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0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뿌리가 나무에게
나는 암을 치료하면서 아주 지독한 항암주사를 대략 3개월 간 여섯 번이나 맞아야 했습니다. 혀뿌리와 인후에 걸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암 덩어리는 6~7cm는 족히 되었고 이 덩어리가 탄력을 받아서 크기 시작하여서 강의를 하면서 피를 토하고 음식을 먹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항암치료를 위해서 가장 강력한 항암주사를 맞기 위해서 오른 쪽 가슴에 주사 포트를 심어야 했습니다. 암 치료가 끝난 지 8년이 되는데도 그 포트는 가슴에 볼록하게 솟아나 있습니다. 그리고 2~3개월에 한 번씩 가서 소독도 하고 피가 굳지 않도록 헤파린주사제를 주사해서 혈액이 응고되지 않도록 유지해야 합니다. 헤파린 주사제는 뱀의 독성분이 동물의 피에 쉽게 침투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해 주는 주사제제입니다. 그래서 혈전증을 예방하거나 수술 후 혈전증 및 폐색전증의 예방 및 치료나 색전성 심방세동의 예방 및 치료, 급성 및 만성 응고 이상 증의 진단 및 치료 등에 쓰이는 약입니다.
독사나 거머리는 자기들이 잡아먹을 동물에게 독을 주입하거나 피를 빨기 위해서 헤파린이나 히루친과 같은 독소를 집어넣습니다. 그래서 피가 응고되지 않게 만듭니다. 그래서 거머리에 물리면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리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식물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나무도 그렇게 살아간다고 합니다. 나무는 뿌리가 영양분이나 물을 잘 흡수할 수 있도록 뿌리에 효소를 만들어내는 진액을 땅에 투입해서 땅을 아주 부드럽게 만들어 준답니다. 그래서 유기농업을 하기 위해서는 풀을 잘 길러서 땅을 아주 부드럽게 만들어 놓는 일이 가장 우선 되어야 하는 일이랍니다. 그러면 곡식들이 뿌리를 잘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콩과식물들은 뿌리혹박테리아를 만들어서 흙을 부드럽게 만들고 영양분이 많게 만드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잡초를 제거한다고 제초제를 뿌려서 땅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 잘못을 범하고 있답니다.
이현주 시인의 ‘뿌리가 나무에게’라는 시가 오늘 복음과 연관해서 마음에 와 닿습니다.
뿌리가 나무에게 -이현주-
네게 여린 싹으로 터서 땅속 어둠을 뚫고
태양을 향해 마침내 위로 오를 때
나는 오직 아래로
아래로 눈 먼 손 뻗어 어둠 헤치며 내려만 갔다
네가 줄기로 솟아 봄날 푸른 잎을 낼 때
나는 여전히 아래로
더욱 아래로 막힌 어둠을 더듬었다
네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춤추는 나비 벌과 삶을 희롱할 때에도
나는 거대한 바위에 맞서 몸살을 하며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바늘 끝 같은 틈을 찾아야 했다
어느 날 네가 사나운 비바람 맞으며
가지가 찢어지고 뒤틀려 신음할 때
나는 너를 위하여 오직 안타까운 마음 뿐
이었으나, 나는 믿는다.
내가 이 어둠을 부둥켜안고 있는 한
너는 쓰러지지 않으리라고
모든 시련 사라지고 가을이 되어
네가 탐스런 열매를 가지마다 맺을 때
나는 더 많은 물을 얻기 위하여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잎 지고 열매 떨구고 네가 겨울의 휴식에 잠길 때에도
나는 흙에 묻혀 가쁘게 숨을 쉬었다
봄이 오면 너는 다시 영광을 누리려니와
나는 잊어도 좋다, 어둠처럼 까맣게 잊어도 좋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뿌리로 태어나셨고,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진액을 모두 땅에 쏟으셨습니다. 자식들의 영광을 위해서 당신은 어둠의 땅 속을 더 깊이 파고 내려가셨습니다. 자식을 위해서 어떤 부모인들 그렇지 않겠습니까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더욱 그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리 뱀처럼 들어 올려져야 한다고 하셨지만 비참하게 십자가에 돌아가신 수난으로 땅에 뿌리를 내리신 것입니다.
자식들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5,17-26
그 무렵 17 대사제가 자기의 모든 동조자 곧 사두가이파와 함께 나섰다.
그들은 시기심에 가득 차 18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다.
1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20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21 그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가르쳤다. 한편 대사제와 그의 동조자들은 모여 와서
최고 의회 곧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원로단을 소집하고, 감옥으로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22 경비병들이 감옥에 이르러 보니 사도들이 없으므로 되돌아가 보고하였다.
