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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일 화요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9-28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고성명(故性命)의 삶을 삽시다.
어느 날 공자가 여량이라는 큰 호숫가에 이르렀을 때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 폭포수가 요란스럽게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큰물이 떨어지기에 그 밑의 소(沼)에는 어떤 물고기도 등껍질이 단단한 자라도 헤엄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격류 가운데로 어떤 사람이 들어가고 있어서 그가 혹시 자살하려는 줄 알고 제자들을 시켜 그를 구해주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미처 구하기도 전에 격류에 휩쓸려 들어가더니 파도를 뚫고 나와서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노래를 부르면서 한 굽이를 돌아 고요한 호수로 헤엄쳐 나오는 것입니다.
공자는 이를 보고 너무 놀라서 그 사람에게 물었답니다. “여보시오, 그대가 그렇게 위험한 모험을 하다니 제정신이오? 나는 당신이 물귀신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물에서 헤엄치려면 어떤 법칙을 알아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이오?” 그러자 그는 물위에 뜬 채로 큰소리로 말하였습니다. “무슨 법칙이 있겠어요. 고(故)에서 시작하고 성(性)에서 자라고 명(命)에서 이루는 것이지요. 물의 본성에 따를 뿐 절대로 저의 감정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수영하는 방법입니다.” 공자는 공손하게 “그렇다면 한 번 더 물어보겠습니다. 고에서 시작하고 성에서 자라고 명에서 이룬다는 것이 무슨 뜻이오?”하고 묻자 그도 공손하게 얼굴의 물기를 쓸어내리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물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물가라면 편안함을 느끼게 되니 고(故)에서 시작한다는 것이고 물속에서 자라서 물의 성질을 안다고 할 수 있으니 이가 성(性)이요 물가에서 자라서 자연히 물속으로 저절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이를 명(命)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헤엄치는 것도 고성명(故性命)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말했답니다.
우리의 삶이나 신앙도 고성명(故性命)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됩니다. 어려서부터 성당에 다니며 모든 전례와 교회 행사에 참여해서 성당은 내게 있어서는 집보다도 더 편안합니다. 어려움과 괴로움을 거리낌 없이 주님께 말씀드릴 수 있고 전례에도 익숙합니다. 처음 성당에 오는 사람들은 전례가 낯설고 어색해서 눈치를 보고, 왜 일어나고 앉는지 또 절하는지 궁금하고 답답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는 편하고 오랜 동안 성당의 전례에 젖어서 편안하고 익숙하게 살아왔기에 변화하거나 전환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잘못 된 것을 고치기 어려운 것이 또한 고(故)의 속성이기도 해서 옛날부터 해 왔다는 이 보수성은 자칫 게으르고 안일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하느님 안에서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것도 또한 고(故)의 성질입니다.
성(性)은 기본적인 성질입니다. 물의 성질을 잘 알고 있어야 수영할 수 있듯이 자연의 성질을 잘 알고 있어야 자연과 동화되어 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본성에 잘 결합해야 신앙생활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교회행사에 참여하거나 기도 한다고 하느님의 본성에 결합하였다고 할 수 없을 것이며, 주님 말씀을 달달 외우고 있다고 하느님의 본성에 따라 사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과 어떻게 본성적으로 결합하느냐 하는 문제는 항상 숙제처럼 우리에게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느님의 본성을 우리가 잘 알아야만 합니다. 하느님께서 왜 사람이 되시고, 우리를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셨는지 삶 속에서 항상 묵상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명(命)은 참으로 복잡한 문제입니다. 내가 잘 아는 자매님은 남편의 노름 버릇 때문에 평생 기도하면서 주님께 간구한답니다. 그 분의 남편은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이제는 완전히 끊는다고 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그 곳으로 발길이 간다고 합니다. 하느님께 맛을 들이면 세상의 것에서 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몰두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빠서 교회 공동체에서 봉사활동에 시간을 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명(命)에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일에는 신명나서 그 일에 몰두하고 신바람 나서 일을 합니다. 바로 명은 신바람 나게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고성명(故性命)으로 살고 있는 구약의 마지막 인물입니다. 그는 주님의 길을 닦으라고 하느님께서 특별히 안배하신 그 분이 고(故)로서의 삶입니다. 