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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2일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믿음이 있으면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4ㄴ-20
그때에 14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15 말하였다. “주님, 제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습니다. 자주 불 속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자주 물속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16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가 보았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18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 호통을 치시자 아이에게서 마귀가 나갔다. 바로 그 시간에 아이가 나았다.
19 그때에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다가와,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0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내 믿음이 아무리 작아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직 어렸던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를 군청에서 운영하는 공동묘지에 모셨습니다. 공동묘지는 집에서 걸어서 2km쯤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자주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가 하소연도 하고, 넋두리도 하고, 기도도 하고, 묵주신공을 하면서 산책도 하였습니다. 그 때는 아버지가 보고 싶어 자주 간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마음이 머물고 가끔은 저녁에도 혼자 그 길을 걸었는데 그건 아버지의 산소가 공동묘지의 윗부분에 있었고, 산소 옆으로 아주 큰 길이 나 있어서 산책하기에 좋았기 때문입니다. 20대의 후반 어느 여름밤이었는데 친구들과 공동묘지 그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졌습니다. 나는 갑자기 아버지 산소에 가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녁에 별빛만 초롱거릴 때 개구리와 여치 소리가 진동하는 여름밤에 공동묘지를 간다는 나를 보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그랬지만 나는 그런 두려움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마귀가 나에게 덤벼든다고 하더라도 문제없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헤어져 한 1km는 족히 걸어갔습니다. 아버지 산소에서 한 100m쯤 떨어진 곳에서 산소 쪽으로 방향을 돌리며 상당히 큰 참나무 밑을 지나는데 시커먼 것이 쏜살 같이 내게 달려들더니 내 따귀를 철썩 때리고 날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그 자리에 펄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틀림없이 귀신이나 아니면 강시(그 때는 강시가 대단히 인기 있는 영화의 주제였습니다.)거나 좀비나 마귀가 나를 때리고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잃기 직전에 참나무에 별빛 사이로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특유한 소리를 내며 당황해 하는 것들은 분명 박쥐들이었습니다. 박쥐 한 마리가 그 참나무에 매달려 있는 친구들에게 돌아오다가 나와 부딪치고 벼락같이 내 따귀를 때린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정말 혼비백산 하였답니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웃음도 나오고, 한편으로는 정말 귀신이 그렇게 덤벼들었다면 나는 기절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실소를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믿음이 지금 제자들 만큼일까? 지금 내 생활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반만큼이라도 된다면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하는 마귀를 나는 지금 몰아낼 수 있을까? 주님께서 믿음이 없다고 하십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다고 하여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겨자씨를 한번 보았는데 이건 완전히 먼지와 같이 손으로 비벼서도 씨가 있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 산을 옮길 수 있을까? 그 여름날 담력이 세고, 마귀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장담하였던 젊었던 나도 박쥐 한 마리가 때린 따귀에 정신을 놓을 정도로 놀랐는데 정말 대단한 마귀가 내 앞에서 위세를 떨치며 나를 공격한다면 나는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간담이 서늘하답니다.
나는 제자들의 믿음을 따라갈 수 없는 아주 미약한 믿음의 수준에 머물고 있답니다. 그러나 겨자씨와 같은 아주 미미한 믿음만 있다면 그 믿음을 키워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겨자씨만한 믿음을 키워주시어 새들이 깃들만큼 큰 나무로 자라게 만들어주시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으로 키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만심으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내 능력으로 마귀도 쫓아버리고, 세상을 모두 평정하고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먼지와 같이 아주 작은 내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느끼지도 못하고, 내 믿음이 이 정도만 되어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답니다.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고, 영성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으니 내 믿음은 다른 사람보다는 클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봉사활동을 많이 하였다고, 본당에서 사목협의회 임원을 맡고 있다고 내 믿음이 신실한 것도 더구나 아니랍니다. 매일 묵주의 기도를 많이 바친다고 믿음이 큰 것도 아니고, 악마를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하여도 내 믿음은 겨자씨보다 작답니다.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만용과 자만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 믿음은 겨자씨보다 더 작고, 측정할 수도 없이 미미하답니다. 물론 성경공부나 영성서적을 읽거나, 봉사활동을 하거나 기도를 많이 바친다는 것은 내 믿음에 크게 도움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본질은 하느님의 뜻에 전적으로 나를 의탁하고, 그 계시하심과 권능과 사랑에 응답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믿음은 순전히 하느님의 사랑에 맞장구치듯 그렇게 응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젖먹이 어린애가 엄마에게 완전히 자신을 내어 맡기듯 그렇게 의탁하고 헌신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생각입니다. 젖먹이가 아무런 힘도 없고, 아무런 능력이 없어도 그 아이에게 생명을 주시고, 키워주시는 엄마와 같이 주님께서 내 믿음이 아무리 작아도 성령으로 키워주실 것입니다. 큰 나무가 되고, 산을 옮길 수 있을 만큼 키워주실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6,4-13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4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5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6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7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
8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9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
10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을 너희에게 주시려고,
너희를 그곳으로 데려가실 것이다. 거기에는 너희가 세우지 않은 크고 좋은 성읍들이 있고,
11 너희가 채우지 않았는데도 이미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들과,
너희가 파지 않았는데도 이미 파인 저수 동굴들과, 너희가 가꾸지도 않은 포도밭과 올리브 밭이 있다.
거기에서 너희가 마음껏 먹게 될 때,
12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13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이름으로만 맹세해야 한다.”
