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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29일 토요일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9-27
그때에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내 곁에 계신데 무슨 걱정을 합니까?
우리가 그렇게 심각한 죽음과 삶은 별로 다른 것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아등바등 살지만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고, 언제 큰 병에 걸릴지 모를 일입니다. 가끔씩 주변 사람들이 건강에 조심하라고 당부할 때마다 그냥 웃어넘기지만 항상 병을 달고 살아서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항상 조심하고 있으니 병이 많은 사람이 오래 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복음말씀을 읽거나 묵상할 때 신나는 장면은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기적을 보여주실 때 일입니다. 사실 죽은 사람을 살렸다는 기적은 영화에서나 봄직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오늘 마르타 성녀 축일에 죽은 나자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는 마르타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오빠가 죽기 전에 주님이 계셨더라면’,하는 전제조건은 마르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소망입니다.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다면 우리는 행복하고 즐겁고 걱정할 것이 없는데 곁에 계시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답답하고 사는 게 힘들다는 것입니다. 사실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믿지 못하기에 섭섭하고 외톨이로 주님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마르타처럼 불평을 합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만을 믿고 이처럼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제가 필요할 때 항상 제게서 멀리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제가 사는 모습은 항상 두렵습니다. 왜 제가 어려울 때 당신은 항상 침묵하시고 외면하십니까? 제가 어떻게 하라고 그렇게 멀리 계십니까? 주님, 야속합니다. 그러나 제가 주님께 청하는 것은 항상 들어주시니 간절히 부탁드리오니 조금만 밀어주시고 도와주십시오. 이 은혜는 잊지 않고 열심히 신앙생활도 하고,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불평도 하고, 주님과 흥정하려고 하는 우리들입니다.
참으로 열심히 세상을 살았던 어떤 회장님 한 분이 있습니다. 제가 감히 그분의 성함을 언급하지 않아도 대전교구의 신자 누구나 아실만한 분입니다. 아들을 둘이나 사제로 봉헌하시고, 겸손하게 말씀도 없이 평생을 봉사하시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자신의 작은 몸을 봉헌하셨습니다. 평신도가 활동하는 것을 잘 모를 시절에 교리 교육에 일찍이 봉사하셨고, 선종하는 사람들을 위한 연령회나 염습에는 항상 모범이셨습니다. 달필이어서 작성하신 각종 문서를 보면 글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 합니다. 90이 가까운 고령임에도 봉사의 손을 멈춘 적이 없으셨고 돌아가시던 날 오전에도 병원에 입원한 교우들을 찾아 위로하고 기도하고, 집에 오셔서 점심식사하시고 오후에 병자성사를 받으시고, 주무시는 듯 그렇게 선종하셨습니다. 언제나 웃음이 떠나지 않으신 회장님은 항상 죽음을 초월하신 분 같았지요. 그러면서 언제나 “주님께서 내 곁에 계신데 무슨 걱정을 합니까?” 성경을 들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부지런히 선교하시고, 봉사하시던 그 회장님을 대하면 허우대는 멀쩡하면서 초라한 제 모습이 비쳐집니다. 그래서 부끄러움과 그리움으로 가슴이 메어옵니다.
