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5일 금요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이날은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함께하신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날이다. 일찍이 시메온은 성모님의 고통을 예언하였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고 기억하는 신심은 오래전부터 널리 퍼져 있었으며, 1688년 인노첸시오 11세 교황이 이 기념일을 정하였다. 1908년 성 비오 10세 교황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 날인 9월 15일로 이 기념일을 옮기고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연결하여 기억하게 하였다.
<아들 수난 보는 성모 맘 저미는 아픔 속에 하염없이 우시네(‘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부속가).>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25-27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구세주의 어머니만 감당할 수 있는 고통
오늘은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는 ‘성모 통고 기념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사도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고, 어머니에게 요한을 아들로 여기시라’고 유언처럼 말씀하시는 정말 가슴 아픈 장면을 요한 복음사가와 루카 복음사가는 정리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오늘을 ‘성모 칠고축일(聖母 七苦祝日)’이라고 했습니다. 축일(祝日)이라고 하면 흔히 축하(祝賀)하고 잔치를 베푸는 경사스러운 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은 기념일로 바꿨지만 ‘축(祝)’자는 본래 ‘빌다’, ‘기도하다’, ‘묵상하다’라는 의미랍니다. 그래서 축일이라면 ‘축하하는 날’이라는 뜻보다는 ‘기도하고 묵상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신부님들의 영명축일도 ‘영명을 축하하는 날’이라는 뜻보다는 ‘신부님이 성인신부 되기를 기도하고 묵상하는 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답니다. 그런 이유로 오늘 ‘성모 통고 축일’(9월 15일)은 성모님의 모든 고통을 묵상하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바꾸어 참된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기도하는 날이랍니다.
우리가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할 때 흔히 일곱 가지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성모님의 고통과 즐거움은 모두 예수님의 고통이며, 처녀의 몸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살 어름판과 같은 그 시대에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모든 고통을 당신의 고통과 아픔으로 간직하신 성모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일곱 가지 고통은 항상 상상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것이랍니다.
1. 이집트로 피난하심(마태 2, 14)
2. 시메온의 예언(루카 2, 35)
3. 예수님을 잃어버림(루카 2, 48)
4. 예수님께서 골고타 갈바리아로 오르심(요한 19, 17)
5.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심(요한 19, 25)
6.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림(요한 19, 40)
7. 예수님을 무덤에 묻음(요한 19, 42)
어찌 성모님의 고통을 이렇게 일곱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그 아픔을 짐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모님만이 그 깊은 아픔을 간직하셨고 우리는 다만 아주 작은 경험과 느낌으로 체험할 뿐입니다. 우리와 다른 것이 있다면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니이시고, 세상 구원의 협력자로서 그 고통을 감수하신 것입니다. 구세주의 어머니만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고통을 단순하게 느끼기 위해 축일을 제정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1. 사실 우리의 삶은 피하고 싶은 고통의 연속일 수 있습니다.
나도 매일이 고통스럽고, 빨리 죽어서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괴롭고 힘들고 서럽고, 육체적으로 병들고 정신적으로 방황할 때 성모님을 생각했습니다.
2. 성모님께서는 우리보다도 더 지독한 형극(荊棘)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리한 창에 가슴을 찔려 받는 고통 중에서 매일을 사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을 고스란히 가슴에 안고 사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느끼는 그런 고통은 뒤로 밀어두고도 말입니다.
3. 성모님의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희망을 간직한답니다.
성모님의 고통을 생각하고 우리의 고통을 즐겁고 가볍게 견딜 수 있답니다. 나도 가장 어려웠을 때 성모님을 생각하고 견디며 살았던 기억이 난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답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의 고통을 위로해 주실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고통만 간직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모님의 기쁨과 즐거움도 우리의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우리도 고통 중에 있을 때, 성모님께 의지하고, 성모님께서 주 하느님께 기도해 주시기를 끊임없이 청해야 하겠습니다. 전구하심을 간절히 바라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면서 부속가를 아주 천천히 묵상하시기를 제안합니다. 아주 천천히..
<예수님께서는 순종을 배우셨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5,7-9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축일9월 15일 성녀 가타리나 (Catherine)
신분 : 과부, 신비가
활동 지역 : 제노바(Genova)
활동 연도 : 1447-1510년
같은 이름 :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지아코포 피에쉬(Giacopo Fieschi)와 프란체스카 디 네그로(Francesca di Negro)의 딸인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또는 가타리나)는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태어났는데, 5명의 자녀 가운데 막내딸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였던 언니의 영향으로 수도생활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지만, 부모님의 염원으로 16세의 나이에 줄리아노 아도르노(Juliano Adorno)라는 제노바 출신 상류층 젊은이와 결혼을 했다. 그녀의 남편은 신앙도 없고 사나운 성경에 낭비벽이 심했다. 반면 그녀는 민감하고 신중하였으며 거의 유머가 없었으나, 그렇다고 매몰스런 여인은 아니었다. 불행했던 그녀의 결혼생활은 10년이 지나면서부터 남편의 방탕으로 인해 극도의 가난에 빠지게 되었고, 성녀 카타리나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병상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1473년 성녀 카타리나는 고해성사를 하던 중에 자신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강하게 느끼는 신비체험을 하고 회개하게 되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회개를 경험한 남편과 함께 제노바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사심 없는 봉사를 시작했다. 남편은 후일 프란치스코회 제3회 회원이 되었다.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부부는 아예 제노바에서 큰 규모인 팜마토네(Pammatone) 병원에서 애덕을 실천하는 일에 자신들을 봉헌하기로 결심했다. 특히 성녀 카타리나는 뛰어난 영성생활로 다른 이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고, 1490년에는 병원장이 되었다. 이 무렵 그녀는 흑사병으로 거의 사경을 헤매기도 했으나 기적적으로 회복하자 자신의 직책에서 사임했다. 그 후 1년 뒤에 남편도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녀는 자신의 영적 지도자가 된 카타네오 마라보티(Cattaneo Marabotti) 신부를 만나 자신이 경험한 수많은 신비 체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병이 악화돼 극심한 고통을 받았지만 그녀의 신심은 비범했다. 그녀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천상적 사물을 관상하는 뛰어난 영성가였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악으로 서서히 물드는 세상의 오염’이었고,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는 마귀의 간계였다고 한다. 그녀의 가르침을 담은 “영혼과 육신의 대화”, “영혼론”은 신비신학 분야에서 유명한 저서가 되었다. 이 책들이 1934년에 영국에서 간행된 바 있다. 1510년 9월 15일 제노바에서 선종한 성녀 카타리나는 1675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737년 교황 클레멘스 1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오늘 축일을 맞은 카타리나 자매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