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아래 글은 10년전(2012년 2월 20일경) 삼청동 현대갤러리에서 열린 김환기 작품전에서
그의 대표작 위의 그림을 후배부부와 관람후 쓴 글인데, 오늘 서가에 꽂인 화록에서
이 그림을 보면서, 그때의 아름다운 추억이 떠올라 여기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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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화가 김환기(1913~74)의 대표작 이름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보로 지정된 그림의 주인공은, 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추사 김정희 5명뿐이다. 그러면 20세기 화가로는
누가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림에 관해 잘 모르는 내 생각으로도
아마 박수근, 김환기, 장욱진이 우선적으로 추천될 것 같다.
한국적 서정을 세련된 모더니즘으로 추구하던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는
나이 50세인 1963년에 미협 이사장, 홍익대 미대학장이라는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뉴욕으로 건너가 서양의 모더니즘에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뉴욕에서 그는 즐겨 그리던 항아리, 매화, 산, 강, 그리고 고향인
신안의 섬마을, 뻐꾸기 소리 등을 점(點)으로 환원시켰다.
그는 일기에서 ‘서울의 오만가지’를 생각하며 점을 찍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의 점에는 서구 모더니스트의 냉랭하고 물질뿐인 올오버 페인팅,
색면파 추상, 미니멀 아트에서 느낄 수 없는 동양적 서정과 인생이 서려 있다.
그래서 그의 대작 ‘10만개의 점’ 앞에선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지난 토요일, 평소 잘아는 후배 부부(남편은 철학과, 부인은 미술과 교수)의 초대를 받아,
오랜만에 삼청동의 중국식당에서 점심식사와 인근 현대갤러리에서 열린
김환기 작품 전을 보면서 즐거운 오후 시간을 가졌다. 내년으로 김환기는 탄신
100주년을 맞는데, 지금 이에 대비한 대규모 김환기 전(2월 26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맛있는 중국요리를 먹고, 차는 그곳에 주차시켜놓고, 삼청동 예술거리를 걸으며
현대갤러리 본관과 별관에 가득 찬 그의 작품을 보면서, 지난해 이맘때
동기 친구와 이곳에서 장욱진 전(展)을 감상했던 생각도 났다.
그러고 보니, 현대갤러리에서 재작년에는 박수근, 작년에는 장욱진,
금년에는 김환기 전을 기획하여 야심작으로 동호인에게 새해 선물로 보내는 것 같다.
많은 작품 앞에서 설명을 들으며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시공을 넘어 뛰어난
화가의 예술경지에 감탄과 몰입을 하면서, 특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항아리와 매화’, ‘사슴’ 등 세 작품에는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훗날 언젠가 이 세 작품은 국보로 지정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바라봤다.
눈이 내린 예술의 길을 오고 가며, 한 시간여의 식사와 두어 시간 갤러리 관람과
아름다운 카페에 머물며, 자연과 사람과 예술의 삼박자가 아름답게 어울려 화음을
이루어, 세월의 무게에 억눌리고 세파의 먼지에 찌들은 무거운 상념을 씻고 가슴을
열게 하여, 심연에서 올라오는 감성의 메아리를 저 겨울바람에 실어 하늘로 띄운다.
특히 맛있는 식사와 보기 힘든 전시회 그리고 예쁜 카페에서 팥죽과 허브 차, 등
일습을 후배로부터 대접받고 보니 기분이 매우 좋다. 전에는 누구에게 특별히
후배에게 얻어 먹고 대접받으면 기분이 민망스럽고 쩝쩝 했는데,
오늘은 왠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기분도 즐겁고 재미가 솔솔 하다.
이제 나이가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얼굴이 두터워졌는가? 에라~ 모르겠다.
다음 번에도 어느 후배가 대접하겠다 하면 어흠하고 나갈 것이고,
앞으로는 또한 그런 후배가 있는지, 아니면 압력을 넣어 꼬시면
억지라도 말 들어줄 후배가 있는지, 서서히 눈알을 굴러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