흔히 '거자일소'(去者日疎)라는 말이 있습니다. 떠나간 사람(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날이 갈수록 점점 잊어버리게 된다는 뜻으로 서로 떨어져 있으면 사이가 멀어진다는 말이지요. 주님도 떨어져 있으면 잊게 되는 이치입니다. 부부도 오래 동안 떨어져 있으면 정이 얇아지고 친구도 오래 떨어져 있으면 우정이 식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도 가까이 하지 않으면 그 분의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오늘 마르타는 주님과 항상 가깝게 있었기 때문에 주님을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가르쳐 주시지도 않았고, 그렇게 신앙을 고백한 베드로가 코치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타는 알고 있습니다. 마음 안에 주님과 항상 같이 있었고,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을 믿습니다. 그리고 마르타처럼 고백합니다. 주님과 항상 같이 있으면, 죽더라도 살고, 살아서 믿으니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6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축일7월 29일 성 라자로 (Lazarus)
신분 : 신약인물, 예수의 제자, 주교
활동 지역 :베타니아(Betania)
활동 연도 :+1세기경
같은 이름 :나자로, 나자루스, 라자루스
요한 복음 11~12장에 의하면 성 라자루스(또는 라자로)는 예루살렘 부근 베타니아에 살던 성녀 마르타(Martha)와 성녀 마리아(Maria)의 오빠로서 예수님의 친구였고, 병으로 인해 죽은 뒤 무덤에 있다가 예수님에 의해 다시 살아난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성 라자루스를 소생시키기 전에 성녀 마르타 앞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11,25-26)라고 선포하셨다. 그리고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11,43)라는 말씀으로 죽었던 성 라자루스를 되살려주셨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수석 사제들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성 라자루스까지 죽이기로 결의하였다(12,10). 성 라자루스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에서 열린 예수님을 위한 잔치에 참석해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았던 것으로 나타난다(12,1-2). 그러나 그 외에 신약성경 안에서 죽음에서 소생한 성 라자루스의 행적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성 라자루스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 · 승천하신 후 여동생인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그리고 막시무스(Maximus) 및 다른 동료들과 함께 박해를 피해 유다 땅을 떠나 노 없는 배를 타고 표류하다가 프랑스 남서부 프로방스(Provence) 지방에 도착했다. 그들은 그 지방에 복음서를 전달하고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해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고, 성 라자루스는 마르세유(Marseilles)의 초대 주교가 되어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선종했다고 한다. 하지만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체포되어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른 전설에 의하면 그는 여동생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기적적으로 키프로스(Cyprus)에 도착해 키티온(Kition) 또는 라마카(Lamaka)의 주교로서 30년을 사목하다가 그곳에서 선종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성 라자루스와 그의 누이들은 시리아로 갔고, 그의 유해는 후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이장되었고 많은 성당이 그를 기념해 세워졌다고 한다. 이렇듯 소생 이후 그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프랑스 전승에는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 이후 그리스도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7월 22일)와 주님께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루카 7,36-50)와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를 동일 인물로 보던 전통이 반영되어 있다. 실제로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22일 목록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해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주셨고 부활의 첫 목격 증인이 된 인물로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했고, 7월 29일 목록에서 성녀 마르타에 대해서는 구세주를 환대한 집주인으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성 라자루스와 남매 사이로 프랑스 남동부 타라스콩(Tarascon)에서 선종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이렇게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의 신원이 분명하지 않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보편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7월 29일에 성녀 마르타 기념일만 수록하였다. 성 라자루스는 보편 전례력에서는 빠졌지만, 옛 “로마 순교록”의 12월 17일 목록에서 주님에 의해 죽음에서 소생한 인물로 주교로서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일부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은 7월 22일과 29일의 관련 목록에서 프랑스 전승과 관련된 언급을 삭제하고, 7월 29일에 성녀 마르타뿐만 아니라 죽었다가 주님에 의해 소생한 성 라자루스와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던 성녀 마리아를 함께 기념하도록 함으로써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를 동일 인물로 보던 전통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2021년 1월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경신성사성의 제안을 받아들여 ‘성녀 마르타,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 기념일’을 7월 29일로 정하는 교령을 발표하였다. 이번 교령은 최신 “로마 순교록”의 연구와 일부 지역 전례력에서 이미 3남매를 같은 날 함께 기념해 온 사실 등을 근거로 로마 보편 전례력에서 7월 29일을 3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함께 기념하는 날로 변경 · 확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주 예수님은 베타니아의 집에서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의 가족 정신과 우애를 경험하셨고, 이런 까닭에 요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말한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너그러이 환대를 베풀었고,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온순하게 경청했으며, 라자로는 죽음을 굴복시키신 분의 명령으로 무덤에서 즉시 나왔다.”라고 3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강조했다.
