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3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24ㄴ-30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으로 가시어 회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많이 걸으십시오.
의사는 내게 혈압이 높고 심장이 나빠지면서 많이 걸으라고 권고합니다. 많이 걷는 것만큼 건강에 좋은 것이 없다고 항상 충고할 때마다 나는 장담하였습니다. “하루에 만보는 문제없고 걷는 데는 자신이 있습니다. 조금도 염려 마십시오.” 그래서 나도 될 수 있으면 차를 타지 않고 걸으며 산책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서울에서 볼일이 있고 다른 때보다 많이 걷는 날이라서 얼마나 걷는지 궁금해서 세어보고 싶어서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재어보니 7,300보 가량이 나왔습니다. 만보를 걸으려면 그래도 2,700보는 더 걸어야 하는데 가만히 내가 걷는 것을 생각해보니 많이 걷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매일 9km나 떨어져 있는 학교를 거의 뛰다시피 걸어 다녔습니다. 하루에 적어도 25km는 걷게 되는데 그것은 대략 35,000보 이상이 되는 거리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걷는 것은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만보라는 숫자에 연연해서 더 걸어서 채워야 한다고 계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7,300보를 걷는 동안에 느릿하게 걸어서 운동이 될 수 없는 걸음이었지 발에 땀이 날 정도로 부지런히 걷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일생을 통해서 얼마나 걸어 다닐 것인가 재미로 생각해 보았는데 하루에 평균 만보에 해당하는 7km를 걷고, 일 년에 365일을 걷는다면 2,555km, 70년을 걷는다면 178,850km나 걷는 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발은 참 힘든 일을 하는 신체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지구의 둘레를 대략 40,000km라고 하니까 네 바퀴 반을 돌 수 있다고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누가 그렇게 열심히 걷겠습니까? 그렇게 많이 걸을 수 있다고 하지만 내가 과연 얼마나 성실하게 걸었는지 생각해보면 많이 부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코끼리는 체중이 5천 kg이나 나가면서도 일생을 통해서 지구를 열네 바퀴나 돌 수 있을 만큼 걷는다고 하니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신비가 느껴지는 것입니다. 코끼리 몸무게의 1/67 밖에 되지 않을 만큼 날렵한 내가 코끼리보다도 훨씬 덜 걷는다는 생각을 하니까 과연 나는 허풍쟁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나이 70이 넘어가면 하루에 6,000보만 걸어도 충분하다고 합니다. 욕심내지 말고 부지런히 많이 꾸준히 걸어야 하겠습니다.
'사석위호'(射石爲虎)라는 말은 <돌을 호랑이로 생각하고 화살을 쏘았더니 돌에 화살이 박혔다.>라는 뜻입니다. 중국 한나라에 이광(李廣)이라는 훌륭한 장수가 있었는데 그는 흉노와의 전투에서 맹활약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그는 싸울 때마다 이겨서 <늘 이기는 장군, 상승장군(常勝將軍)>이라고 불렸으며, 흉노도 그를 두려워해 비장군 (飛將軍 : 날아다니는 장군)이라 부르며 함부로 침범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키가 크고 팔이 길어서 활을 매우 잘 쏘았다고 하는데 어떤 날에는 사냥을 갔다가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기도 한 용장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그는 들판에서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를 발견하고서, 온 힘을 다해 활을 쏘았는데 그만 명중시켰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바위덩이였는데도 화살촉이 바위 속까지 깊이 파묻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화살을 쏘았지만 이번에는 화살이 꽂히지 않고 튀어 올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석몰촉(中石沒鏃)이라는 말은<화살이 바위를 뚫고 화살촉까지 들어가다>라는 말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에 전심전력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의심 없이 몰두하여 정신을 집중하라는 가르침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우리가 겉으로만 신자라면 언제나 겉돌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의 핵심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가장 중요한 진실에서 벗어나는 우를 범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인가에 따라서 결정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향이 어디이고, 예수님의 옷차림으로, 그분의 샌들이나 고린내 나는 발 때문에 예수님의 본질을 잘 알지 못한다면 안 됩니다. 그 분이 하느님의 아들로서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외형과 외모와 옷차림에 따라서 하느님께서 오신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나, 한 사람에게 선교한다고 하더라도 발톱을 곤두세운 사자처럼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정쩡하게 살 수 없는 세상이라면 선교뿐만 아니라 가정생활이든 직장생활, 사회생활 등 모두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선교를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이방인이든 이스라엘 민족이든 구분할 처지가 아닙니다. 모두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진솔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답니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대충 선교하고, 신앙생활도 형식적이며, 대충 꿰어 맞추고 숫자에 연연하고 위선적이며, 내 이익을 위한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였다면 다시 재정립하여 돌에 화살이 박힐 정도로 최선을 다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루카 4,27 참조).>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5,1-15ㄷ
그 무렵 1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인 나아만은 그의 주군이 아끼는 큰 인물이었다.
