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0일 수요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교회는 자기만의 엄격한 논리에 갇혀 있는지도 모릅니다.
8년 전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에 참석하기 위해서 브라질을 방문 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현재 가톨릭교회 일각이 직면한 신도 이탈 현상을 '엑소더스' (exodus)로 표현하며 통렬한 자기비판의 메시지를 던졌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브라질 주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재 교회가 "엑소더스" 상태에 처해 있다며 "교회가 더는 의미 있고 중요한 어떤 것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해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쩌면 교회는 너무 허약해 보였고, 이들의 필요와 동떨어져 있었고, 너무 차가웠고, 자기만의 엄격한 논리에 갇혀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질타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교회인지 돌아보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교회와 사람들이 밀알이 되어 살았다면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는 현상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황님의 말씀대로 지금의 엑소더스 상태는 교회가 사람들에게 더는 의미 있고, 중요한 것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살면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존재의 의미, 인간 존엄의 의미, 사랑과 가치와 행복의 의미를 찾으며 세상을 삽니다. 신앙 안에서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찾으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세속화되면서 그 중요한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의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고 실망하였기 때문이고, 바로 교회에서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실망하였다는 것입니다.
교황님은 교회가 너무 허약해 보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 바른 말을 하지 못하고, 권력과 정치적 횡포에 대해서 정의의 편에 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정의구현을 바라고 있습니다. 교회가 쓴 소리를 하고 방황하고 길을 잃고 잘못하는 정권에 대해서 방향을 잡아주는 일을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허약하다고 느끼는 것은 하느님께서 허약하다고 느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실망하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 실망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의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의 올곧은 외침이 너무 미약하고,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는 보호적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교회에서도 희망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입니다.
교황님은 교회가 필요에 동떨어져 있었다고 질타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신자들은 위로와 위안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교회를 찾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각박한 사회에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데에 대한 섭섭함’이 가장 컷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들에게 너무 주는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나눔을 강요하고, 선행을 강요하고, 착하게 살 것만 요구하였지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 안을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 차갑게 굴었기 때문에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받은 상처는 사회보다도 더 컸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한 마디로 사랑을 부르짖지만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엄격한 논리는 질서정연합니다. 신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윤리학적으로, 인문사회학적으로 아주 논리 정연합니다. 그래서 빈틈이 하나도 없습니다. 신자들은 그 논리에 진저리가 나 있다는 것입니다. 교황님은 ‘자기만의 엄격한 논리에 갇혀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껴안을 줄 모르는 것을 나무라고 있는 것입니다. 엄격한 논리와 교리와 신학적 가르침은 옳은 것입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가 아니라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좋은 게 좋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삽니다. 그 사람들을 껴안고 부드럽게 풀어줄 무엇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멍에를 메는 ‘온유하고 친절한 방법’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부드럽고 친절하고 칭찬하고 감사하고, 사랑해서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고 교회를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따뜻한 품에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 좋은 품을 우리가 잘못해서 떠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교황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냉정하게 되돌아 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그 일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성직자들과 힘을 합쳐서 교회를 쇄신하고 좋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더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땅에 떨어져 썩어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9,6ㄴ-10
형제 여러분, 6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7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8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9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10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축일8월 10일 성 라우렌시오 (Lawrence)
신분 : 부제, 순교자
활동 연도 :+258년
같은 이름 : 라우렌시우스, 라우렌티오, 라우렌티우스, 로렌스, 로렌조
로마(Roma)의 일곱 부제(차부제 포함) 중 한 명인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는 에스파냐의 우에스카(Huesca) 출신으로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탄압하는 새로운 법을 공표하면서 시작된 박해로 인해 258년 순교했다. 그는 교황 성 식스투스 2세(Sixtus II, 8월 7일)를 돕는 로마의 일곱 부제 중 수석으로, 주된 임무는 교회 재산 관리와 빈민 구호 및 일반적인 교회 관리였다. 교황 성 식스투스 2세가 카타콤바에서 미사를 봉헌하던 중 체포되어 순교의 길을 걷자 성 라우렌티우스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해 울면서 그 뒤를 따라갔다. 교황은 그를 위로하며 앞으로 더욱 힘든 투쟁이 남아 있으니 그 전쟁에서 빛나는 승리를 얻어야 한다며, 그 또한 나흘 뒤에 체포되어 자신을 뒤따를 것이라는 예언을 해주었다. 그러자 성 라우렌티우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돌아와 교회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로마의 집정관이 그의 이런 행위를 알고 교회의 모든 보물을 즉시 황제에게 바치라고 엄명을 내렸다. 이 말을 들은 성 라우렌티우스는 교회의 재산을 모두 모아 정리하려면 3일의 여유가 필요하다며 시간을 청한 후, 교회의 값비싼 그릇들과 돈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재산을 요구하는 집정관에게 병자와 고아와 과부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모두 데리고 나타나 “이 사람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분노한 집정관은 그를 체포해 온갖 고문으로 괴롭히다가 뜨거운 석쇠 위에 눕히고는 구워 죽였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석쇠 위에서 살이 익어가자 성 라우렌티우스는 “이쪽은 다 익었으니 뒤집어라.”라고 말한 후 한참 뒤에 “이제 다 익었으니 뜯어먹어라.”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리고 순교 때나 그 후에도 그의 몸에서는 향기가 났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순교 이야기는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가 389년에 쓴 “성직자 직무론”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에 의해 전해졌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8월 28일)는 강론에서 “그는 주님의 식탁에서 주님을 받았기에 그 보답으로 자기 자신을 주님께 제물로 바쳐 드렸습니다.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했고 죽음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았습니다.”라며 그의 순교에 대해 언급했다. 시인 프루덴티우스(Prudentius)는 그의 죽음과 표양이 로마의 회개를 가져왔고, 로마에서 이교의 종말을 고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며 그를 칭송했다. 성 라우렌티우스의 축일은 4세기 초부터 교회 전례에 도입되었고,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의 무덤이 있던 카타콤바 위에 세운 성당은 로마의 순례자들이 즐겨 찾는 주요한 일곱 성당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공경은 빠르게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성 라우렌티우스는 로마와 여러 도시의 수호성인이면서 가난한 사람과 요리사와 소방관의 수호성인이다. 교회 미술에서 그를 상징하는 문장은 순교 도구였던 석쇠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라우렌시오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