축일7월 29일 성녀 마르타 (Martha)
신분 : 신약인물, 동정녀
활동 지역 :베타니아(Betania)
활동 연도 :+1세기경
같은 이름 :마르따, 말따
성녀 마르타는 신약성경의 루카 복음 10장 38-42절과 요한 복음 11~12장에서 등장한다. 두 곳의 내용을 종합하면 성녀 마르타는 예수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린 성녀 마리아(Maria)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성 라자루스(Lazarus)의 누이로 예루살렘 인근 베타니아에 살면서 주로 집안일을 담당했던 것 같다. 이들 3남매는 주님의 친구이자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로, 예수님께서도 종종 그들 집에 머무신 듯하다. 루카 복음은 예수님께서 방문하셨을 때의 일을 전하며 성녀 마르타를 활동적인 여성으로 묘사하였다.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던 성녀 마르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10,40) 하고 말했을 때, 주님께서는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10,41-42)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성녀 마르타는 보통 활동적이고 봉사하는 그리스도인의 상징으로, 성녀 마리아는 기도하며 관상 생활을 추구하는 이들의 모범으로 인식되었다.
요한 복음 11장을 보면 성 라자루스가 병을 앓고 있을 때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도움을 청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가지 않으시고 며칠 뒤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성녀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씀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갔고, 성녀 마리아는 그냥 집에 있었다. 성녀 마르타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11,21-22)라고 원망과 함께 신앙 고백을 하고 있다. 이어지는 예수님과의 대화에서도 예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11,27)라며 완전한 신앙 고백을 하고 있다. 이처럼 성녀 마르타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며 가까이에서 주님을 섬기는 봉사를 통해 차츰 완전한 신앙 고백으로 나아간 참된 제자의 모범이었다. 성녀 마르타는 ‘여주인’, ‘부인’이라는 뜻의 아람어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환대’의 대표적 인물이며 요리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프랑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성녀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 · 승천하신 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성 라자루스와 동료들과 함께 박해를 피해 배를 타고 이스라엘을 떠나 표류하다가 프랑스 남서부 프로방스(Provence) 지방에 도착해 그 지방에 복음서를 전달했다. 중세의 전설에 의하면 성녀 마르타는 한 마을에서 그곳 사람들을 괴롭히던 타라스크(Tarasque)라는 괴물을 십자가를 들고 성수를 뿌려 얌전하게 길들였다고 한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면서 마을 이름도 타라스콩(Tarascon)으로 변경되었다. 이런 프랑스 전승에는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 이후 그리스도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7월 22일)와 주님께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루카 7,36-50)와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를 동일 인물로 보았던 전통이 반영되어 있다. 실제로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22일 목록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해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주셨고 부활의 첫 목격 증인이 된 인물로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했고, 7월 29일 목록에서 성녀 마르타에 대해서는 구세주를 환대한 집주인으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성 라자루스와 남매 사이로 프랑스 남동부 타라스콩에서 선종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그러나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은 관련 목록에서 프랑스 전승과 관련된 언급을 삭제하고, 7월 29일에 성녀 마르타뿐만 아니라 죽었다가 주님에 의해 소생한 성 라자루스와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던 성녀 마리아를 함께 기념하도록 함으로써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를 동일 인물로 보던 전통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2021년 1월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경신성사성의 제안을 받아들여 ‘성녀 마르타,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 기념일’을 7월 29일로 정하는 교령을 발표했다. 그동안 서방 교회 전통에서 성녀 마리아의 신원이 분명하지 않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보편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7월 29일에 성녀 마르타 기념일만 수록했었다. 성 라자루스는 보편 전례력에서는 빠졌지만, 옛 “로마 순교록”의 12월 17일 목록에서 주님에 의해 죽음에서 소생한 인물로 주교로서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하며 기념해 왔었다. 이번 교령은 최신 “로마 순교록”의 연구와 일부 지역 전례력에서 이미 3남매를 같은 날 함께 기념해 온 사실 등을 근거로 7월 29일을 3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함께 기념하는 날로 변경 · 확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주 예수님은 베타니아의 집에서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의 가족 정신과 우애를 경험하셨고, 이런 까닭에 요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말한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너그러이 환대를 베풀었고,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온순하게 경청했으며, 라자로는 죽음을 굴복시키신 분의 명령으로 무덤에서 즉시 나왔다.”라고 3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강조했다.
