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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0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3-43.45-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4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45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46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신앙은 성당과의 거리와 무관하답니다.
영어 속담에 "The nearer the church, the further from God."<교회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심은 성당과의 거리와 무관함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교회가 멀다고 퉁퉁대면서 살기도 합니다. 어려서 새벽미사를 참례를 위해 읍내 성당에 가는 날이면 집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두 시간을 부지런히 가야지만 여섯 시 새벽미사에 참례하고 영성체를 모실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공심제의 시간이 세 시간이었는데 새벽미사의 은총이 얼마나 가득 찼는지 지금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이고 행복이었습니다.
그때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 전이어서 미사 경본을 보고, 바칠 줄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신부님은 라틴어로 미사를 드려서 전혀 알아들을 수 없지만 미사 안에서 하느님을 느끼고 십자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은 정말 감미로웠습니다. 새벽미사를 마치고 아침을 굶은 채 곧장 학교로 가야만 했는데 마침 그날은 점심도 없는 날입니다. 그렇지만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학교 우물물을 퍼마시면서도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언제나 가장 큰 소망은 성당 곁에서 살면서 매일 새벽미사에 참례하면 좋겠다. 생각하고 성당 가까운 곳에 언제나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 뒤 나는 이사를 참 많이도 하였습니다. 도시에서 살면서 성당은 지척에 있었기에 걸어서 10분이나 15분 거리에서 매일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벽미사에 참례하는 경우는 점차 줄어들게 되었고 출근하기에 급하고 매일 게으름을 피우면서 성당 가는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핑계는 나를 계속 그렇게 몰고 가고, 이제는 점점 습성처럼 되었습니다. 아예 새벽미사는 참례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되고 성당이 가까워진다고 하느님이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였습니다. 흔히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무능해진다.’는 말이나 ‘사람들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는 심리학자일수록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좋지 않다.’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어 베푸시는 은총 안에서 매일 만나는 하루가 참 좋고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요? 그런데 가까이 계시다고 하느님을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하느님을 점점 편하고 쉬운 상대로 생각하게 되고 내가 교리를 가르치면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The danger is past and God is forgotten."<위기가 지나면 하느님은 잊혀진다.>라는 말을 더욱 실감해서인지 매일 하느님을 잊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세상의 일에 떠밀려 하느님의 존재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삽니다. 그래서 기도와, 미사참례도 성의를 보이지 않고, 습관과 타성에 젖어서 매일 그렇게 무덤덤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선교에도 열정도 보이지 않고, 오래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녹이 슬고, 하느님을 다루는 요령이 늘어서 대강 미사에 참례하고 잊고 살아도 된다는 자신의 노하우(know-how)를 터득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후배 신자들에게 모범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소작인들이 주인의 종들을 푸대접하여 때리고, 죽이고, 함부로 대한 것은 주인을 우습게 알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사랑으로 대하고 언제나 자비하신 분으로 알기에 주인의 존엄성과 위엄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제 도가 지나쳐 하느님의 아들도 죽이려고 덤벼들고, 교묘한 꾀를 내어 죽이기까지 합니다. 나도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소작인도 되지 못하고 이제껏 아무런 소출을 낸 적도 없고, 적은 소출을 내 놓고는 공치사만 늘어놓은 부족한 소작인에 불과합니다. 매일 그분의 곁에서 맴돌고 있다고 자랑하면서 실속 없는 신자입니다. 교회에 오래 동안 다녔다고 자랑하면서, 교회에서 많은 직책을 맡아서 일했다고 자부하면서도 사실은 아주 빈 깡통처럼 소리만 요란하고 주인의 종들을 함부로 죽인 소작인과 다름없는 생활이 가슴 아프게 합니다.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저 녀석을 죽여 버리자.>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37,3-4.12-13ㄷ.17ㄹ-28
3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4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12 그의 형들이 아버지의 양 떼에게 풀을 뜯기러 스켐 근처로 갔을 때,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네 형들이 스켐 근처에서 양 떼에게 풀을 뜯기고 있지 않느냐?
자, 내가 너를 형들에게 보내야겠다.”
17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뒤따라가 도탄에서 그들을 찾아냈다.