그는 자신이 예언자가 아니라고 하였고 구세주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신분은 주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고, 주님께서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라고 주님을 소개합니다. 그는 하느님의 본성을 알고 있는 것으로 이는 성(性)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길을 닦는 일을 생명을 바쳐서 수행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로 그 사명을 다합니다. 이것이 명(命)의 삶입니다. 새해가 되었으니 금년에는 고성명(故性命)의 순리대로 주님을 증거하고 흠숭하며 찬미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1월 1일 대축일 미사에서 말씀 카드를 뽑았습니다. 제게 주신 금년의 말씀은 “열성이 줄지 않게 하고, 마음이 성령으로 타오르게 하며 주님을 섬기십시오.”(로마서 12, 11)였습니다. 제가 복음묵상을 하면서 열성이 줄어들까 봐 주님께서 경고를 보내셨나 봅니다. 그리고 마음이 게으름을 피웠나 봅니다. 저의 지금까지의 삶을 반성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열정을 불태워서 뜨겁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새해의 다짐을 새롭게 합니다.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22-28
사랑하는 여러분,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23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아드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야 아버지도 모십니다.
24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26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28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축일1월 2일 성 바실리오(대) (Basil the Great)
신분 : 주교, 교회학자, 교부
활동 연도 : 329-379년
같은 이름 : 바실리우스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 또는 바실리오)는 부유하고 이름 있는 그리스도교 집안 출신으로, 교회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문 중의 하나이다. 그의 할머니는 마크리나(Macrina, 1월 14일), 그의 부친은 바실리우스(5월 30일), 그의 모친은 엠멜리아(Emmelia, 5월 30일), 그의 큰 누이는 마크리나(7월 19일), 그리고 두 동생은 니사(Nyssa)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월 9일)와 세바스테(Sebaste)의 베드로(Petrus, 1월 9일)인데, 모두가 성인품에 오른 분들이다.
그는 카이사레아(Caesarea),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그리고 아테네(Athenae)의 학교에서 교육받았으며, 이곳에서 나지안주스(Nazianzus)의 그레고리우스와 깊은 우정을 맺었다. 357년경에 그는 동방의 주요 수도원들을 방문하였으며, 358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다음 네오카이사레아(Neocaesarea)의 이리스(Iris) 강변의 안네시에서 은수자로 정착하였다. 바실리우스는 불과 5년 동안을 그의 공동체와 생활했을 뿐인데도 동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와는 달리 법 제정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영향은 정교회 수도생활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주요한 원리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사제로 서품된 후 성 바실리우스는 365년부터 카이사레아 교구를 위하여 일했고, 370년에는 그곳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그는 또 아리우스파(Arianism) 황제인 발렌스(Valens)가 정통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때 용감히 맞서 싸웠다. 이 때문에 그는 지방 총독 앞에 끌려가서 자신을 변명하여야 했다. 바실리우스의 태도가 너무나 당당하였기 때문에 총독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당신 같은 주교는 일찍이 본적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대화를 보더라도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으며, 그의 강직성 때문에 교황 성 다마수스(Damasus)와 서방 교회간의 관계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병자와 가난한 사람을 구하는데 매우 적극적이었고, 요양원을 짓거나 혹은 대대적으로 진료사업을 펼쳤으며 설교가로도 명성을 얻었다. 그는 아리우스파(Arianism)와의 투쟁을 계속하면서 동방 정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발렌스 황제가 전투에서 사망한 지 불과 한 달 만인 1월 1일 카이사레아에서 사망하였다.
바실리우스는 초대 교회의 큰 거인이었다. 비잔틴 제국에서 아리우스파를 몰아낸 것이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아리우스파를 단죄한 배경에는 바실리우스의 영향력이 대단히 컸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가 네오카이사레아에서 제정한 규칙과 조직이 동방 수도생활의 기초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져 온다. 또한 바실리우스는 성직매매를 완강히 거절하였으며, 가뭄과 한발의 희생자를 대대적으로 원조하였으며, 보다 훌륭한 성직자 양성을 도모하였고, 엄격한 성직자 법규를 주장하고, 과감하게 악습을 끊어버리면서, 카파도키아(Cappadocia)에서 만연된 매춘행위 관계자들을 파문하였다.
