와 노동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수도자들을 지도하고 교황의 고문을 담당하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도 힘썼다. 또한 동고트족 토틸라(Totila) 왕의 침공으로 황폐해진 롬바르디아(Lombardia)를 재건하는 데 정열을 쏟았다. 한번은 그의 명성을 듣고 토틸라 왕이 그를 찾아와 먼저 신하에게 자신의 옷을 입혀 들여보냈지만 단번에 그가 가짜임을 알아챘다고 한다. 성 베네딕투스는 토틸라 왕에게 전쟁을 멈추도록 강력히 요청하였다.
그는 547년경 3월 21일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에서 선종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가 선종하고 얼마 후에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고는 6일 전에 미리 무덤의 문을 열어놓도록 했다. 그리고 선종 당일 마지막 성체를 영한 후 두 수도승의 팔에 의지해 양팔을 높이 들고 기도하는 가운데 선 채로 선종하였다. 그의 축일은 선종한 날인 3월 21일이 사순시기와 겹치는 관계로 이미 8세기 말부터 여러 지방에서 7월 11일로 옮겨 축일을 기념해 왔다. 그리고 1969년 전례력 개정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보편 전례력에서 7월 11일로 확정되었다. 동방정교회는 3월 14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성 베네딕투스는 1964년 10월 24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검은색 수도복을 입고 수도 규칙서나 그를 독살하려 했던 일을 상징하는 뱀이 들어 있는 잔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된다. 그리고 독이 든 빵을 물고 있거나 날아가는 까마귀와 마귀를 물리치는 십자가도 함께 등장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는 베네딕토 형제님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