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2일 연중 제3주간 월요일
<사탄은 끝장이 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22-30
그때에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25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26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27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30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자신을 성찰해 보십시오.
논어의 공야장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왈 : 이의호 오미견능견기과 이내자송자야
子曰 : 已矣乎 吾未見能見其過 而內自訟者也
공자가 말하였다. “한심하다. 나는 아직 허물을 알고 내심 스스로 비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노라.”
사람으로 과오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을 뉘우치고 과오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면 과오가 없는 본성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로만 과오를 뉘우친다고 말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거나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헛된 회개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잘못을 발견하고 마음속으로 스스로 책하여 뉘우치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고 공자는 탄식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과오가 있어도 스스로 성찰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과오를 스스로 깨닫고 자책하는 사람도 또한 적은 것입니다.
교황님은 인터넷이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선교를 잘 하고 인터넷을 통해서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을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악성 댓글을 많이 봅니다. 그 때문에 상처를 입고 사회생활에서나 가정생활에서 파탄을 가져오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악성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그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바른 말로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용서를 청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더러운 영이 충동질을 해서 그렇게 악성댓글을 달고 선의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죄를 짓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그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더러운 영은 지금 이 시대에는 더욱 간교해져서 인터넷을 통해서 더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는 더 간교해질 것입니다.
아주 힘든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매일처럼 다가오는 시련은 사막을 홀로 여행하는 것과 같은 도전입니다. 악마는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시련을 계속해서 퍼부으면서 악마에게 의지하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더러운 영으로 유혹합니다. 세상에서 누리고 싶어 하는 권력과 명예와 부귀와 자존심으로 하느님을 배반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리고 그 유혹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한 번 유혹에 빠져들면, 뉘우치지 못하도록 하고, 회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자신을 반성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그 죄의 달콤한 유혹 속에 평생을 살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악마의 하수인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인들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비판하여 가슴깊이 뉘우치며 새로운 생활로 개선하며 삶을 바로잡습니다. 그것을 하느님께서는 아주 기특하게 보셔서 모든 잘못을 용서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은총을 부어주셔서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성령을 내려주셔서 성령의 은총으로 용감하게 세상의 모범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로 삼아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아주 작은 빌미를 크게 만드셔서 시작은 아주 미약하지만 그 결과는 아주 크게 만드실 것입니다. 시작은 아주 볼품없지만 그 결과는 아주 대단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에 의해서 더러워졌다고 막말을 합니다. 그렇게 막말을 하도록 악마는 유혹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령을 모독한 사람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모독한 사람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지었다는 것은 악마의 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악마는 하느님의 용서를 받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악마의 유혹에 빠져 잠시 그 편에 들었을지라도 빨리 성찰하고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것은 성찰과 회개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을 환영하실 것입니다. 잠시 눈이 삐어 악마의 편에 있었을지라도 모두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은 그렇게 단호하게 하시지만 모두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조금도 그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5,1-7.10
그 무렵 1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의 골육입니다.
2 전에 사울이 우리의 임금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전하신 이는 임금님이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임금님께 말씀하셨습니다.”
3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으로 임금을 찾아가자,
다윗 임금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4 다윗은 서른 살에 임금이 되어 마흔 해 동안 다스렸다.
5 그는 헤브론에서 일곱 해 여섯 달 동안 유다를 다스린 다음,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
6 다윗 임금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에 사는 여부스족을 치려 하자,
여부스 주민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도 너쯤은 물리칠 수 있다.”
그들은 다윗이 거기에 들어올 수 없으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7 그러나 다윗은 시온산성을 점령하였다. 그곳이 바로 다윗 성이다.
10 다윗은 세력이 점점 커졌다. 주 만군의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축일1월 22일 성 빈첸시오 팔로티 (Vincent Pallotti)
신분 : 신부, 설립자
활동 연도 : 1795-1850년
같은 이름 : 뱅상, 빈센트, 빈첸시우스, 빈첸티오, 빈첸티우스, 빈켄티오, 빈켄티우스, 원선시오
성 빈첸시오 팔로티(Vincentius Pallotti)는 1795년 4월 21일 로마(Roma)에서 식료품 장사를 하던 부유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의 스승이었던 돈 페리(Don Ferri)는 그를 “작은 성인이지만 머리는 조금 둔했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학업 성취 능력은 향상되었고 1818년 5월 16일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25일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그는 10년 동안 로마의 사피엔차(Sapienza)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친 뒤 영성 지도와 강론에만 전념하였다.
보혈회를 설립한 성 가스파르 델 부팔로(Gaspar del Bufalo, 1월 2일)와의 우정에서 고무된 성 빈첸시오는 자신의 직위를 포기하고 여러 본당에서 사목활동에 전념하였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사도적 역할에 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예견하듯이, 1835년 성 빈첸시오는 변화와 정의에 헌신하고자 하는 성직자, 수도자와 평신도들을 모아 가난한 소년들을 위한 야간학교와 직업학교를 세우고 선진 농업기술의 전수를 위한 학원을 세웠다. 학교에서는 젊은이들에게 제화, 제단 기술과 농업 같은 시장성이 있는 기술을 가르쳤고 그들의 작업에 자부심을 주입시켰다. 그는 수도생활의 기도와 침묵에서만 성스러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을 찾아 채워주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일했다. 이러한 그의 정책은 북부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성 요한 보스코(Joannes Bosco, 1월 31일)와 비슷했다.
1835년 그는 팔라티노회(천주교 사도회)를 설립했는데, 성 빈첸시오의 일생 동안 12명의 회원만 있었지만 그 후로 크게 성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가톨릭 사도직 수녀회도 설립하였는데, 이 수녀회는 후에 팔로틴 선교 수녀회로 발전하였다. 그들은 이탈리아,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지에 퍼져 창립자와 같은 이민자들을 돌보았으며, 동방 정교회 그리스도교인들과의 종교 간 대화를 촉진시키는 데 전문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젊은 교수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당신은 트라피스트 회원과 은수자들의 엄격함과 침묵에서 잘라져 나온 부분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거룩해 지십시오. 사회관계에서, 당신의 일터에서, 여가 생활 중에, 당신의 가르치는 직무에서, 출판사와의 만남과 죄인들과의 만남에서 거룩해 지십시오. 성스러움이란 단지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 언제 어디에나 있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성 빈첸시오의 사도적 활동은 자신의 엄격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1837년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는 사람들의 영적 목마름을 채워주기 위해 극도의 노력을 했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제는 누구나 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환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파로 변장하기도 했다. 1844년 성 빈첸시오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신부를 런던(London)에 사는 이탈리아인들을 사목하도록 파견하였다. 그 후로 그의 수도회는 세계 각지로 뻗어나갔다. 로마의 시민들은 성 빈첸시오 신부를 19세기에 나타난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5월 26일)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성 빈첸시오는 자신의 옷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반라의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기 때문이다.
성 빈첸시오 팔로티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다가 1850년 1월 22일 55세의 나이로 로마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1950년 1월 20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 중이던 1963년 1월 20일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황 비오 11세는 그를 '가톨릭 액션(Catholic Action)의 선구자'라고 불렀다.
오늘 축일을 맞은 빈첸시오 팔로티 (Vincent Pallotti) 형제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