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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7일 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대희년인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이 매우 깊었던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였다. 그 자리에서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를 기릴 것을 당부하였다.
이에 따라 교회는 2001년부터 해마다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있다.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에 감사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교회는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정하여 하느님의 큰 자비를 기리는 날로 삼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내려 주시며 죄를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자비로 죄를 용서받았음을 깨달을 때마다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체험합니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며 기쁜 마음으로 이 미사에 참여합시다.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9-31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신앙은 효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극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답답하고 속이 터집니다. 도대체 임금과 신하 사이의 올바른 관계는 없고, 충신도 없고, 권력의 암투만 있고, 협박과 사색당파에 왕이 휘둘리고, 권력을 위한 살인과 폭력이 난무합니다. 그래서 정치판이 그런 것인가 새삼스럽게 생각되기도 하고, 정치를 하겠다고 명함을 돌리는 사람들이나 정치가들이 이상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 감옥에 간 대통령이나 감옥에 갈 대통령이나 감옥에 다녀온 대통령이나 그 수하들이 정말 국민을 위해서 올바른 마음으로 정치를 했었는지 또한 사극에 나오는 임금과 신하의 도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생활에서 모범을 보이며 신앙에서 하느님을 증거 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모든 순교자들과 모든 성인들과 같이 헌신적으로 세상을 살았던 분들에게 복자(福者)나 성인(聖人)의 칭호를 드리고 가경자(可敬者)로 모시고 있는데 그 분들을 망령되게 표현하거나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아니하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나, 그리스도를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나 그리스도를 함부로 말하도록 만든 모든 사람들과 부모를 버리는 패륜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기사를 보면서 효경의 구절이 생각납니다.
‘요군자는 무상이요, 비성인자는 무법이요, 비효자는 무친이니 차대란지도야니라.’
要君者는 無上이요, 非聖人者는 無法이요, 非孝者는 無親이니 此大亂之道也니라. 라는 말입니다.
<임금에게 강요하는 자는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자요, 성인을 그르다고 하는 자는 법을 업신여기는 자요, 효를 그르다고 하는 자는 부모를 업신여기는 자이니, 이는 크게 어지러운 도이니라.>라고 직역할 수 있습니다.
효경의 주석(註釋)에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는 불효의 죄를 극언(極言)한 것이다. 위대한 임금은 백성을 사랑해서 백성이나 신하들에게 영(令)을 내려 시행하게 하고, 백성들은 임금님에게 품(稟)해서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이거늘 감히 백성으로서 임금을 위협한다고 하면 이는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이요, 또 성인이란 모든 세상의 법을 만들어 내는 분인데 감히 이를 그르다고 말을 한다면 이는 그 법을 어기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사람마다 부모가 없는 사람은 없거늘, 감히 효도하는 것을 그르다고 한다면 이것은 그 부모를 업신여기는 것이 된다. 사람은 반드시 그 부모로 인하여서 태어나는 것이고, 임금이 있음으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이고, 법이 있어서 이 법으로 다스린 뒤에야 사람의 도의는 없어지지 않는 것이며, 이에 따라서 나라와 가정이 어지럽지 않은 것이다. 만일에 이 세 가지 것이 모두 없다고 하면 이것은 세상이 크게 어지러워지게 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불효가 제일 큰 것이니 대개 효도란 반드시 임금에게 충성을 하고 반드시 성인의 법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이와는 반대로 불효를 하는 자는 부모를 봉양할 일을 돌아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임금과 신하도 없으며, 위와 아래도 없어져 법을 무너뜨리고 죄를 범하여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므로 이는 모두가 효도하지 않는 죄가 되는 것이다.]