18 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19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20 자,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21 그러나 르우벤은 이 말을 듣고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낼 속셈으로,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다시 말하였다.
“피만은 흘리지 마라. 그 아이를 여기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에 던져 버리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마라.”
르우벤은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내어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이었다.
23 이윽고 요셉이 형들에게 다다르자, 그들은 그의 저고리, 곧 그가 입고 있던 긴 저고리를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다. 그것은 물이 없는 빈 구덩이였다.
25 그들이 앉아 빵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보니, 길앗에서 오는 이스마엘인들의 대상이 보였다.
그들은 여러 낙타에 향고무와 유향과 반일향을 싣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26 그때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27 자, 그 아이를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아 버리고,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자.
그래도 그 아이는 우리 아우고 우리 살붙이가 아니냐?” 그러자 형제들은 그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
28 그때에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다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었다.
그들은 요셉을 이스마엘인들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아넘겼다. 이들이 요셉을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축일3월 10일 성녀 마리아 에우제니아(예수의) (Mary Eugenia of Jesus)
신분 : 수녀, 설립자
활동 연도 : 1817-1898년
같은 이름 : 메리, 미르얌, 미리암, 에우게니아, 외제니, 유진
성녀 안나 마리아 에우게니아(Anna Maria Eugenia, 또는 마리아 에우제니아)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가 완전히 패배한 후 군주제가 회복된 1817년 프랑스 메스(Metz)의 경제적으로 부유한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파리(Paris) 북쪽 교외의 한 성(城)에서 성장하였다. 그녀의 출생 배경은 그녀가 장차 프랑스 교회 전체에 새로운 영성적 길을 제시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볼테르(Voltaire)와 자유주의의 신봉자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은행업과 정치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교육을 통해 마리아 에우게니아에게 풍부한 감수성과 강인한 성품 그리고 강한 의무감을 일깨워주었다. 가정생활을 통해 그녀는 지적 호기심과 낭만적인 정신,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과 폭 넓은 세계관을 키워갈 수 있었다.
뒤늦게 세례성사를 받은 마리아 에우게니아는 축일 날 성당 미사 중에 별다른 마음의 준비도 없이 관행처럼 첫영성체를 했다. 하지만 그녀의 첫영성체는 미래의 비밀을 예언하는 놀라운 신비의 체험이었다. 그녀는 훨씬 뒤에 자신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로 완전히 돌아서기 전까지는 그 예언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의 청소년기는 행복했지만 전혀 괴로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오빠와 젖먹이 여동생의 죽음을 통해 큰 영향을 받았고, 허약한 건강 상태와 말에서 떨어진 일로 인해 심각한 후유증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에 비해 조숙했던 마리아 에우게니아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힘든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배워 알고 있었다.
마리아 에우게니아가 13살이 되었을 때 한창 성공가도를 달리던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모든 재산과 부동산을 잃었다. 게다가 여러 오해로 인해 부모님이 이혼하자 그녀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이주하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파리에 사는 가난한 이들에게 큰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마리아 에우게니아 역시 종종 어머니를 따라서 가난한 이들의 가정을 방문하곤 하였다.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아 15살 때 그녀는 어머니를 콜레라로 잃고 말았다. 15살의 어린 나이에 세속적이고 천박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그녀는 세속적인 즐거움과 경건한 삶의 좁은 길 사이에서 흔들렸다. 괴로움 중에 진리를 찾으며 때로는 절망하기도 한 그녀는 마침내 절대자에 대한 회개의 갈증을 느끼고 초월자에게로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다.
