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2월 4일 대림 제2주일(인권주일, 사회교리주간)
인간 존중과 인권 신장은 복음의 요구다. 그럼에도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짓밟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82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내기로 하였다. 교회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존엄한 인간이 그에 맞갖게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보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권 주일로 시작하는 대림 제2주간을 2011년부터 ‘사회 교리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오늘날 여러 가지 도전에 대응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교회의 ‘새 복음화’ 노력이 바로 사회 교리의 실천이라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일깨우려는 것이다.
오늘은 대림 제2주일이며, 한국 교회가 정한 인권 주일이고 사회 교리 주간의 시작입니다. 인류를 구원하러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사회를 보는 올바른 눈을 가지게 하는 사회 교리를 배우고 익혀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고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12
1 그 무렵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2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3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4 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5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6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7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9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10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2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제41회 인권 주일, 제12회 사회 교리 주간 담화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루카 6,8)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제41회 인권 주일입니다. 우리가 해마다 인권 주일을 지내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인권이 지닌 고유하고 중요한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서입니다. 인권은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보편적이고 침해할 수 없으며 양도할 수 없는 권리입니다. “인권의 궁극적인 원천은, 인간의 단순한 의지나, 국가라는 실재나, 공권력이 아니라, 바로 인간 자체에서 그리고 그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에게서 찾아볼 수 있기”(『간추린 사회 교리』, 153항) 때문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여전히 인권을 온전히 누리고 있지 못하는 많은 사람의 고유한 인권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사람과 국가를 비롯한 인간 공동체가 인권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지만,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성(性), 지역, 종교, 학력, 장애, 재력이나 권력 등의 이유로 주류 사회로부터 부당하게 차별받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권을 빼앗긴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배척된 이들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속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에 심각하게 직면해 있습니다. “배척된 이들은 더 이상 사회의 최하층이나 주변인이나 힘없는 이들이 아니라, 사회 밖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착취된’ 이들이 아니라 쫓겨난 이들, ‘버려진’ 사람들입니다”(「복음의 기쁨」, 53항).
우리는 성경에서 배척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신 예수님’(루카 6,6-10)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안식일에 회당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그라든 손 때문에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고 주류 사회에서 밀려나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회당에서도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구석’에 밀려나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엄연히 거기에 있음에도 보이지 않는 사람, 함께 있음에도 함께 있지 않은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실제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을 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 규정에 눈이 멀어 구석에 밀려난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틈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그를 주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매서운 눈초리를 뚫고 나아가 당시 절대적이었던 안식일 규정을 넘어 사람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루카 6,8)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구석으로 밀려나 보이지 않던 사람을 한가운데 세우심으로써 회당의 모든 사람이 그를 볼 수 있게 하셨고, 앞으로 그를 내쫓거나 버리지 말고 온전한 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고쳐 주심으로써 그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인권 주일을 맞이하여 특히 배척된 사람들, 엄연히 있어도 무관심으로 방치되거나 변두리에 내몰린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택배 물건을 받고 기뻐하면서도 택배 노동자의 과로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배달 음식으로 만찬을 즐기면서도 분초를 다퉈 오토바이를 몰아야 했던 배달 노동자의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은 좀처럼 안타까워하지 않습니다. 갓 구워 낸 빵의 향기를 즐기지만, 밀가루 반죽기에 끼어 죽어 간 사람은 그저 남일 뿐입니다. 밤새 내놓은 쓰레기 더미들이 말끔히 치워진 집 주위를 바라보며 상쾌함을 느끼면서도 정작 누가 치웠는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늙고 병든 가족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요양 보호사들을 시간당 얼마쯤으로 치부하기 일쑤입니다. 축제를 즐기러 간 많은 젊은이가 소중한 목숨을 잃었는데도 이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변두리에 내몰린, 엄연히 있어도 무관심으로 방치된 이들입니다. 인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빼앗긴 인권을 회복하고 증진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먼저 국가 공권력과 정치 공동체는 이처럼 배척된 사람이 생기게 된 “사회적 조건들을 바꾸려고 최선을 다해야”(「모든 형제들」, 186항) 합니다. “정치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여론 조사에서의 지지도 하락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배척 현상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모든 형제들」, 188항)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치 공동체의 이런 노력과 더불어 우리 각자는, 나부터 먼저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보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뚫어야 하고, 오늘날 절대화되다시피 한 극심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장벽도 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등을 돌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 되어 우리 곁의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어나 우리 가운데에 서십시오!” 하고 우리의 삶으로 초대할 수 있습니다. 내몰린 사람을 ‘바라보고’ 그에게 ‘다가가서’ 그와 ‘함께함으로써’ 그를 ‘온전하게 하는’ 것은 인권 회복을 위한 우리의 인간애의 발로일 뿐만 아니라, 그 사람 안의 하느님의 모습을 되찾아 주는 우리의 신앙 행위입니다.
