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9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5
1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2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잔치 상을 차려 놓고 즐기라고 했는데도
동네에 잔치가 벌어지면 어머니는 그 잔치에 일을 봐 주러 가셨습니다. 그러면 어린 우리들은 그 잔치가 끝날 때까지 며칠간 그 집 음식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네에 잔치가 있으면 정말 살맛나는 일이었습니다. 혼인도 있고, 환갑잔치도 있고, 심지어는 초상이나 소상 대상이나 시제(時祭)까지도 어린 우리들에게는 신나는 잔치였습니다. 그러나 잔치가 항상 풍요로운 것은 아닙니다. 잔치에 초대를 받으면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그 잔치를 칭찬하기도 하고, 은근히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 형편에 너무 잘 차렸다느니, 그 형편에 너무 초라하게 차렸다느니, 음식 솜씨가 좋지 않았다느니, 볼품이나 품위가 어떻다느니 하는 것은 잔치의 뒤에 나도는 말이기도 합니다.
춘향전에서 이 도령이 암행어사에 제수되어 변 사또의 생일잔치에 나타나는 장면은 정말 극적입니다. 이 도령은 거지같은 모양으로 사또의 생일잔치에서 나타나서 대접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도령을 대접해주지 않습니다. 개다리소반에 탁주 한 사발과 나물 안주 조금을 주면서 못마땅해 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 대접을 뿌리치고 주연상에 올라가 간담이 서늘한 시를 지어서 내놓습니다.
金樽美酒는 千人血이요 = 금분미주는 천인혈이요.
玉盤佳淆는 萬姓膏라 = 옥반가효는 만성고라.
燭淚落時에 民淚落이요 = 촉루낙시에 민루락이요.
歌聲高處에 怨聲高라.= 가성고처에 원성고라.
금잔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일만 백성의 피요.
옥쟁반에 담긴 맛 좋은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백성들의 원망소리 높았더라.
가끔 잔치 상이 좌불안석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 도령의 글을 본 사람들도 좌불안석이었을 것이고, 마지못해 참석하는 잔치도 그럴 것입니다. 명절이 가까워지면서 정말 어려운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명절이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고향을 가고, 조상의 산소를 찾을 면목이 없어서 그날이 정말 싫은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잔치 상을 받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추석 상은 조상님들도 무척 불안하실 것입니다. 아니면 가슴이 아플지도 모릅니다. 나라의 경제가 어렵고, 먹고 사는 일도 어렵고, 또 추석을 맞으려는 사람들의 마음도 혼란스럽고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이성 감염병이 확산 된다고 하여 불편하고, 또 긴 장마에 홍수에 태풍에 폭염에 높아진 물가에 뒤숭숭한 사회 모든 문제 때문에 시름이 깊기도 합니다.
오늘은 복음을 대하면서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안식일은 잔치를 벌려놓고 그 잔치의 주인과 참석한 모든 손님들이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즐기며 편히 쉬는 날이 안식일(安息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은 잔치를 베풀고, 손님은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하며, 잔치 상을 마련하기 위해서 백성들이 고혈을 다 쏟고,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눈물을 흘리는 잔치 상이라면, 차라리 잔치를 베풀지 않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심지어는 당신의 살과 피를 모두 내어놓고, 그 품에서 자녀들과 형제들이 편히 쉬고, 즐기는 잔치를 생각해보면, 변 사또의 잔치 상과 안식일의 잔치 상은 천지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것은 정말 잔치의 주인에 의해서 모든 분위기와 모든 사정이 다를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은 당신의 품에서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편하고, 행복하고, 기쁨의 잔치가 되어 먹고 마시고, 즐기기를 원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울해 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주일에 주님을 찬미하고 예배들 드릴 믿음만 있다면 기뻐하실 것입니다.
소박하게 없는 가운데 정겹게 드리는 미사가 주님께서는 더욱 반기실 것이니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품으로 달려 드십시오.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그러한 모습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 없게 해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1,21-23
형제 여러분, 21 여러분은 한때 악행에 마음이 사로잡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그분과 원수로 지냈습니다.
22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23 다만 여러분은 믿음에 기초를 두고 꿋꿋하게 견디어 내며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 복음은 하늘 아래 모든 피조물에게 선포되었고, 나 바오로는 그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축일9월 9일 성 베드로 클라베르 (Peter Claver)
신분 : 신부, 선교사
활동 지역 : 콜롬비아(Colombia)
활동 연도 : 1580-1654년
같은 이름 : 끌라베르,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Barcelona) 근교 베르두(Verdu)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성 베드로 클라베르(Petrus Claver)는 바르셀로나 대학교에서 공부한 다음 1602년 8월 7일 예수회에 입회하여 1604년까지 타라고나(Tarragona)에서 수련을 받았다. 그는 마요르카(Mallorca) 섬의 몬테시온 예수회 대학에서 1608년까지 철학을 공부하면서 같은 예수회원인 성 알폰수스 로드리게스(Alfonsus Rodriguez, 10월 30일) 수사를 만나 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성 로드리게스 수사는 그에게 신대륙으로 가서 선교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래서 그는 선교사가 되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1610년 그는 관구장의 지시로 다른 3명의 예수회원들과 함께 콜롬비아 카르타헤나(Cartagena) 항에 도착하였다. 그는 1612년부터 1615년까지 콜롬비아의 수도인 보고타(Bogota)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616년 카르타헤나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당시 콜롬비아는 에스파냐의 식민지였고, 카르타헤나는 노예 매매의 중심지였으므로 성 클라베르는 알폰소 데 산도발(Alfonso de Sandoval) 신부와 함께 콜롬비아 인디오들의 처참한 상황을 개선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서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이 집단 수용되는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음식물과 의약품을 공급하였고, 정기적으로 수용 막사를 방문하여 나병에 걸린 노예들을 돌보아 주면서 그들의 벗이 되었다. 성 클라베르는 40영 년 동안 흑인 노예들을 위하여 헌신하였는데, 그가 생전에 세례를 준 흑인 노예만도 3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는 또한 하루 종일 노예들을 방문하여 고해성사를 주었고, 카르타헤나의 수많은 흑인 노예들이 그의 영적 자녀가 될 정도로 전 생애를 흑인 노예들을 위해서 살았다.
그는 스스로 엄격한 생활을 실천하였고, 살아 있는 동안에 이미 초자연적 은혜를 받아 예언도 하였고 또 기적하는 능력도 있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힘도 매우 강하였다. 그는 1650년에 전염병에 걸렸다가 곧 회복되었으나, 세상을 떠나기 전 4년 동안 누워서 생활해야 했다. 그는 1654년 9월 8일 카르타헤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851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 뒤, 1888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황 레오 13세는 1896년에 성 베드로 클라베르를 흑인 노예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하는 선교사들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현재 그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특히 콜롬비아 선교의 수호성인이며 흑인의 사도로 불린다.
오늘 축일을 맞은 베드로 플로베르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