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5일 월요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53-5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53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극성스런 사람들
세상 사람들은 말과 행동에 있어서 대략 구분지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이 앞서고 행동은 말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말은 별로 없어도 행동으로 부지런히 실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말도 없고, 행동도 없이 완전히 무관심으로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말이 앞서든 행동이 앞서든 무슨 일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은 무관심한 사람들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봉사하는 사람들 중에도 아주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언제 집안 살림을 하며, 아이들을 돌보면서 시간을 내어 봉사하는지 참으로 극성맞은 사람들을 자주 대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최선과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은 우리들의 삶 속에서 참으로 존경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그 극성맞음으로 우리 사회는 그래도 아름답고 좋아진다고 생각합니다.
마르코 복음을 묵상하면서 아주 극성스러운 사람들을 만나봅니다.
첫 번째 극성스러운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기적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사람도 있고, 사람들의 말씀을 전해 듣고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느낌이나 어떤 감(感)으로 그 분을 직감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가 없던 때 라디오도 없어서 소문으로만 들었던 예수님을 알아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정성을 가진 사람들이고 극성스러운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본다는 것은 단순히 그분의 외양을 보고 그분을 알아볼 수도 있고 그분의 말씀, 인상, 행동, 처신 등 밖으로 표출 되는 것을 통해서 그 분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그분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분을 성령을 통해서 더 잘 알고 있고 성령께서 알려주시기 때문에 쉽게 그 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 뵙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무관심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분을 알아보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참으로 극성스럽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극성스러운 사람들은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서 아픈 사람에게 알려주고, 힘이 없는 사람들을 부축하기도 하고 움직일 수 없으면 들것에 실어 주님 앞으로 데려오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 들것을 만들어 동생과 같이 아버지를 뉘여서 이십 리 길을 뛰어가서 읍내 병원에 입원하였던 일이 있었습니다. 들것이 없었을 때 긴 작대기를 두 개 만들어서 이불 호청을 감은 다음에 노끈으로 꿰매서 들것을 만들었습니다. 들것을 들고 앞서는 사람은 그래도 쉬운데 뒤에 들고 가는 사람은 참으로 어렵답니다. 앞서는 사람의 보조를 맞춰야 하는데도 잘 보이지도 않고, 돌 뿌리나 구렁텅이나 고인 물에 빠지지 않고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앞에서 뛰어가면 어린 동생이 뒤에서 쩔쩔매면서 따라오곤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거나 머무시는 곳마다 알아보고, 뛰어다니며 전하는 사람과 병자들에게 가자고 권유하는 사람, 병자를 들것에 태우고 먼 길을 나서는 사람, 시간이 너무 늦으면 예수님께서 다른 동네로 가실까봐 초초해 하면서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극성맞고 대단한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극성맞은 사람들은 병자를 데리고 와서 움직일 수도 없고, 말할 수조차 없는 병자들을 대신해서 예수님께 머리를 조아리며, “주님 당신의 옷자락 끝에 붙은 실이나 수술의 한 올만이라도 잡게 해 달라.”고 청원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을 때 과감하게 해달라고 하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구걸하는 것 같고, 창피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해서 그냥 구경만 하고 살았습니다. 오이를 잘 파는 사람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 오이 장수가 “오이 사시오.” 하니까 “여기두, 여기두”하면서 뒤를 쫓았다는 양반과 같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니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훌륭하고 극성맞은지 잘 알 것 같습니다.
네 번째로 극성스러운 사람들은 예수님의 옷자락 술이라도 손을 대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고 대 수술을 앞에 두었을 때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 술이라도 손을 댄 사람들은 이미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병 고침을 받은 사람들은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기도와 도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구원도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주님의 은총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봉사하고, 극성스럽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래도 아름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계약 궤를 지성소 안에 들여다 놓았다.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8,1-7.9-13
그 무렵 1 솔로몬은 주님의 계약 궤를 시온, 곧 다윗 성에서 모시고 올라오려고,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각 가문 대표인 지파의 우두머리들을
모두 예루살렘으로 자기 앞에 소집하였다.