축일7월 29일 성녀 마리아 (Mary)
신분 : 신약인물, 동정녀
활동 지역 :베타니아(Betania)
활동 연도 :+1세기경
같은 이름 :메리, 미리암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는 신약성경의 루카 복음 10장 38-42절과 요한 복음 11~12장에서 등장한다. 두 곳의 내용을 종합하면 성녀 마리아는 주님을 환대한 성녀 마르타(Martha)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성 라자루스(Lazarus)의 누이동생으로 예루살렘 인근 베타니아에 살았고,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린 적이 있었다. 이들 3남매는 주님의 친구이자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로, 예수님께서도 종종 그들 집에 머무신 듯하다. 루카 복음은 예수님께서 방문하셨을 때의 일을 전하며 성녀 마르타를 활동적인 여성으로 묘사하였다.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던 성녀 마르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10,40) 하고 말했을 때, 주님께서는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10,41-42)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성녀 마르타는 보통 활동적이고 봉사하는 그리스도인의 상징으로, 성녀 마리아는 기도하며 관상 생활을 추구하는 이들의 모범으로 인식되었다.
요한 복음 11장을 보면 성 라자루스가 병을 앓고 있을 때 성녀 마리아와 성녀 마르타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도움을 청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가지 않으시고 며칠 뒤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씀을 듣고 성녀 마르타는 주님을 맞으러 나갔으나 성녀 마리아는 그냥 집에 있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는 이미 성 라자루스가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나 지난 뒤였고,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위로하고자 와 있었다. 성녀 마리아는 스승님께서 부르신다는 언니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 가서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며 울었고, 예수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다. 주님의 명령으로 라자루스가 무덤에서 나와 소생하자 마리아를 찾아왔던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요한 복음 1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에 가셨을 때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성녀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성 라자루스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때 성녀 마리아는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 에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12,5)라는 유다 이스카리옷의 말에 예수님께서는 당신 장례 날을 위한 일이라며 마리아를 두둔해주셨다.
프랑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성녀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 · 승천하신 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성 라자루스와 동료들과 함께 박해를 피해 배를 타고 이스라엘을 떠나 표류하다가 프랑스 남서부 프로방스(Provence) 지방에 도착해 그 지방에 복음서를 전달했다. 이런 프랑스 전승에는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 이후 그리스도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7월 22일)와 주님께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루카 7,36-50)와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를 동일 인물로 보았던 전통이 반영되어 있다. 실제로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22일 목록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해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주셨고 부활의 첫 목격 증인이 된 인물로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했고, 7월 29일 목록에서 성녀 마르타에 대해서는 구세주를 환대한 집주인으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성 라자루스와 남매 사이로 프랑스 남동부 타라스콩에서 선종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그러나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은 관련 목록에서 프랑스 전승과 관련된 언급을 삭제하고, 7월 29일에 성녀 마르타뿐만 아니라 죽었다가 주님에 의해 소생한 성 라자루스와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던 성녀 마리아를 함께 기념하도록 함으로써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를 동일 인물로 보던 전통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2021년 1월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경신성사성의 제안을 받아들여 ‘성녀 마르타,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 기념일’을 7월 29일로 정하는 교령을 발표했다. 그동안 서방 교회 전통에서 성녀 마리아의 신원이 분명하지 않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보편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7월 29일에 성녀 마르타 기념일만 수록했었다. 성 라자루스는 보편 전례력에서는 빠졌지만, 옛 “로마 순교록”의 12월 17일 목록에서 주님에 의해 죽음에서 소생한 인물로 주교로서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하며 기념해 왔었다. 이번 교령은 최신 “로마 순교록”의 연구와 일부 지역 전례력에서 이미 3남매를 같은 날 함께 기념해 온 사실 등을 근거로 7월 29일을 3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함께 기념하는 날로 변경 · 확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주 예수님은 베타니아의 집에서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의 가족 정신과 우애를 경험하셨고, 이런 까닭에 요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말한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너그러이 환대를 베풀었고,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온순하게 경청했으며, 라자로는 죽음을 굴복시키신 분의 명령으로 무덤에서 즉시 나왔다.”라고 3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강조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라자로 형제들과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또한 성인록을 올리지 못하지만 루칠라 자매들과 베아뜨릭스 자매들에게도 주님의 은총과 축복을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