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4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6-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고 주님께 의탁할 때
신앙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순교는 참으로 장렬한 것입니다. 우리가 죽기로 결심하고 신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강조하고 계십니다. 순교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순교할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순교를 내 의지와 자유로 순교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교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이 그렇게 아끼는 목숨을 기쁘게 내어 놓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약삭빠른 행동과 잔꾀에 넘어가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회유와 친절을 위장한 세상의 명예와 위선, 허례허식과 생리적인 욕구에 넘어가지 않고 옳은 길을 가라는 말씀입니다. '수천만인오왕의'(雖千萬人吾往矣)라는 '맹자'의 말이 있습니다. 천만 명의 사람이 반대를 한다고 해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려는 굳은 의지, 참된 용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하느님의 진리에 자신을 내어놓고 처절하게 순교하면서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셨기에 순교의 영광을 입으신 것입니다. 교리실화에는 이런 전승이 내려옵니다. 초대교회 박해시대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군사들이 열두 명의 신자들을 잡아와서 며칠 동안 굶긴 다음 꽁꽁 얼어붙은 강에 데리고 나가서 열두 개의 구명을 뚫게 하였고, 한 사람씩 벌거벗겨 구멍에 처넣었습니다. 그리고 두 팔을 벌리라고 하였는데 팔을 오므리면 강에 빠져 죽게 되는 무서운 형벌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그들의 옆에 따뜻한 장소를 마련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 음식을 차린 다음 “누구든지 지금이라도 그리스도를 배신하기만 하면 나올 수 있고, 살 수도 있고, 맛있는 음식을 따뜻이 먹을 수도 있다.”고 유혹했습니다.
하지만 열두 명의 신자들은 끝끝내 항거하였지만 그 중 하나가 너무 춥고 배고파 참을 수가 없었던지 “나는 예수를 버리겠소! 나 좀 건져 주시오.”하고 소리쳤습니다. 지키고 있던 군사들은 그를 즉시 건져 올렸는데 군인 중 한 사람이 그 때 하늘을 보니까 열 두 천사가 빛나는 면류관을 가지고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신자가 배반하였기에 한 천사가 슬픈 얼굴을 하며 다시 하늘로 올라가려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 때 군인 하나가 천사들과 면류관을 보는 순간 너무도 깨달은 바가 컸기에 순간적으로‘ 저 신자들도 나와 같은 똑 같은 인간인데, 그들이라고 어찌 배 고품과 추위를 모를 수 있을까?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렇다, 저들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상급의 면류관이 있기에 그 지독한 고통을 참을 수 있지 않은가?’
그 군인은 얼른 군복을 벗어던지고, 그 얼음 구멍으로 뛰어들었답니다. 그리고는 “저 사람을 대신해서 내가 그리스도를 믿고 죽겠소.”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역시 그 군인은 다른 열한 명과 같이 장렬하게 순교하였다고 전합니다. 이처럼 순교는 내 자신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크신 사랑체험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간직하여야 합니다. 현대인의 순교는 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올바른 신앙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고 주님께 의탁할 때 우리의 순교가 이루어집니다.
나는 순교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비하할 필요도 없고, 또한 그래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순교를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께서 지금 우리를 당신께로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는 다만 '수천만인오왕의'(雖千萬人吾往矣: 천만 명의 사람들이 반대를 해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려는 굳은 의지, 참된 용기를 말함)라는 맹자의 말대로 믿음을 견고하게 가지고 의지를 확고하게 다지면서 주님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내가 너의 얼굴을 보았으니, 기꺼이 죽을 수 있겠구나.>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46,1-7.28-30
그 무렵 1 이스라엘은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을 거느리고 길을 떠났다.
그는 브에르 세바에 이르러 자기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다.
2 하느님께서 밤의 환시 중에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야곱아, 야곱아!” 하고 부르시자,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그가 대답하였다.
3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네 아버지의 하느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4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겠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너를 다시 데리고 올라오겠다.
요셉의 손이 네 눈을 감겨 줄 것이다.”
5 그리하여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났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태워 오라고
파라오가 보낸 수레들에 아버지 야곱과 아이들과 아내들을 태웠다.
6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얻은 가축과 재산을 가지고 이집트로 들어갔다. 야곱과 그의 모든 자손이 함께 들어갔다.
7 야곱은 아들과 손자, 딸과 손녀, 곧 그의 모든 자손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들어갔다.
28 이스라엘은 자기보다 앞서 유다를 요셉에게 보내어, 고센으로 오게 하였다.
그런 다음 그들은 고센 지방에 이르렀다.
29 요셉은 자기 병거를 준비시켜, 아버지 이스라엘을 만나러 고센으로 올라갔다.
요셉은 그를 보자 목을 껴안았다. 목을 껴안은 채 한참 울었다.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렇게 너의 얼굴을 보고 네가 살아 있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는 기꺼이 죽을 수 있겠구나.”
