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5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4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기도를 어떻게 바치고 있는가?
한 열심한 신자가 자신의 신심은 상당히 높은 단계에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우습게 알고 얕보기 시작하고 그런 사람들의 기도를 받아주시는 하느님을 불평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어느 날 그의 마음을 읽고 가을에 아주 바쁘게 일하고 있는 어떤 농부를 만나 기도하는 모습을 잘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농부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느님을 아주 큰 소리로 부르고, “주님, 저 일하러 나갑니다.” 하고 그는 온종일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리고 해질 무렵 돌아와서 “주님, 오늘 열심히 일했습니다.”하고 큰소리로 외치고는 잠자리에 드는 것입니다.
그 신자는 혼자 생각하기를 “어떻게 이런 시골 농사꾼의 기도가 하느님의 마음에 든다는 말인가? 내가 보니까 온 종일 농사일에만 몰두하고 있구먼!” 그러자 주님께서 그 신자에게 “얘야, 큰 대접에 우유를 넘치도록 가득 담아가지고 시내를 다 돌아다녀라. 그런데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돌아오너라.” 그 신자는 아주 조심해서 우유를 흘리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시내를 돌아다니는 동안 너는 나를 얼마나 자주 생각했느냐?”하고 주님이 물으셨습니다. 그 신자는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한 번도요. 주님! 우유 대접을 지켜보라고 명령하셨는데 어떻게 주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 주님께서 “그 그릇이 네 정신을 모두 앗아가서 너는 나를 까맣게 잊었었구나. 하지만 저 농부는 한 가족을 부양하느라고 열심히 일하는 데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은 진실로 나를 생각하고 내게 보고하고 있지 않느냐?” (개구리의 기도1)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바치고 때로는 몇 십 번도 바칩니다. 아주 짧지만 주님의 기도는 정말 모든 기도를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완벽하고 아름다운 기도인지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입으로만 기도문을 외우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 기도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빼먹고 기도하고, 앞부분은 주님의 기도로 시작하고 뒷부분은 성모송의 뒷부분으로 마무리하기도 합니다. 무의식 중 식사 전 기도로 돌변하기도 하고, 묵주 기도의 구원송이 나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성의 없이 입에만 발려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정말 우리는 얼마나 반성하고 주의하고 있습니까.
어떤 신부님이 분심 없이 주님의 기도를 잘 바치면 말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열심히 주님의 기도를 외우다가 중간쯤 가서 “신부님! 말을 주실 때 안장도 주실 건가요?” 하더랍니다. 그만큼 사실 분심 없이 기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모든 기도를 잘하고 있다고 말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기도문을 외우는 것을 같이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느 신부님께서 예전에 찰고(察考)를 할 때 일입니다. 찰고란 교리나 교회에서 공부한 것을 신부님 앞에서 시험을 보는 제도인데 교회의 아주 아름다운 시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은 한 자매에게 주님의 기도를 바쳐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자매님이 기도문을 외우다가 중간에서 “신부님 까먹었는디?..”하면서 ‘맨 날 외우던 것을 신부님 앞에서 외우려니까 자꾸만 잊어버린다.’고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신부님은 ‘기도를 바쳐보라고 했지, 외워보라고 하지 않았다.’고, 기도문을 외우는 것보다는 기도서를 보고라도 정성을 다하여 바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실상 주님의 기도보다 더 완벽한 기도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바쳐야 하는 기도이니까 ‘주님의 기도’가 아니라 ‘자녀의 기도’이어야 마땅하지만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점을 강조하여 ‘주님의 기도’라고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그 가장 완벽한 주님의 기도를 그 동안에 잘못 바치고, 함부로 바치고 했던 것은 모두 덮어두고 이제부터 그 내용을 묵상하면서 아주 천천히 성심을 다하여 열심히 바쳐야겠습니다. '기왕불구'(旣往不咎)란 말이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은 어찌할 도리가 없고 그것보다 앞을 내다보고 마음자세를 가다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 동안 바쳐왔던 ‘주님의 기도’를 이제는 정말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자녀의 기도’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2,1-2.7-14
형제 여러분, 1 십사 년 뒤에 나는 바르나바와 함께 티토도 데리고 예루살렘에 다시 올라갔습니다.
2 나는 계시를 받고 그리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민족들에게 선포하는 복음을
그곳 주요 인사들에게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전에 한 일이
허사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7 그들은 오히려 베드로가 할례 받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듯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8 할례 받은 이들을 위하여 베드로에게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 주신 분께서,
나에게도 다른 민족들을 위한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9 그리고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지는 야고보와 케파와 요한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고,
친교의 표시로 나와 바르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이들에게 가기로 하였습니다.
10 다만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기로 하였고, 나는 바로 그 일을 열심히 해 왔습니다.
11 그런데 케파가 안티오키아에 왔을 때 나는 그를 정면으로 반대하였습니다. 그가 단죄받을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12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기 전에는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더니,
그들이 오자 할례 받은 자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몸을 사리며 다른 민족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13 나머지 유다인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저지르고, 바르나바까지도 그들과 함께 위선에 빠졌습니다.
14 그러나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에 따라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케파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다인이면서도 유다인으로 살지 않고 이민족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민족들에게는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축일10월 5일 성녀 플로라 (Flora)
신분 : 동정녀
활동 지역 : 볼리외(Beaulieu)
활동 연도 : 1309-1347년
성녀 플로라는 누구나 칭찬하는 착한 어린이로 성장하여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장성하여 부모의 결혼 강요를 완강히 거부하고 하느님께 일생을 봉헌하기로 결심하여 볼리외에 있던 성 요한의 구호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한 번은 자신의 삶이 너무나 평탄하다는 그릇된 생각에 빠진 적이 있고, 동시에 세속의 쾌락을 탐하려는 불같은 유혹으로 깊은 실망감을 맛보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동료들은 그녀가 위선적이라고 혹평하였으나 자신의 영혼상태를 잘 알아본 어느 고해신부의 도움으로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였다.
어느 해 모든 성인의 날에 그녀는 탈혼에 빠졌는데 성녀 체칠리아(Caecilia) 축일까지 약 3주간이나 계속되었다. 또 한 번은 8마일 밖의 어느 성당에서 사제가 미사 도중에 축성한 성체 조각을 떨어뜨린 사실을 알게 되어 경건하게 모신 일이 있었다. 이때부터 그녀의 초자연적 식별력이 돋보이게 되었다. 또 성령을 묵상할 때에는 땅에서 4피트나 떠오른 사실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신비스런 영적 체험은 구세주의 몸에 받으신 상처를 자신의 내면에서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38세의 일기로 운명하였다.
오늘 축일을 맞은 풀로라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을 가득히 받기를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