2022년 12월 4일 대림 제2주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 선 태 주교
[내용출처 - https://cbck.or.kr/Notice/20221103?page=1&gb=K1200 ]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여 주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5,4-9
형제 여러분, 4 성경에 미리 기록된 것은 우리를 가르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됩니다.
5 인내와 위로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뜻에 따라 서로 뜻을 같이하게 하시어,
6 한마음 한목소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빕니다.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8 나는 단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진실하심을 드러내시려고 할례 받은 이들의 종이 되셨습니다.
그것은 조상들이 받은 약속을 확인하시고,
9 다른 민족들은 자비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민족들 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 이름에 찬미 노래 바칩니다.”
축일12월 4일 성 요한 (John)
신분 : 신부, 교회학자, 교부
활동 지역 : 다마스쿠스(Damascus)
활동 연도 : 650?-754년
같은 이름 :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Joannes)은 그리스 교부로서는 마지막 인물로 그리스도교적 아리스토텔레스 학풍을 개척한 분이며, 성 로마누스 작곡가(Romanus the Melodist)와 더불어 동방 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아랍인들이 635년 다마스쿠스를 정복한 후 마호메트의 후계자인 칼리프들의 치하에서 전 생애를 보냈지만, 성 테오도루스 스투디테스(Theodorus Studites, 11월 11일)와 더불어 교회의 정통 교리를 수호하고, 성상 공경 논쟁이 가장 극심하던 시기에 끝까지 성상 공경의 정당성을 펼쳤던 위대한 교부이다.
성 요한은 그의 대표작인 “올바른 신앙에 관한 해설”에서 교회의 가르침 곧 하느님과 창조, 인간론, 그리스도론, 마리아론, 성인 공경과 성화 공경, 구원론, 종말론을 100장에 걸쳐 다루었다. 이 저서는 서방 교회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 1월 28일)의 "신학대전"에 버금가는 역저로 동방 교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교육 자료로 사용하고 있다.
그가 태어난 때의 다마스쿠스는 아랍인들이 통치하고 있었다. 칼리프들은 다마스쿠스를 정복한 후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에 대한 관용 정책을 펼쳤다. 성 요한의 가문은 몇 세대에 걸쳐 국가 재정을 담당하는 고위 관리였고, 이 직책은 세습제였다. 그래서 요한은 유아세례를 받고 어릴 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았다. 그의 전기에 따르면 부친이 직접 그에게 교육을 시키고, 말 타는 법 등을 가르쳤다고 한다. 부친 외에 요한은 코스마(Cosmas)라 부르는 훌륭한 스승 밑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코스마는 그에게 여러 학문을 가르쳤는데, 특히 신학을 강조했다. 장성한 요한은 부친의 직업을 계승하여 국가의 관리가 되었다. 그는 궁중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며 그리스도교적 덕행, 특히 겸손한 자세로 많은 이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그가 이토록 훌륭하게 성장한 것은 그의 스승 코스마의 덕분이었다.
그러나 후임 칼리프들이 그리스도교에 대한 관용 정책을 포기하자 더 이상 그리스도인은 국가의 고위 관직을 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사직하고 코스마와 함께 예루살렘 근처의 마르 사바(Mar Saba) 수도원으로 가서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곳의 분위기는 아직도 성상 공경 문제가 쟁점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도자들 가운데에서도 그들을 좋게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어쨌든 요한과 코스마는 책을 저술하거나 찬미가를 짓는 등의 일을 하면서 이곳에 정착하였다. 장상과 다른 수도자들의 냉대와 질시 속에서도 그는 참으로 겸손하고 지혜롭게 처신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 성모님의 환시를 보았는데, 이때 성모님은 그의 스승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고 한다. “그대의 제자에게 많은 책을 쓰고 또 아름다운 시를 쓰도록 허락하여라.” 이때부터 요한은 자신의 모든 시간을 성서와 교부 문헌 연구 및 저술 활동에 할애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다마스쿠스 거리로 나가 광주리를 팔았다고도 한다. 이때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인 요한 5세는 그들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먼저 코스마를 마유마의 주교로 축성하고, 성 요한은 사제로 서품하여 예루살렘으로 불렀다.
그런데 코스마 주교는 죽을 때까지 주교로서 양떼를 돌보았으나, 성 요한은 이내 수도원으로 되돌아와 자신의 저술을 다시금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다듬었다. 이때부터 그의 저서는 도처에서 읽혀졌으나 반대자들의 질시 또한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는 위대한 신학자요 시인으로서의 삶을 마치고 754년 12월 4일 고령으로 선종해서 마르 사바 수도원에 묻혔다. 교황 레오 13세는 1890년 8월 19일 교령에서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오늘 축일을 맞은 요한 (John)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