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0일 연중 제9주간 토요일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8-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38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무임 승차
내가 스물한 살 때 말단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많은 동생들을 가르치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한 달 봉급이 4천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쌀을 사기도 힘든 때였는데 둘째 여동생은 열다섯의 어린 나이에도 서울에서 작은 회사의 사환으로 근무하면서 야간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 동생을 보러 갔는데 그렇게 까칠하고 깡마른 동생이 손을 비비고 손을 시려하고 서서 오빠를 보고 반가워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바짝 말라 있는 동생을 보면 그 때의 그 모습이 떠올라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가득히 차오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고향으로 가는 기차 삯이 60원 정도 할 때이니까 주머니에 100원은 있으려니 하고 동생에게 900원 정도의 돈을 다 털어주고 쳐다보면 눈물을 보일까봐 그냥 돌아서서 서울역에 와버렸습니다. 그리고 호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주머니엔 30원만 달랑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표 파는 곳으로 가서 입장권을 5원을 주고 끊었습니다. 그러니 입장권만을 사가지고 기차를 탄 것이죠. 그 당시 사람들은 만원이어서 고향까지 약 3시간을 서서 가야하는데 통학하는 친구들이 가르쳐준 노하우(know-how)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아주 느리게 가는 증기기관차의 객차 세 번째 칸에서 한 가운데 서 있으면 차표 검사를 오면 반대편으로 눈치를 보며 도망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정거장에 차가 정차하면 차표 검사를 끝낸 차 칸으로 재빨리 옮겨 타야 했는데 다행인지 아주 잘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고향 역은 비교적 큰 역으로 표 받는데 보통 엄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걸리면 무임승차의 세배를 물어야 하니 표 받는 곳이 아주 허술한 간이역에 어쩔 수 없이 내려야만 했는데 걸어서 두 시간 정도의 거리에 집이 있었습니다. 그날 나는 사방이 흰 눈이 내려서 미끄럽고, 바람이 모질게 불었어도, 보름달에 하얗게 비친 철길을 따라 별을 이고 달과 같이 걷는 그 이 십리 길이 왜 그렇게 행복하고 밤새워 걸어도 싫지 않은 길이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동생에게 가장 많이 기쁜 마음으로 주었던 용돈에 대한 기억이 아련히 남아있습니다.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시겠다는 주님께서는 오늘은 가장 적은 돈이지만 가장 많은 헌금을 한 사람으로 과부를 지칭하신 이유를 조금은 알듯합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가진 것 모두를 나누며 베풀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나는 동생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아낌없이 주고도 또 부족해서 더 주고 싶은 것이 없는지 생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말 동생을 사랑했기 때문에 무임승차를 하고 기차 안에서 들킬까봐 마음이 불안하였고 긴 시간 동안 앉지도 못하였어도 또 그렇게 먼 길을 걸었고 춥고 떨리는 배를 움켜쥐었지만 조금도 슬프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아낌없이 주고도 기쁘고 행복한 것입니다. 주일에 감사의 헌금을 어떻게 낼 것인지 반성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꾸만 더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가진 것을 아낌없이 헌금하고 싶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나는 동생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고생하고 있는 그 아이가 그 용돈으로 노트랑, 연필을 사서 얼마나 기뻐 할 것인지 또 오빠에게 얼마나 고마워할 것인지를 생각하니 이는 상상할 수 없이 행복했습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나서 동생은 독학으로 영문학사를 받았고 동시통역대학원을 졸업할 때는 이미 40이 넘은 나이였습니다. 졸업식장에서 오빠를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릴 때 여동생은 그 때 오빠가 주었던 그 용돈이 얼마나 행복하였는지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래서 무임승차를 한 그날 그 이십 리 길을 얼마나 행복하게 걸었는지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을 품에 안고 정말 기쁨의 울음을 터뜨렸어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인연도 있지만 서로 의지하고 믿었기 때문에 아낌없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느님을 믿으며, 그분께 내 믿음을 보이고 싶다면 어떻게 헌금할 것인지 생각됩니다.
셋째는 희망이 있어야 하겠지요. 경영학적으로 투자가치가 없으면 어느 누구든 내어 놓으며 적극투자하지 않습니다. 그건 세상의 정한 이치입니다. 내가 동생에게 투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노력하는 그 아이를 보고 내가 어떻게 뒤돌아 그냥 올 수 있었겠습니까? 하느님께 절대적으로 의탁하고 그 분의 무한하신 권능에 대해서 신뢰한다면 정말 그렇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놓을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는 그날 저녁부터 살길이 막막한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재산을 바친 것입니다. 렙톤 두 닢은 지금 돈으로 계산하면 40cent 정도의 돈이니까 400원이 못되는 돈이랍니다.