주님께서 나아만을 시켜 아람에 승리를 주셨던 것이다. 나아만은 힘센 용사였으나 나병 환자였다.
2 한번은 아람군이 약탈하러 나갔다가,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아 왔는데,
그 소녀는 나아만의 아내 곁에 있게 되었다.
3 소녀가 자기 여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르신께서 사마리아에 계시는 예언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분이라면 주인님의 나병을 고쳐 주실 텐데요.”
4 그래서 나아만은 자기 주군에게 나아가,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가 이러이러한 말을 하였다고 아뢰었다.
5 그러자 아람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이스라엘 임금에게 편지를 써 보낼 터이니, 가 보시오.”
이리하여 나아만은 은 열 탈렌트와 금 육천 세켈과 예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임금에게 편지를 전하였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편지가 임금님에게 닿는 대로, 내가 나의 신하 나아만을
임금님에게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나병을 고쳐 주십시오.”
7 이스라엘 임금은 이 편지를 읽고 옷을 찢으면서 말하였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시는 하느님이란 말인가?
그가 사람을 보내어 나에게 나병을 고쳐 달라고 하다니!
나와 싸울 기회를 그가 찾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분명히 알아 두시오.”
8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는 이스라엘 임금이 옷을 찢었다는 소리를 듣고, 임금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하였다.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옷을 찢으셨습니까? 그를 저에게 보내십시오.
그러면 그가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9 그리하여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대문 앞에 와서 멈추었다.
10 엘리사는 심부름꾼을 시켜 말을 전하였다.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질 것입니다.”
11 나아만은 화가 나서 발길을 돌리며 말하였다.
“나는 당연히 그가 나에게 나와 서서, 주 그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어 이 나병을 고쳐 주려니 생각하였다.
12 다마스쿠스의 강 아바나와 파르파르는 이스라엘의 어떤 물보다 더 좋지 않으냐?
그렇다면 거기에서 씻어도 깨끗해질 수 있지 않겠느냐?” 나아만은 성을 내며 발길을 옮겼다.
13 그러나 그의 부하들이 그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아버님, 만일 이 예언자가 어려운 일을 시켰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아버님께 몸을 씻기만 하면 깨끗이 낫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14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15 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축일3월 13일 복자 아넬로 (Agnellus)
신분 : 수도원장
활동 지역 : 피사(Pisa)
활동 연도 : +1236년
같은 이름 : 아그넬로, 아그넬루스, 아넬루스, 아녤로, 아녤루스, 앙넬로
프란치스코회의 영국 관구의 설립자인 아넬루스(또는 아넬로)는 성 프란치스코가 피사에 머물 때 직접 입회시킨 초기의 제자에 속한다. 그는 파리 수도원에 파견되었다가 원장이 되었으나, 1224년 성 프란치스코가 영국 관구 설립을 위하여 그를 대표자로 파견하였다. 그는 부제에 불과하였다. 8명의 수사들이 영국에 들어갔으나 사제라고는 리카르두스(Richardus) 한 사람 뿐이었다. 그들은 프란치스코의 회칙에 따라 돈을 한 푼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도버 해협을 건널 때 페캄프의 수도자들이 대신하여 통행료를 지불했다.
그들은 먼저 캔터베리에 그 다음에 런던에 거주지를 정하였다. 그들의 집은 낮 동안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가 되고, 밤이 되면 그들의 집이 되는 그런 형편이었다. 프란치스코의 극도의 가난 생활을 여기서도 계속하여 수많은 성직자들과 신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아넬루스는 도버 해협을 건넌 지 11년 되던 해, 41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그의 가난 정신은 사부인 성 프란치스코와 견줄만 하였다. 미사를 봉헌하고 성무일도를 바칠 때면 늘 눈물을 글썽이며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였다. 그는 수도회의 회칙을 완화하는 움직임을 크게 반대하였다. 그는 3일 동안의 투병 끝에 “오소서, 오 감미로운 예수여” 하며 기도하는 중에 운명하였다. 그의 축일은 오늘날 버밍햄에서 성대히 거행되고 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