23 “저희가 보니 감옥 문은 굳게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어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4 성전 경비대장과 수석 사제들은 이 말을 듣고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사도들 때문에 몹시 당황해하였다.
25 그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보고하였다.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6 그러자 성전 경비대장이 경비병들과 함께 가서 사도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백성에게 돌을 맞을까 두려워 폭력을 쓰지는 않았다.
축일4월 10일 성 에제키엘 (Ezekiel)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순교자
활동 연도 : +6세기BC
구약성서 대예언서에 속하는 에제키엘서의 저자인 성 에제키엘(Ezechiel)은 기원전 587년 유다 왕국이 멸망한 사건을 전후로 20여 년 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 예언자였다. 에제키엘서는 총 48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에제키엘 자신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 에제키엘은 ‘부지’라는 사제의 아들이었다(1,3). 그래서 예루살렘과 성전이 그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이룬다. 사실 ‘사제’가 에제키엘서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그는 혼인도 하고, 자기 집에 원로들을 모아 놓고 말을 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8,1; 20,1).
그런데 에제키엘서를 보면 그가 매우 독특한 예언자임을 알 수 있다. 구약성서의 가장 신비로운 인물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는 그는, 환시들을 보고 때로는 며칠씩 황홀경에 빠진다(1,1. 4-28; 3,10-15; 37,1-10 등). 많은 상징적인 행동을 하고, 이따금 농아나 마비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또 집에 앉아 있으면서 환시 속에 예루살렘을 돌아다니기도 한다(8장).
에제키엘은 하느님과 동족에 대하여 열정을 지닌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동시에 냉철하고 심사숙고하고 자기의 생각을 엄격한 논리에 따라 전개시키는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훌륭한 신학자였다.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인 성전과 그 의식에 관하여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40장 이하), 민족의 역사와 전통도 자기의 독창적 역사관을 내세울 정도로 깊이 알고 있었다(16장, 20장, 23장 참조). 그는 또 널리 퍼져 있던 신화나 동화 같은 것을 과감히 받아들여 자기의 가르침에 적용시키는 개방된 신학자였다. 그리고 세계정세(25-32장)는 물론, 당시 세계 최대의 무역항이었던 티로의 교역 내용까지도 훤히 알고 있었다(27,12-25). 또한 조선 기술도 거침없이 서술할 수 있는 폭넓은 지식의 소유자였다(27,3-11).
이러한 박식함은 예언자의 사명 수행에 필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말을 듣는 유다인들은 국제 정치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 국제적으로 보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이스라엘은 ‘반항의 집안’이라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듯, 에제키엘의 청중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이들이었다(2,3). 그래서 그들을 회개시키려고 예언자는 자기의 지식을 총동원하였을 뿐더러,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하느님 백성 전체와 그 구성원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더욱 효과적으로 선포하려는 노력이었다.
사실 에제키엘은 사목자였다. 그는 ‘파수꾼’으로 세워졌다(3,16-21; 33,1-9). 파수꾼은 성안에 있는 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늘 주변을 살피고, 작은 위험이라도 닥쳐오면 사람들에게 바로 알려, 준비를 갖추고 재난을 막거나 피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예언자 파수꾼’은 외부의 위험만 알리지 않는다. 각자에게 해당되는 경고를 개별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악인에게는 악을 버리고 돌아서라고 경고하고, 의인에게는 죄를 짓지 말라고 경고해야 한다. 이 파수꾼은 자기에게 맡겨진 이들의 삶과 죽음에 개인적으로 깊이 관여하는 사목자인 것이다.
이 점이 에제키엘을 그 이전의 예언자들과 구분 짓게 하는 큰 특색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시대의 요청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다른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백성 전체에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공동체에게 하느님의 심판을 예고하고 회개를 부르짖으며 또 구원을 약속하였다. 그런데 에제키엘의 시대는 기존의 공동체가 와해되는 때였다. 유다 왕국이 멸망하기 전부터 이미 종교, 정치, 사회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민족 전체가 불행에 빠지면서,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18장). 그래서 예언자는 공동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못지않게 각 구성원에게도 배려를 아끼지 않아야 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예언자상도 바뀐 것이다. 에제키엘은 시대의 요청에 따라 달라진 예언직에 과감히 투신하였다. 어떤 면에서 책임이 더욱 무거워졌지만, 그는 주저 없이 말씀의 선포에 모든 것을 바쳤다. 교회에서는 에제키엘을 예언자이자 순교자로 공경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에제키엘 (Ezekiel)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