향주삼덕(向主三德)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주님의 계시와 예지에 대한 응답으로 믿음을, 주님의 무한하신 권능에 대한 응답으로 희망을 가지며, 주님의 사랑에 아낌없이 사랑으로 응답하는 신덕, 망덕, 애덕(信德, 望德, 愛德)을 말하지요. 신망애 향주삼덕으로 언제나 주님께 감사하면서 정성을 다하여 예물을 봉헌하고, 아낌없이 헌금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과부의 정성을 어여쁘게 보시고 저희에게 그렇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주님! 저희는 항상 말로만 그렇게 결심하면서도 당신의 사랑에 응답하지 못하고 저희들의 처지만 생각하고 당신에게 아주 옹졸하고, 이웃에게 인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가진 것은 참으로 많사오니 항상 예물을 정성껏 준비하고 봉헌하게 하소서. 사랑의 주님!!
<이제 주님을 찬미하여라. 자, 나는 하느님께 올라간다.>
▥ 토빗기의 말씀입니다. 12,1.5-15.20
그 무렵 1 토빗은 자기 아들 토비야를 불러 말하였다. “얘야, 너와 함께 갔던 사람에게 품삯을 주고
또 품삯 외에 더 얹어 주도록 배려하여라.”
5 그리하여 토비야는 라파엘을 불러, “그대가 가지고 온 모든 것의 절반을
품삯으로 받고 안녕히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6 그때에 라파엘이 그 두 사람을 은밀히 불러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잘해 주셨으니,
살아 있는 모든 이 앞에서 그분을 찬미하고 찬양하여라. 그리고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고 찬송하여라.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그분을 찬양하기를 게을리하지 마라.
7 임금의 비밀은 감추는 것이 좋고, 하느님의 업적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드러내어 밝히는 것이 좋다.
선을 행하여라. 그러면 악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을 것이다.
8 진실한 기도와 의로운 자선은 부정한 재물보다 낫다. 금을 쌓아 두는 것보다 자선을 베푸는 것이 낫다.
9 자선은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 주고 모든 죄를 깨끗이 없애 준다. 자선을 베푸는 이들은 충만한 삶을 누린다.
10 그러나 죄와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은 바로 저희 자신에게 원수가 된다.
11 나는 이제 너희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진실을 모두 밝히겠다.
나는 이미 너희에게 ‘임금의 비밀은 감추는 것이 좋고,
하느님의 업적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드러내는 것이 좋다.’ 하고 분명히 밝혔다.
12 자 이제 보라, 너와 사라가 기도할 때에 너희의 기도를 영광스러운 주님 앞으로 전해 드린 이가 바로 나다.
네가 죽은 이들을 묻어 줄 때에도 그러하였다.
13 그리고 네가 주저하지 않고 잔치 음식을 놓아둔 채 일어나 가서 죽은 이를 매장해 줄 때,
14 너를 시험하도록 파견된 자도 나였다.
또 하느님께서는 나를 파견하시어 너와 네 며느리 사라를 고쳐 주게 하셨다.
15 나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이다.
20 이제 이 세상에서 주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자, 나는 나를 파견하신 분께 올라간다.
너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기록해 두어라.” 그러고 나서 라파엘은 올라갔다.
축일6월 10일 성녀 올리바 (Oliva)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 지역 : 팔레르모(Palermo)
활동 연도 : 448?-463년경
같은 이름 : 올리브, 올리비아
성녀 올리바는 시칠리아(Sicilia)섬의 팔레르모와 카르타고(Carthago)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전설적 성인전에 따르면, 성녀 올리바는 448년경 팔레르모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용모가 아름다웠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주님께 자신을 봉헌하길 원했고, 부유한 삶과 현세의 영광보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자선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454년 반달족(Vandals)이 시칠리아를 침략해 팔레르모를 점령했을 때 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했다. 성녀 올리바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감옥에 갇힌 죄수와 그리스도인들을 돌보았다. 그녀의 강인한 정신과 신앙은 반달족마저도 감화시켰다.
그녀는 튀니스(Tunis)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신앙을 포기하도록 회유를 당했다. 다행히 귀족 출신임을 인정받아 튀니스 근교의 어느 동굴에서 은수자로 살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비록 동굴에서 살았지만, 그녀는 뛰어난 신앙으로 기적을 행하고 많은 이교도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 그러자 총독은 그녀를 지하 감옥에 가두고 빛과 음식을 차단했다. 그녀의 뛰어난 용모 때문에 배교하면 살려준다고 회유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래서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던져 넣기도 하고, 쇠사슬로 묶은 채 끓는 기름통 속에 집어넣기도 했지만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죽지도 않았다. 형리들은 하는 수 없이 그녀의 목을 베었는데, 이때 그녀의 몸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나와 하늘로 날아갔다고 한다. 그녀는 올리브(Olive) 또는 올리비아(Olivia)로도 불린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성녀 올리바는 9세기 후반에 살았으며 사라센인들에 의해 아프리카로 끌려가 순교했다고도 한다.
오늘 축일을 맞은 올리바 (Oliva)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