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렐루야! 알렐루야!
주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24년 3월 31일 주님부활 대축일 낮 미사
주일이 한 주간의 절정이듯, 주님 부활 대축일은 전례주년의 절정을 이룬다. 죽음과 악의 세력을 이겨 내신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큰 기쁨이고 희망이며,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주님 부활 대축일은 하느님의 권능과 주님 부활의 은총에 감사드리는 날이다.
오늘은 주님 부활 대축일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니, 이제는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맙시다. 부활의 첫 증인인 마리아 막달레나와 함께 벅찬 기쁨을 노래합시다. “그리스도 나의 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알렐루야, 알렐루야.”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9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고, 거룩하게 부활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매일 신비한 부활을 체험합니다. 나는 항상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자는 것은 죽는 것의 연습이라는 생각입니다. 내가 죽을 때도 자는 것처럼 그렇게 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리고 아침에는 부활을 체험하는 것처럼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게 하시기 위해서 저녁에 자는 시간과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정해 주시고 매일을 잘 살 수 있도록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죽는 연습을 잘하지 못합니다. 심한 불면증으로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사람의 심장은 평생을 쉬지 못하고 일하기 때문에 그래도 사람이 자는 동안에는 심장이 조금 쉴 수 있다고 하시면서 적어도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5시간 동안은 잠들어 있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더구나 나처럼 심장이 약한 사람은 그 다섯 시간은 심장 약을 먹는 것보다 보약이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렇게 잠들지를 못합니다. 낮 동안 등산을 하거나 육신을 고달프게 일을 하거나 해서 몸이 지치고 힘들게 하면 밤에 잠을 더 못자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 불면증은 나를 엄청나게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장내과 선생님은 아예 수면제를 처방해 주시면서 정말로 잠들지 못하면 약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매일 약을 장복할 수도 없고, 어떤 때는 묵상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TV 영화를 보거나 잠을 자기 위해서 씨름을 합니다.
암을 앓을 때는 더 죽을 뻔 했습니다. 수술하고 통증이 나를 엄습할 때 차라리 죽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밤새워 통증과 싸우고 나면 지쳐서 낮에라도 잠이 들면 눈을 좀 붙이련만 야속하게도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불면증은 족히 40년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것도 버릇입니다. 나이 들어서 박사 공부를 한다고 잠을 덜 잔 것하고, 본태성고혈압이라서 혈관을 넓히는 약을 먹으면 두통이 생기고, 두통에 익숙해지려고 무리한 것이 이렇게 고질병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잠을 잘 못자니 잘 죽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도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습니다. 잘 죽는다는 것은 나처럼 나이 먹고, 병든 사람에게는 큰 숙제입니다.
지금 죽는다고 해도 별 문제가 없고, 오히려 좋겠다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내가 괴로워서 죽고 싶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상에서 잘 살았으니 그 복으로 천국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천국 문을 열어주신다고 보장하신다면 얼마나 복되겠습니까? 내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 나를 불러 놓으시고, “성모님과 예수님이 팔 벌려 나를 데려가시려고 하시니 애비가 막지 마라.”하시고 중환자실에 입원시키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병자성사 받으시고, 아들 신부님한테 전대사 축복까지 받으시고, 본당 신부님께 안수 받으시고, 증손자까지 안아보시고, 아들 딸 전부 만나보시고, 그렇게 여든아홉에 그림처럼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죽는다면 얼마나 복되고 아름답겠습니까?
미련 없이 할 일 모두 하고 잘 죽어야 거룩하게 부활할 수 있습니다. 잘 잠들어야 아침에 상쾌하게 잠에서 깨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얼마나 처참하게 돌아가셨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얼마나 거룩하게 사셨고 거룩하게 돌아가셨는가가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다 이루어졌다.”(요한 19, 30)라고 말 할 수 있도록 이 세상을 잘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잘 죽을 수 있습니다. 다 이루기 전에는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부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서두를 나이입니다. 서둘러 모든 것을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다 이룰 수는 없어도 대충은 마무리 지어야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못한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동안 손도 못 댄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한이 맺히지 않도록 부지런히 해야 하겠습니다. 잘 죽고 거룩하게 부활하기 위해서. 주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3,1-4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축일3월 31일 성 아모스 (Amos)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 연도 : +8세기BC
구약성서 열두 소예언서 가운데 세 번째 책인 아모스서의 저자인 성 아모스(Amos)는 정의의 예언자로서 예언-집필 문학 시대를 연 이스라엘 최초의 예언자였다. 아모스는 남부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Jerusalem)으로부터 남동쪽으로 18km 떨어진 작은 촌락 드고아에서 태어났다(1,1). 다윗 왕권 계승 사화에도 등장하는(2사무 14,1-24) 이 마을은, 사방이 언덕으로 둘러싸인 유다 광야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어서 염소나 양 떼 목축업이 가능했던 지역이었다.
아모스는 자신을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는데(7,14), 이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은 다양하다. 속성 재배를 목적으로 당시 가축들의 사료로 사용되었던 돌무화과나무의 열매에 칼집을 내던 목축업자였던 것으로 여겨지며, 돌무화과나무 재배에 종사했다는 사실에서 여러 지역 특히 셰펠라(Shefela) 지역을 자주 여행하였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아모스는 정치, 문화, 농업이 상호 긴밀히 연계되어 있던 지역 출신으로서, 보다 넓은 시야를 갖출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원 세계에서 터득한 언어를 어려움 없이 구사할 수 있었다.
아모스 예언자가 활동한 기원전 8세기 중반은 북이스라엘 왕국에 있어서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정치적으로 과거의 영토를 상당 부분 회복함으로써 승리에 도취되었고, 경제적으로는 인접 국가들과의 교역이 확대되어 괄목할 정도로 부가 증가하였지만, 이는 오히려 빈부의 사회적 불균형을 가중시켰다. 부자들의 사치와 착취가 사법권을 등에 업고 조직적으로 행해졌다. 그리고 종교적인 면에서도 예언자들의 경신례가 화려해지고, 법과 정의를 존중하고 실천하려는 의지 없이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예식이 성행하였다.
이 같은 역사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좀 더 정확하게 기원전 760-750년경 예언자 아모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모스는 남부 유다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와 왕실의 성소였던 베델을 중심으로 예언활동을 전개하였다(7,10-17). 따라서 그의 사명은 보편적인 중요성을 지님과 아울러 일치의 표지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정치적, 종교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시려는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한 백성으로 머물러 계시기 때문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아모스 (Amos)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