축일 7월 14일 성 가밀로 데 렐리스 (Camillus de Lellis)
신분 : 신부, 설립자
활동 연도 : 1550-1614년
같은 이름 : 가밀루스, 까밀로, 까밀루스, 카밀, 카밀로, 카밀루스
성 카밀루스 데 렐리스(또는 가밀로 데 렐리스)는 1550년 5월 25일 이탈리아 남부를 지배하던 나폴리 왕국의 부키아니코(Bucchianico, 오늘날 아브루초[Abruzzo]에 속한 곳)에서 태어났다. 거의 50세에 그를 낳은 어머니 카밀라 콤펠리 데 라우레토(Camilla Compelli de Laureto)는 1562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버지는 나폴리와 프랑스 왕실 군대의 장교로 복무하며 거의 집에 있을 때가 없었다. 청소년 시절부터 노름을 좋아하고 군대를 동경하던 그는 입대하고자 했으나 오른쪽 발에 궤양이 생겨 연기하였다. 1571년 로마의 산 지아코모 병원(San Giacomo Hospital)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병원에서 조수로 일하던 중 노름을 하다 쫓겨났다. 다시 군에 입대해 베네치아(Venezia) 군대에 소속되어 이탈리아를 침략한 터키군과 여러 전투에서 맞서 싸웠다. 1574년경에는 청소년 때부터 습관이 된 도박에 빠져 빈털터리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군대에서도 나와 이곳저곳을 방황하다가 우연히 아풀리아(Apulia)의 만프레도니아(Manfredonia)에 있는 카푸친 수도원의 공사장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어느 날 한 수사의 설교를 듣고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그는 수도자가 되고자 수도회에 지원하였다. 하지만 거친 수도복에 발이 쓸려 예전의 상처가 도져 수련소에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치료를 위해 다시 로마의 산 지아코모 병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병을 치료하며 조수 일을 맡았다. 1579년 다시 카푸친 수도원에 들어갔으나 상처가 덧나면서 결국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병으로 일생 고생해야만 했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 성 카밀루스 데 렐리스는 자신을 성화하는 방법으로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투신하기로 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그는 병원의 회계를 담당하는 최고 관리자까지 되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는 병원의 놀라운 상황과 여러 부정적인 문제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남은 인생을 바칠 결심을 하고 뜻있는 간호사들과 함께 테베레(Tevere) 강변의 한 빈민촌에 공동체를 이룬 후 가난한 병자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정성껏 돌보았다. 그는 자신의 고해신부이던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5월 26일)의 권고를 받아들여 사제가 되기 위해 로마의 예수회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1584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이미 함께 봉사하던 이들과 협조자를 모아 ‘병자 간호 성직 수도회’(Clerici regulares infirmis ministrantes)를 창설했다. 초대 총장이 된 그는 병든 이들의 상처뿐만 아니라 영적인 돌봄에도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1586년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V)로부터 수도회 회칙에 대한 승인을 받았다. 성 카밀루스와 동료 사제와 수사들은 우선 로마의 주요 병원을 방문하여 환자들의 영육의 건강을 돌보는 데 집중했고, 이어서 1588년 나폴리, 1594년에는 밀라노(Milano)의 병원에도 진출하여 환자를 돌보았다. 그러면서 보통 카밀로회(Ordo Sancti Camilli, O.S.C.)로 더 잘 알려진 그의 수도회는 청빈 · 정결 · 순명의 서원 외에 제4의 서원으로 ‘환자에 대한 정성 어린 간호’를 추가했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페스트가 유행했었다. 성 카밀루스 데 렐리스와 동료들은 로마 항구의 배들을 통해 전염된 페스트 환자들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고 치료하는 데 열중했다. 무엇보다 병원의 청결을 중요하게 생각한 그는 항상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환자들이 적당한 음식을 먹도록 하고, 전염병일 경우는 적절히 격리하는 방법 등을 활용해 병자들의 치료에 도움을 주었다. 그와 동료들은 항상 숨을 거두는 환자들 곁을 끝까지 지켰고, 임종자들의 장례 등에도 큰 관심을 보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높은 칭송을 받았다. 그들의 헌신적인 간호와 환자들과의 인격적 만남에 감동한 사람들이 ‘성 카밀루스의 품에서 죽으면 지옥은 안 간다’라고 그에게 존경과 애정을 표현했고, 그를 ‘로마의 성인’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성 카밀루스 데 렐리스는 건강이 점차 나빠지면서 더는 총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자 1067년에 사임하였다. 그 무렵 수도회는 이탈리아 전역뿐만 아니라 헝가리까지 확장되어 나갔다. 사임 후에도 수도회와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던 그는 신임 총장을 동반해서 이탈리아 여러 곳의 병원에서 활동하는 수도원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병에 걸려 건강이 나빠진 그는 마지막을 로마에서 맞이하고 싶다는 소망대로 로마로 돌아와서 1614년 7월 14일 선종하였다. 그의 시신은 로마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성당 제대에 안치되었다. 그는 1742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이어 1746년 같은 교황으로부터 시성되었다. 1886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천주의 성 요한(Joannes, 3월 8일)과 함께 모든 병자와 병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고,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모든 간호사와 간호 단체의 수호성인으로 확대 선포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가밀로 데 렐리스 (Camillus de Lellis)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