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30일 연중 제4주간 화요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1-43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22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23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25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27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3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33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35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39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42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43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희망을 가지고 이겨내십시오.
희망을 가지고 새해를 시작합니다. 금년에는 작년보다 낫겠지 하는 희망이 어려움을 이기고 살도록 용기를 줍니다. 희망을 가지고 새롭게 사업을 시작합니다. 무엇이든지 희망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비록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될지언정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일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간절한 소망은 막연한 희망을 뛰어넘어 불가능을 가능성이 있도록 바꾸어 주기도 합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주실 분은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그 하느님의 은총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암을 ‘희망의 병’이라고 합니다. 그냥 단순히 암을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개념이 아닌 것입니다. 희망은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첫째 힘이 희망입니다. 이것은 더 나은 미래를 예상하고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등대가 되어 현실의 나와 내 행위를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희망이 있다는 것은 사람을 동물과 구별시켜주고 문명인을 야만인과 구별시키는 것입니다. 문명의 인간만이 현재를 넘어서 미래를 내다보고 현실을 넘어서 이상을 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미래를 도전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현실을 넘어서 이상을 품는 인간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에 희망을 갖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존재이유인 것입니다.
품고 있는 희망이 원대할수록 진취모험의 마음은 웅대합니다. 현실의 행위를 이끌 희망의 힘이 그만큼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진취모험의 마음이 뒷받침되지 않는 희망은 계속 희망일 수 없습니다. 과거의 희망이 현재의 행위가 되고, 현재의 희망이 미래의 행위가 되도록, 희망은 진취모험정신에 의해 계속 현실의 행위로서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취모험의 정신과 희망은 서로를 키워주는 동력이 되어 인간의 진취적인 실천을 이끌어 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희망은 어떤 모험도 도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암이나 불치병을 ‘희망의 병’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을 지키고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아름답게 살게 하기 위해서 역경이나 도전을 해야 하는 과정을 밟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 세상에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고 합니다. 공간상으로 말하면 현실세계와 이상세계가 있고 시간상으로 말하면 현재 세계와 미래 세계가 있습니다. 현실과 현재는 행위에 속하며 이상과 미래는 희망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행위 하는 현실은 전에 품었던 이상의 발현이며, 현재 품고 있는 이상은 또한 장래 행위 할 현실의 좌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은 이상의 자손이며 미래는 현재의 부모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가 금수보다 낫고 문명인이 야만인보다 나은 것은 오직 희망이 있고 이상이 있고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이 클수록 진취모험의 마음은 웅장합니다. 암이나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미래를 꿈꾸고 이상사회를 가진다는 것은 행복한 희망입니다. 그 희망 때문에 현재의 어려움을 견뎌내는 것이며 그 고통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그 희망의 나라는 이 세상이어도 좋고 저 세상이어도 좋은 내일인 것입니다. 내일에 희망을 두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고질병을 앓고 있는 두 여인이 나옵니다. 한 여인은 12년이나 계속된 하혈로 숱한 고생을 하였던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간절하게 희망을 겁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그 여자의 병을 낫게 합니다.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는 딸의 병을 낫게 해 주실 것을 예수님께 희망을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죽었던 회당장의 딸을 살려냅니다.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믿으십시오. 그 희망이 예수님에게 닿으면 낫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 희망이 구름을 뚫고 하늘에 닿으면 밝은 미래가 있고, 아름다운 세상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을 열심히 살면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십시오. 지금 현실을 외면하지 마시고 모두 밝은 내일을 위한 초석으로 여기시고 견뎌내십시오.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사는 진취적인 모험가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찾아 나선 탐험가입니다. 내일 어떤 신비로운 세상이 우리 곁에 다가올지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그 신비로운 세상을 향해서 희망을 간직하십시오.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18,9-10.14ㄴㄷ.24-25ㄱㄴ.30―19,3
그 무렵 9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쳤다. 그때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있었다.
그 노새가 큰 향엽나무의 얽힌 가지들 밑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향엽나무에 휘감기면서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리게 되고, 타고 가던 노새는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10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요압에게 알려 주었다. “압살롬이 향엽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4 요압은 표창 셋을 손에 집어 들고, 압살롬의 심장에 꽂았다.
24 그때 다윗은 두 성문 사이에 앉아 있었다. 파수꾼이 성벽을 거쳐 성문 위 망대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바라보니,
어떤 사람이 혼자서 달려오고 있었다.
25 파수꾼이 소리쳐 이를 임금에게 알리자, 임금은 “그가 혼자라면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다.” 하고 말하였다.
달려온 그에게 30 임금이 “물러나 거기 서 있어라.” 하니, 그가 물러나 섰다.
31 그때 에티오피아 사람이 들어와 말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임금님께 맞서 일어난 자들의 손에서 오늘 임금님을 건져 주셨습니다.”
32 임금이 에티오피아 사람에게 “그 어린 압살롬은 무사하냐?” 하고 묻자, 에티오피아 사람이 대답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의 원수들과 임금님을 해치려고 일어난 자들은 모두 그 젊은이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19,1 이 말에 임금은 부르르 떨며 성문 위 누각으로 올라가 울었다.
그는 올라가면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다.
2 “임금님께서 우시며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신다.”는 말이 요압에게 전해졌다.
3 그리하여 모든 군사에게 그날의 승리는 슬픔으로 변하였다. 그날 임금이 아들을 두고 마음 아파 한다는 소식을
군사들이 들었기 때문이다.
축일1월 30일 성녀 사비나 (Savina)
신분 : 부인
활동 지역 : 밀라노(Milano)
활동 연도 : +311년
같은 이름 : 싸비나
성녀 사비나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감옥에 갇힌 신자들을 돌보는데 힘쓰고, 그들이 순교한 뒤에는 시신을 찾아 매장하였다. 그녀는 성 나보르(Nabor, 7월 12일)와 성 펠릭스(Felix, 7월 12일)의 무덤에서 기도하는 중에 선종하였다.
오늘 축일을 맞은 사비나 (Savina)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