19살 때 마리아 에우게니아는 파리의 노트르담(Notre Dame) 주교좌성당의 사순절 특강에 참석했다가 이미 설교자로서 그 재능이 잘 알려진 도미니코 수도회(설교자회)의 젊은 수도원장인 앙리 라코르데르(Henri Lacordaire)의 강론을 듣게 되었다. 라코르데르는 세상이란 특별한 장소에서 교회의 쇄신에 관한 환시를 본 라므네(Lamennais)의 제자였다.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이해했고 이를 변화시키고자 했다. 또한 그는 젊은이들의 의문과 갈망, 이상주의, 그리스도와 교회 모두에 대한 무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의 강론 말씀은 마리아 에우게니아의 가슴을 울렸고, 이를 통해 그녀는 그동안의 많은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되었다. 동시에 수도 성소에 대한 소망이 일었다. 그녀는 완전한 회개를 경험했고, 그 순간 이후 자신의 모든 정신과 나약함까지도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이런 순간에 그녀는 라므네의 또 다른 제자인 콩발로(Combalot) 수도원장 신부를 만나게 되었다. 콩발로 신부는 그녀와의 고해성사를 통해 자신이 오랜 시간 동안 꿈꾸어 왔던 수도회의 설립자로 예정된 한 선택된 영혼과 만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마리아 에우게니아에게 자신의 사업을 맡아주길 설득하며, 하느님께서 새로운 수도회를 설립하기 위해 그녀를 선택하셨음을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오직 교육에 의해서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진정한 그리스도인 가정을 만들어 당대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결국 마리아 에우게니아는 이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였고, 콩발로 수도원장 신부의 인도를 받기 시작했다. 22살의 나이에 마리아 에우게니아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승천 수도회의 설립자가 되어 수도자들의 전 생애를 성화하기 위해 헌신하며 그들과 세상 안에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용기 있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1839년 마리아 에우게니아는 다른 두 명의 젊은 여성들과 함께 파리의 생 쉴피스(Saint-Sulpice) 성당 근처 페루(Ferou) 길에 있는 한 공동주택에서 기도와 연학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841년에 샤토브리앙(Chateaubriand) 부인과 앙리 라코르데르 수도원장, 몽탈랑베르(Montalembert) 같은 여러 지인들의 보호와 후원 속에 수도회의 첫 번째 학교를 개교하였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그녀가 설립한 수도회는 네 나라 출신의 16명의 수녀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로 성장했다. 그들은 옛 것과 새 것을 연결하기를 원했다. 즉 오랜 역사 안에 쌓여 있는 교회의 영성적 보화와 수도생활의 지혜를 현대인들의 요구에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교육과 결합하고자 했다. 이는 그 시대의 가치를 반영하는 문제였으며, 동시에 복음적 가치가 새로운 산업화와 과학의 시대에 부상하는 문화를 관통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와 강생의 신비에 중심을 둔 수도회의 영성은 깊은 관상과 사도직 활동에 헌신하는 것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찾아 나서도록 주어진 삶이었다.
마리아 에우게니아의 생애에 대해서는 19세기 내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열렬히 사랑했고, 이를 수도회 역사의 활기 있는 한 부분으로 삼았다. 계속해서 그녀는 자신의 모든 힘을 미래의 선물과 수녀회의 확장에 쏟아 부었고, 그것은 그녀의 평생의 사업이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많은 수녀와 친구들을 보내주셨다. 초창기 회원 중 한 명인 테레사 엠마누엘(Teresia Emmanuel)은 아일랜드 출신의 신비가로 그녀의 절친한 친구이자 수도회의 공동 설립자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엠마누엘 달종(Emmanuel d’Alzon) 신부는 마리아 에우게니아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고, 1845년에 아우구스티누스회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성모 승천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이 두 설립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로를 도와주었다. 또한 이 두 설립자는 우정뿐만 아니라 그들이 영감을 준 많은 평신도 협력자들이 수도회와 교회를 위해 봉사하도록 하는 선물을 받았다. 그들은 함께 그리스도를 따르고 노동하며 수도자와 평신도들을 성모 승천의 길로 이끌며 많은 이들 안에서 그들의 위치를 자리 잡았다. 그녀가 설립한 수도회는 1888년 교황청의 승인을 받았다.
예수의 마리아 에우게니아 원장수녀는 생애의 마지막 해에 신체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침묵과 겸손으로 지냈다. 그녀의 생애는 완전히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삶이었다. 1898년 3월 9일과 10일 오늘날의 파리에 속한 오퇴이유(Auteuil)에서 임종을 앞두고 노자성체를 받아 모신 마리아 에우게니아는 온화한 모습으로 하느님께 돌아갔다. 그녀는 1975년 2월 9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7년 6월 3일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다른 세 명의 복자들과 함께 시성식을 갖고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마리아 에우제니아(예수의) (Mary Eugenia of Jesus)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