2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에타님 달, 곧 일곱째 달의 축제 때에 솔로몬 임금 앞으로 모였다.
3 이스라엘의 모든 원로가 도착하자 사제들이 궤를 메었다.
4 그들은 주님의 궤뿐 아니라 만남의 천막과 그 천막 안에 있는 거룩한 기물들도 모두 가지고 올라갔는데,
사제와 레위인들이 그것들을 가지고 올라갔다.
5 솔로몬 임금과 그 앞에 모여든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함께 궤 앞에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양과 황소를 잡아 바쳤다.
6 그러고 나서 사제들이 주님의 계약 궤를 제자리에,
곧 집의 안쪽 성소인 지성소 안 커룹들의 날개 아래에 들여다 놓았다.
7 커룹들은 궤가 있는 자리 위에 날개를 펼쳐 궤와 채를 덮었다.
9 궤 안에는 두 개의 돌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돌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올 때,
주님께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호렙에서 모세가 넣어 둔 것이다.
10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11 사제들은 그 구름 때문에 서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에 가득 찼던 것이다.
12 그때 솔로몬이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짙은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3 그런데 제가 당신을 위하여 웅장한 집을 지었습니다. 당신께서 영원히 머무르실 곳입니다.”
축일2월 5일 성녀 아가타 (Agatha)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 지역 : 카타니아(Catania)
활동 연도 : +249/251년?
같은 이름 : 아가다, 아가따
교회 전승에 따르면, 성녀 아가타는 시칠리아(Sicilia) 섬의 카타니아 혹은 팔레르모(Palermo)의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할 결심을 하고 스스로 정결 서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리스어로 ‘선(善)’ 또는 ‘좋음’을 뜻하는 ‘아가토스’에서 유래한 이름만큼이나 착하고 아름다웠던 그녀의 미모에 반한 그 지방 총독 퀸티아누스(Quintianus)가 그녀에게 청혼하는 일이 일어났다. 당시는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한창일 때였다. 청혼을 거절당한 총독은 그녀를 소유하려는 계략으로 박해를 이용하였다. 성녀 아가타가 끝까지 그의 제안을 거절하자 퀸티아누스는 온갖 무자비한 고문을 가하고 그녀를 매음굴에 보내는 등 협박과 회유를 그치지 않았다.
그 어떤 고통에도 성녀 아가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퀸티아누스 총독은 그녀의 가슴을 도려내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성녀 아가타는 “내 육체는 도려낼지라도 내 영혼을 도려낼 수 없을 것이오.”라고 당당히 말했다. 잔혹한 고문을 당한 후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하고 감옥에 갇혔을 때, 성녀 아가타는 환시 중에 성 베드로(Petrus)를 보았고, 성 베드로는 천사와 함께 나타나 성녀 아가타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결국 총독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이글거리는 석탄불에 돌리면서 구워 죽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보통 교회 미술에서 성녀 아가타는 한 쌍의 집게나 접시에 담은 자신의 가슴을 들고 있거나 함께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는데, 훗날 이것이 잘못 전해져 접시 위의 빵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래서 성녀 아가타 축일에 빵을 축복하는 관습이 내려오고 있다. 성녀 아가타를 공경하는 신심은 일찍부터 시칠리아 전역으로 퍼졌고, 나아가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에 의해 로마 미사 경본 감사기도 제1양식(로마 전문)에서 기억하는 7명의 성녀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공경을 받아왔다. 특별히 성녀 아가타는 출생지이자 순교지인 시칠리아 섬의 수호성인으로서 큰 공경을 받고 있고,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인 에트나 산(Etna) 인근 지역에서는 화산 폭발로 유황과 돌들이 분출했을 때 성녀의 무덤에서 나온 베일이 마을 사람들을 위험에서 보호해주었다는 기적 이야기도 전해져온다. 성녀 아가타는 처녀, 양치는 여자, 종 만드는 사람, 유리 제조공, 광부, 알프스 등반 안내자, 유방 관련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 간호사들의 수호성인이자 불과 날씨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아가타 (Agatha)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