축일8월 12일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Jane Frences de Chantal)
신분 : 설립자, 수녀
활동 연도 : 1572-1641년
같은 이름 : 방지가, 샹딸, 요한나, 잔, 잔느, 쟌, 제인, 조반나, 조안, 조안나, 조한나, 지아나, 지안나, 지오바나, 지오반나, 프란체스카, 후아나
1572년 1월 23일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지방 디종(Dijon)에서 귀족 가문의 둘째 딸로 태어난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Joanna Francisca de Chantal)은 18개월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엄격한 가톨릭적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로부터 폭 넓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20세 때에 크리스토프 드 샹탈(Christophe de Chantal) 남작과 결혼한 그녀는 충실한 아내이자 헌신적인 어머니요 검소하고 알뜰한 주부로서 몰락의 위기에 처해 있던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성(城)에서 매일미사를 봉헌하는 관례를 만들었고, 다른 성의 신심활동을 도입하여 소개하면서 자선활동도 열심히 하였다. 그들 부부는 6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둘은 유아 때 사망하였다. 게다가 1601년 남편이 사냥을 나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그녀는 네 명의 자녀와 함께 친정으로 돌아와 신앙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시아버지로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몽틀롱(Monthelon)으로 오지 않으면 손자들의 상속권을 박탈하겠다는 위협을 받고 할 수 없이 몽틀롱으로 가서 7년 동안 자녀교육에 힘쓰며 살았다.
1604년 사순시기 동안 친정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디종을 방문한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은 마침 그곳을 방문한 제네바(Geneva)의 주교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의 설교를 듣고 대단한 감명을 받아 그의 영적 지도를 청하였다. 처음에 다소 망설이던 주교는 결국 그녀의 간청을 받아들였고 여러 번의 만남을 통해 서로 영성적인 교감을 나누게 되었다. 그 후 그녀는 다시 결혼하지 않을 것과 주교에게 순종할 것을 서원하였다. 디종의 카르멜회 수녀들과 만남을 통해 큰 영향을 받은 그녀는 자신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하고자 원했으나 주교는 좀 더 인내를 갖고 기다리도록 했다.
1607년에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는 그녀에게 영성적으로는 성모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였을 때에 드러내었던 덕들을 따르고, 활동적으로는 노인들과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활동을 하는 수도 공동체를 세우려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였다. 이에 뜻을 같이 한 그녀는 주교의 도움으로 자녀들의 장래 문제와 집안의 대소사를 해결한 후 안시(Annecy)로 떠났는데, 그곳은 주교가 새로운 수도회를 세우고 싶어 하던 곳이었다. 1610년 6월 6일 삼위일체 대축일에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는 안시 수도원의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그녀와 2명의 동료들이 그 자리에 함께 참석해 주교로부터 정식으로 회칙을 받았으며 이듬 해 그들 모두 수도 서원을 하고 그녀가 원장이 되었다. 이 수도회의 이름과 회헌은 여러 번 바뀌어 오다가 마침내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를 공식 명칭으로 확정하였다. 이 수도회는 1612년 1월부터 병자방문을 시작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경탄을 불러일으켰다. 이듬해 그녀는 시아버지의 사망과 함께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후 더욱 영성적인 성숙에 힘쓰며 수도회의 새로운 분원 설립에 주력하였다.
1614년 리옹(Lyon)에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하면서 많은 난관을 겪기도 했지만 그 모든 시련에도 불구하고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은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의 도움을 받아 수도원을 급속히 확장해 나갔고 많은 여성들이 입회하였다. 이러한 성공적인 확장은 육체적인 고행보다는 겸손과 온화함을 강조한 주교의 가르침과 그녀의 신중함과 헌신 덕분이었다. 1619년에 그녀는 파리(Paris) 분원을 설립하면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ius a Paulus, 9월 27일)를 만나게 되었는데,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는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의 초기 정신과 활동 방향을 옹호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가 사망한 후에는 그녀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 주었다.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가 사망하던 1622년 당시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의 분원은 13개였고, 프랑스 전역으로 확장되어 그녀가 사망할 당시 약 86개의 분원이 있었다.
그녀는 수도회 내적, 외적인 시련을 견디어 내면서 계속해서 분원을 설립하기 위해 거처를 옮겨 가며 생활하였다. 1628년 흑사병으로 많은 수도자들이 사망한 후 안시 수도원으로 돌아온 그녀는 다시금 장상을 역임하다가 1641년 마지막으로 파리에 가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를 만나고 돌아온 후 느베르(Nevers)에서 병을 얻었다. 결국 물랭(Moulins)의 분원에서 몸져누운 그녀는 1641년 12월 13일에 그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그녀의 시신은 안시로 옮겨져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의 무덤 곁에 묻혔다. 그녀는 1751년 11월 21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시복되었고, 1767년 7월 16일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시성되어 1769년부터 로마 전례력에 포함되었다. 그녀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가 쓴 “신심생활 입문”(The Introduction to the Devout Life)에 잘 나타나 있다.
2001년 12월 18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교령에 의해 성녀 축일의 전례적 기념일이 12월 12일에서 8월 12일로 변경되었다. 그 이유는 1999년 3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가 라틴아메리카의 수호자로 선포한 ‘과달루페(Guadalupe) 성모 축일’과 같은 날이어서 전례적인 기념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그녀의 축일을 8월 18일로 변경하여 기념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