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4일 연중 제20주일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칼
세상 끝 날이 되면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져 이렇게 될 것이라고 모레셋 사람 미카에게 내린 주님의 말씀에는 예루살렘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미카 예언자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시면서 오늘 당신께서 이루실 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친구를 믿지 말고 (미카 7, 5) 벗을 신뢰하지 마라. 네 품에 안겨 잠드는 여자에게도 네 입을 조심하여라.
아들이 아버지를 경멸하고 (미카 7, 6) 딸이 어머니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대든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그러나 나는 주님을 바라보고 (미카 7, 7) 내 구원의 하느님을 기다리리라. 내 하느님께서 내 청을 들어 주시리라.
주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뽑으시고 복음 선포를 명하시며,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 선포에 매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림과 주님을 따르는 것에 대해서 강조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버려야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가장 가깝고 소중한 것부터 잘라내야 한다는 것을 예로 들어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과 갈라서야 한다는 대 전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생결단을 해야 하고, 모질게 마음을 먹고, 죽기 살기로 작정하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예수님께서 집안 식구를 예로 들으시는 것은 도저히 갈라 설 수 없는 사람들이라도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갈라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오 10, 37-39)
이 말씀은 역으로 가족은 절대로 갈라 설 수 없는 존재이고, 또한 갈라서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고 선포하는 데는 가족보다도 더 우선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지 가족과 갈라서라고 하시는 말씀은 아닙니다.
2. 아버지와 아들의 속성 : 아버지는 전통을 중시하고, 조상들의 가르침을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새로운 학문과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아버지는 구약을 따르고, 아들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부자관계에 칼을 대고 갈라서게 하는 것입니다.
3. 어머니와 딸 : 어머니는 딸을 호강 시키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부자나 권력이 있는 사위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딸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자신의 기준으로 좋은 사람을 택하려고 합니다. 모녀간에 추구하는 이념이나 현실적인 생각이 다릅니다.
4. 며느리와 시어머니 : 아들과 남편에 대한 집착과 관심의 방향이 다릅니다. 그리고 재산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 다툽니다. 고부간 갈등의 원천은 탐욕과 집착입니다.
이렇게 대립되는 이념과 신념, 이상과 현실, 추구하는 가치관 등이 다른 것을 억지로 통합하려고 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런 사람들의 사욕편정(邪慾偏情)을 끊어 버리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사랑’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 ‘칼’을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칼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잘라 버린다. 잘라내는 도구입니다. 못쓰는 것을 잘라 버리거나 환부(患部)룰 도려낼 때 칼을 씁니다.
2. 칼을 대서 좋은 부분을 취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3. 접(接, 椄)을 붙이기 위해서 칼로 자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칼을 쓴다는 것입니다. 수술할 때 칼을 쓰는 것을 집도(執刀)라고 하는 것입니다.
4. 조각하기 위해서 칼을 씁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칼을 잡는 것입니다.
칼을 잡는다는 것이나 칼을 주신다는 것은 사생결단(死生決斷)의 의미가 있습니다.
즉 주님을 따르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세상에서 맺어진 모든 것에 미련을 두지 말고 사생결단(死生決斷)의 자세로 죽기 살기로 결심을 하고 주님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추구하는 “가족관계도 잘 생성 될 것이고, 부자관계도 회복될 것이고, 어머니와 딸, 며느리와 시어머니도 원수와 같이 살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어떻게 사생결단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묵상해 봅니다.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2,1-4
형제 여러분, 1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2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3 죄인들의 그러한 적대 행위를 견디어 내신 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낙심하여 지쳐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4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축일8월 14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Maximilian Mary Kolbe)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 연도 : 1894-1941년
같은 이름 : 꼴베, 막시밀리아누스, 막시밀리안, 막씨밀리아노, 막씨밀리아누스, 맥시밀리안, 맥시밀리언
1894년 1월 7일 폴란드의 즈둔스카볼라(Zdunska Wola)에서 태어난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Maximilianus-Maria Kolbe, 또는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는 라이문두스(Raimund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신심 깊은 부모의 신앙교육 덕분에 강한 성모 신심을 갖고 성장한 그는 1907년 10월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레오폴리의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3년 뒤인 1910년 9월 4일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면서 막시밀리아누스라는 수도명을 택했다. 이곳에서는 그는 중등 교육과 수련을 받고 1911년 9월 5일 첫서원을 하고 1912년 12월 로마로 가서 공부를 계속했다. 그는 로마의 프란치스코회 국제 신학원에 머물면서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보나벤투라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무렵 23세였던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는 여섯 명의 동료와 함께 신학원장 신부의 허락하에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회’(Militia Immaculatae)라는 모임을 결성했다(1917년 10월 16일). 이 모임은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을 철저히 봉헌하고,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서 활동하는 일종의 신심 단체이다.