그는 유식하고 정치력도 있는 사람이면서 성덕이 뛰어났으며, 그리스도교회의 가장 위대한 설교가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의 해박한 저서들과 4백여 통의 편지들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성령에 관한 저서와 에우노미우스를 반박하는 세 권의 저서 그리고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와 함께 편집한 “필로칼리아”가 그 중에서도 유명하다. 그는 교회학자이며 동방 수도자의 아버지로 큰 공경을 받는다.
축일1월 2일 성 그레고리오 (Gregory)
신분 : 주교, 교회학자, 교부
활동 지역 : 나지안주스(Nazianzus)
활동 연도 : 329/330-389/390년
같은 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의 주교로 45년간 사목했던 성 그레고리우스(1월 1일)와 성녀 논나(Nonna, 8월 5일)의 아들로 태어난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나지안주스 또는 인근의 아리안주스(Arianzus)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고, 기도와 사랑의 실천으로 모범이 된 어머니로부터 신앙의 큰 영향을 받았다. 유년 시절 그는 가정에서 성경 읽기를 배웠고, 그 후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Caesarea)와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 수사학교에 다녔고,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를 거쳐 아테네(Athenae)에서도 수학했다. 356년까지 아테네에 머무르는 동안 그는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와 교제했고, 장차 황제가 될 율리아누스 배교자와도 함께 공부했다. 30세 무렵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세례를 받고 소박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위해 성 대 바실리우스와 함께 폰투스(Pontus) 지방의 이리스 강변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부친의 권유로 362년 부활절에 사제품을 받았고, 372년경에는 사시마(Sasima)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사시마 교구는 아리우스파(Arianism)의 영향력이 큰 지역으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성 그레고리우스는 주교로 축성은 되었으나 부임하지는 못했다. 374년 봄, 아버지가 선종한 후 그 뒤를 잇도록 나지안주스의 주교로 임명되었지만 1년 후에 그는 이사우리아(Isauria) 지방의 셀레우키아(Seleukia)에 있는 수도원으로 떠났다. 378년 아리우스파인 발렌스 황제가 죽고 정통교회에 대한 박해가 수그러들자 일단의 주교들이 그를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초청해 아리우스파 지역에서 정통교회의 활성화를 도모하게 했다. 그래서 그는 작은 공동체인 아나스타시아(Anastasia) 교회에서 설교를 시작해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이때 그는 아리우스파인 막시무스(Maximus)와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고, 380년에는 새로 입교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그의 가르침을 정통교리로 인정하고 아리우스파 지도자를 축출하는 칙서를 발표케 해서 정통파 신앙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381년 3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그 도시의 주교로 인정받고, 안티오키아의 멜레티우스(Meletius)가 사망한 후 총대주교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총대주교 임명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안티오키아와 이집트의 교회가 주교좌 이전에 반대하며 격렬히 반대하자 성 그레고리우스는 모든 논쟁을 끝내고 교회의 평화를 위해 주교직에서 물러났다. 공의회가 끝나기 전에 나지안주스로 돌아온 그는 383년 에울랄리우스(Eulalius)가 후계자로 임명될 때까지 나지안주스의 주교직을 맡았다. 그 후 그는 저술 활동과 수도 생활에 전념하고자 아리안주스로 내려와 생애의 마지막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아리우스 이단에 대항해 정통교회를 수호하는데 큰 공적을 남겼고, 또 니케아(Nicaea) 신앙 고백을 해설하고 삼위일체 교리를 확고히 하는 등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동방교회의 4대 교회학자 중 한 명으로 선포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월 25일 또는 30일에 기념한다.
오늘 축일을 맞은 바실리오(대) (Basil the Great), 그레고리오 (Gregory)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