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0일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숲속의 명카수 까마귀
우리가 짊어지고 사는 것은 무엇이고 우리를 무겁고 고생스럽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정말로 힘들 때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내 짐을 가볍게 하는 방법을 배울 수 없어서 오기와 마음에 독을 품으며 억지로 세상을 살았다는 생각입니다.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는 말도 있지만 그렇게 무거운 짐을 나에게 지우셨냐고 하느님을 원망도 많이 하였습니다. 또한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주변 사람들이 답답하고 섭섭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 모든 것이 나의 교만은 아니었는지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삶 속에서 예수님께서 잘 가르쳐 주신 방법이었는데 그것을 알았을 때는 늦어버리거나 지난 후였으니 철들지 못해서 죽기 십상이고, 죽을 때야 비로소 철든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솝의 우화에 ‘여우와 까마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소풍을 나왔다가 돌아간 자리에 큰 고깃덩어리를 보았는데 까마귀는 잽싸게 그것을 물고 나무 위로 올라가 혼자 먹으려고 하였을 때 지나던 여우가 그 장면을 보고 고깃덩어리를 빼앗기 위해서 까마귀를 그만 유혹합니다. “숲 속 제일의 명카수 까마귀님, 당신의 노래를 듣고자 온 여우랍니다. 저를 위해서 한 곡조만 불러주십시오.” 하자 까마귀는 그만 감탄합니다. ‘ 아! 단독 오디션이라니!’그래서 “까르륵”하고 입을 벌려 노래를 하자 고깃덩어리는 떨어지고, 여우는 신속하게 고깃덩어리를 물고 사라집니다.> 이솝은 여기까지 얘기하면서 절대로 간교한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렇게 뒤를 잇습니다. <여우가 고깃덩어리를 물고 달아나는 것을 보고, 까마귀는 반성합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저렇게 고깃덩어리를 물고 허겁지겁 달아날까? 이건 내 잘못이야, 아무리 오디션이 좋아도, 노래가 좋아도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하면서 까마귀는 숲 속의 모든 동물들을 초대하기로 마음먹고 노래를 더욱 잘하기 위해서 열심히 연습합니다. 어느 날 까마귀는 음식을 푸짐하게 마련하고 숲속의 동물을 초대하고 노래를 들려주느라 바빴지만 참 행복했습니다. 반면에 동물들은 까마귀의 노래가 썩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맛있는 상을 차려 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그래서 구름처럼 모여들어 배부르게 먹고 즐겁고 행복하였습니다. 그 바람에 까마귀의 노래는 점점 발전하고 좋아져서 결국은 숲 속의 명카수가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멍에는 다른 사람이나 환경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멍에는 자신이 마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멍에를 세상 탓으로 돌리고 사람들이 나에게 멍에를 씌우고 힘들게 한다고 합니다. 까마귀처럼 멍에라고 생각하지 않고 행복한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세상이 밝고 아름답겠습니까?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처럼 힘들고 고생스러운 일이라도 열심히 한다면 고생이 다하는 날 행복이 온다는 말을 믿고 지금 멍에를 짐으로 여기고 힘들다고 불평한다면 오늘 우화에서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멍에를 메는 방법은 온유하고 겸손한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내게 주어진 십자가임을 알고 어려운 환경과 처지를 불평 없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수용’한다고 하는데 이 수용(受容)한다는 것은 내 얼굴이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대로 불평 없이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마음일 때 온유하고 겸손한 것입니다. 지금은 성형 수술이 아주 발달 되어서 자기가 원하는 모습대로 얼굴을 바꾸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수용이라는 말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주어진 멍에는 내가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무게만큼 잘 가늠하셔서 알맞게 주실 것입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오 16, 24)라고 온유한 자세로 내가 지고 있는 멍에를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겠습니다.
겸손한 방법은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내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하고 자신의 행동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잘못을 크게 뉘우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항상 자신을 드러내놓고 내가 잘한 것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자신의 고집대로 세상 사람들을 판단하여 교만이 극에 달하기도 합니다. 교만은 모든 잘못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만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섬김의 자세로 살려고 노력할 때 바로 멍에를 메는 방법입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는 방법은 온유와 겸손으로 더욱 가볍고 편안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편하고 쉽게 멍에를 지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쉽게 해주셔서 우리는 행복합니다. 그래서 희망을 주님께 두며 벅차오르는 기쁨으로 “감사합니다.”를 외칩니다.
주님께서 목수 일을 하셨을 때 예수님의 집에는 "맞춤 멍에 센터" 라는 간판이 걸렸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 집의 주인이셨고, 요셉성인에게서 물려받은 직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소가 귀하고 밭은 돌밭이어서 밭을 갈 때에는 쟁기의 보습이 잘 부러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멍에를 사람들이 주로 끌었는데 어깨에 멍에를 멘 사람들에게 가장 편하고 가장 잘 맞는 멍에를 예수님께서 많이 깎아 주셨는지 오늘말씀에서 어쩜 이리도 절묘하게 말씀을 하시는지 모릅니다. 멍에는 내가 만드는 것이기에 무겁게 질 수도 있고 힘들게 질 수도 있고, 고생스럽게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지고 산다면 아주 편하고 쉽다는 말씀을 되새깁니다.
<나는 있는 나다.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13-20
그 무렵 떨기나무 한가운데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들은 13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14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15 하느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
16 가서 이스라엘 원로들을 모아 놓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
‘나는 너희를 찾아가 너희가 이집트에서 겪고 있는 일을 살펴보았다.
17 그리하여 이집트에서 겪는 고난에서 너희를 끌어내어, 가나안족과 히타이트족과 아모리족과
프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기로 작정하였다.’
18 그러면 그들이 너의 말을 들을 것이다. 너는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함께 이집트 임금에게 가서,
‘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저희가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
주 저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여라.
19 그러나 강한 손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한, 이집트 임금은 너희를 내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20 그러므로 나는 손을 내뻗어 이집트에서 온갖 이적을 일으켜 그 나라를 치겠다.
그런 뒤에야 그가 너희를 내보낼 것이다.”
축일7월 20일 성 아폴리나리스 (Apollinaris)
신분 : 베드로의 제자, 주교, 순교자
활동 지역 : 라벤나(Ravenna)
활동 연도 : +1/2세기경?
같은 이름 : 아뽈리나리스
성 아폴리나리스의 이름은 이탈리아의 라벤나 근교에 있는 산 아폴리나리스 인 클라세(San Apollinaris in Classe) 대성전의 묘비명 때문에 잘 알려져 있는데, 그에 따르면 그는 초대교회의 순교자 중 한 사람이었던 같다. 그러나 그가 언제 순교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고, 단지 1세기경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문헌은 라벤나의 주교였던 성 베드로 크리솔로구스(Petrus Chrysologus, 7월 30일)의 “설교집” 128장이다.
그는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여겨지나 그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언제 주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7세기에 기록된 행전에 의하면 사도 베드로(Petrus)에 의해 라벤나의 초대주교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그는 라벤나의 초대주교로서 약 26년 동안 주교직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여러 기적을 행하였으며 설교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고 우상숭배자들에게 엄격했다고 한다. 박해자들로부터 혹독한 폭행을 당해 거의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난 뒤에도 계속해서 라벤나 근교에서 복음을 전하던 그는 다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7월 23일 순교하였다. 그의 축일은 현 로마 가톨릭 전례력에서 7월 20일(이전 7월 23일)로 변경하여 경축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아폴리나리스 (Apollinaris)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