1914년 11월 1일 종신서원을 하고, 1918년 4월 28일 사제품을 받은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는 1919년에 고국인 폴란드로 돌아왔다. 귀국 직후 크라쿠프(Krakow)의 프란치스코회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동료 수사들은 물론 대학생들과 군종신부들 안에서 기사회 조직을 만들었다. 그러나 귀국할 때부터 폐결핵을 앓고 있던 그는 1년 6개월을 요양소에서 생활했고, 1921년부터는 한쪽 폐로만 살아야 했다. 1922년부터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Rycerz Niepokalanje)라는 잡지를 발행하면서 매스 미디어를 통한 사도직을 시작했다. 이 잡지는 초기에 그로드노(Grodno)에서 발행되다가, 1927년에는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Miepokalanow)이라는 수도 생활 공동체에서 발행하였다. 이 마을은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 신부가 바르샤바(Warszawa)에서 40km 떨어진 방대한 지역에 설립한 공동체이다. 그리고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나가사키 근처에 ‘원죄 없으신 성모의 뜰’이라는 작은 수도 마을을 세우고,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를 일본어로 번역해 발행했다. 6년 동안 일본 선교를 위해 노력한 그는 중국 · 한국 · 인도에도 공동체를 세우려고 했으나 외부적인 이유로 실현하지 못했다.
1936년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 총책임자로 임명된 그는 전 세계에 분원을 세우는데 큰 공을 들였다. 1938년 무렵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 분원이 전 세계에 762개나 되었다. 폴란드 내에서 유명해진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 신부는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동료 수도자들과 함께 나치에게 체포되어 수용소에 갇혔다가 곧 풀려났다. 이후 그는 가난한 이들과 박해받는 유대인들을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에 거주토록 하면서, 이들을 보호하고 돕기 위해 노력했다. 1941년 그가 “자유”라는 기고문을 발표하자, 나치는 유대인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2월 17일 그를 체포하여 바르샤바의 파비악 형무소에 감금했다가 2월 28일 ‘죽음의 수용소’라고 불리는 아우슈비츠로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저명한 가톨릭 신부라는 이유로 더욱 혹독한 매질과 고문을 받으면서도, 동료 수감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끊임없이 격려하였다. 그러던 중 1941년 7월 말경, 한 수감자가 수용소를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치는 한 명이 탈출하면 그 벌로 열 명을 처형했다. 나치에 의해 지목된 열 명의 처형 대상자 중 한 폴란드 사람이 자기에게는 가족과 아이들이 있다고 울부짖자 이를 본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 신부는 자원해서 대신 죽겠다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치의 허락을 받고 다른 아홉 명과 함께 지하 감옥에 갇힌 그는 아사형에 처해졌다. 다른 동료들이 모두 굶어 죽을 때까지 2주 이상을 물과 음식 없이 생존한 그에게 나치는 결국 독극물을 주사했고, 그는 1941년 8월 14일 성모 승천 대축일 전날 아우슈비츠의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다음 날 그의 시신은 아우슈비츠의 시신 소각장에서 불태워지고 말았다.
오늘날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 신부가 죽음을 맞이한 감옥은 수많은 순례자가 찾는 장소가 되었다. 1948년 그에 대한 시복 절차가 파도바(Padova)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1971년 10월 17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나치 희생자들 가운데 처음으로 복자품에 올랐다. 1982년 10월 10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그에게 ‘자비의 순교자’(Martyr of Charity)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시성식을 거행했다.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 신부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매우 깊었으며, 성모 마리아에게 특별한 공경을 바친 성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수감자들의 주보성인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마리아 콜베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