나는 신앙도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부모로 모시고 그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 바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래 전 얘기입니다. 어떤 교장 선생님에게 신앙을 갖기를 권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장 선생님께서 그러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평교사에서 부장교사가 되고,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되는 수십 년 동안 많은 시집살이를 하고 숱한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이제 겨우 교장이 되었는데 또 다시 하느님의 시집살이를 하란 말이냐’면서 하느님의 시집살이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을 시집살이를 시키는 분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모르고, 예수님을 몰랐다면 주일을 지키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헌금이나 교무금도 생각해 보지도 않고, 금육재도, 사순절도, 전례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양심에 따라 착하고 성실하게 법을 지키고 민주 시민으로서 살면 그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고, 성경을 읽고, 하느님을 믿으면서 많은 계명들을 알게 되고, 은총에 대해서 배우게 되고, 성사 생활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고, 죄와 악을 식별할 줄 알게 되면서 하느님의 뜻에 대해서 깨닫게 되고, 우리의 명오가 열려 사랑에 대해서 배우게 되면서 지킬 것도 많아지고, 베풀 것도 많아지고, 나눌 것도 많아진 크리스천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서는 효성스러워야 한다는 것도 지금 새삼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으며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크리스천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일을 기쁜 마음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을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난의 길’이라고 하지만 그 길을 걸으려고 합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예쁘게 보셔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자비를 묵상하고, 하느님을 임금님으로 알아 그 법을 따르며, 가르침에 충실하고, 그 용서하심과 자비(慈悲)하심을 청하는 날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감읍하여 효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주님의 자비하심에 의지해서 언제나 하느님의 예쁜 자식으로서 살고자 결심하는 날입니다. 그동안 불효로 주님을 아프게 하였음을 크게 반성하고, 다시는 불효하지 않겠다고 믿음으로 약속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제 부터는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결심하고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오늘의 가르침입니다. 이제는 정신을 차려 효성스러운 자식으로 살고자 다짐합니다. 아주 늦은 감이 많지만 말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대희년인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이 대단하였던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를 기릴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교회는 2001년부터 해마다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에 감사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깁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1-6
사랑하는 여러분, 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2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축일4월 7일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 (John Baptist de la Salle)
신분 : 신부, 설립자, 교육자
활동 연도 : 1651-1719년
같은 이름 : 드라살, 밥띠스따, 밥티스타, 밥티스트,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Joannes Baptista de la Salle)은 1651년 4월 30일 랭스(Reims)에서 고대 왕가 귀족 가문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심 깊은 어머니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는 불과 11세 때에 삭발례를 받았고, 16세 때에 랭스 주교좌성당 참사회원이 되었으며, 소르본(Sorbonne) 대학교와 생 쉴피스(Saint Sulpice) 신학교 과정을 마치고 1678년 27세 때에 사제품을 받았다.
귀족 가문에서의 성장과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그는 루앙(Rouen)의 니엘(M. Nyel)이라는 신자와의 만남을 통해 가난한 소년들을 위한 자선 학교를 세우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먼저 그의 고향에 자선 학교를 세우고 차차 그 주변으로 확장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계획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 하느님이 마련한 소명임을 깨달은 그는 가정과 가족을 떠나 참사회원직마저 버리고 이 일에 전심으로 투신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넘겨주고 가난한 사람들의 수준으로 자신을 낮추었다. 그는 교사들을 훈련시키며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엄격한 자기 수련 생활을 따르도록 권유했는데, 이러한 그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에 헌신하는 수도 단체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결국 요한은 오랜 숙고 끝에 1684년 삼위일체 대축일에 12명의 학교 교사들과 함께 1년 동안 수련기를 가진 다음, '그리스도 교육 수도회'라는 이름의 독특한 수도복을 입는 수도회를 창립하였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교육을 위해 평신도들을 훈련시킬 생각으로 1686년에 최초의 정규 학교를 랭스에 설립하였으며 이어 또 하나를 파리(Paris)에 설립하였다. 1688년 랭스에서 파리로 수도회 본부를 옮긴 수도회는 전국적인 성격을 갖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하였다. 초기에 파리의 대주교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였지만, 그의 수도회는 날로 확장되어 지금은 17,000여명의 회원들이 세계 도처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최초로 교사 교육을 실시한 인물이며, 교사들에게 자부적인 사랑을 불어넣은 위대한 교육자였다. 그의 교육 철학은 1720년에 출판된 "학교들의 지침서"(The Conduct of Schools)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루앙에서 중류 사회 상인들의 자녀들을 위한 기숙사 학교를 설립하고, 라틴어와 그리스어보다 모국어를 바탕으로 실용적인 과목을 제공해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루앙의 기숙사 학교는 18세기 수도회에 의해 성공적으로 설립된 다른 많은 학교들의 표준이 되었다. 그는 1719년 4월 7일 성 금요일에 루앙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190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1950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모든 교사들의 주보성인으로 공포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요한 세례자 드 라 살 (John Baptist de la Salle)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