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0-35
그때에 군중이 예수님께 30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빵으로 오시는 주님
세월은 참으로 빠릅니다. 어쩌다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곧잘 내게 “이러 이러한 경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라고 묻기도 합니다. 그러면 주책없이 금방 대답해주기도 하는데 정말 대답하기 곤란한 것도 질문 받거나 상담을 청하기도 합니다. 내가 모르기 때문에 대답해 줄 수 없는 것도 있고, 내가 알고 있어도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사람들이 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판단을 해달라는 말은 정말 나를 난처하게 합니다. 이처럼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린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기준을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판단할 자격도 없으면서 판단하거나 상담을 해 준다면 그것은 진실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로 인하여 엄청난 상처도 받을 수 있고, 큰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조언을 해주고 충고를 해 준다는 것은 아주 조심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아주 유명한 화가를 초청하여 대나무를 그려달라고 했는데 그 화가는 붉은 색으로 대나무를 아주 멋지게 그린 것입니다. 그 사람은 너무 훌륭한 그림 솜씨에 넋을 잃고 있다가 문득 대나무를 붉은 색으로 그린 것을 알아차리고 “색이 틀렸습니다. 붉은 색으로 대나무를 그리다니요.”하고 힐난을 하니 그 화가가 “선생님은 어떤 색으로 그리시겠습니까?”하고 묻더랍니다. 그 주인은 “물론 검은 색으로 그려야지요.”하였지요 그러자 화가가 “검은 대나무를 본적이 있습니까?”하고 묻고는 가더랍니다. 강릉 오죽헌(烏竹軒)에는 검은 대나무가 있지만 아주 검은 것은 아니랍니다. 대나무 줄기가 약간 검을 뿐이지요. 묵죽(墨竹)과 주죽(朱竹)의 차이는 사실 관념의 차이로 어떤 사람이든지 남의 잘못을 지적해줄 때 아마도 자신 안의 틀린 관념으로 남을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내가 가진 어떤 생각이 정답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을 함부로 하고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운 것이 판단과 충고입니다.
붉은 물감으로 대나무를 그렸다고 잘못되고 검은 먹으로 대나무를 그렸다고 잘 그린 것이라는 하는 것은 우리의 관념에 따른 판단입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달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성호경을 그린다고 모두 참 크리스천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준 분은 모세가 아닌 것처럼, 성경이 죽은 문자가 아닌 것처럼, 예언자들의 말이 그들의 말이 아닌 것처럼,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것들을 진실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며, 그 것을 가지고 세상을 모두 안다고 할 수 없으며, 조금 알고 있는 내 지식으로 주님의 말씀을 전부 깨달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제 혼자 빛을 발할 수 없지만 밝게 비추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내려 주시는 빵의 그 실체는 우리의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깨닫고 알고 있습니다. 그 하느님께서 생명의 양식으로 하늘에서 내려오신다는 사실을 성령을 받아서 우리는 겨우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분이 모세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빵으로 오신 하느님을 세상의 빵으로만 알아듣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나무라거나 비웃을 처지가 아닌 것이 바로 우리의 실체랍니다. 우리도 빵으로 오신 주님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해할 수 없지만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신비가 그 안에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세상 사람들의 빵이 되어 으깨지고 쪼개져서 언제나 우리에게 오신다는 사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사건이고 그 양식을 받아먹는 우리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매일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말하고 그렇게 조릅니다. 그러나 ‘하던 짓도 멍석을 깔아놓으면 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피정을 받고 기도를 하거나 성경을 묵상하면 곧 우리는 결심합니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영성체를 하겠다고 큰소리를 칩니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태산이 떠나갈 듯 요동을 치더니 튀어나온 것은 쥐 한 마리뿐이었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매일 그렇게 하느님께 그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는 빵을 달라고 조르고 매년 부활성야에 세례 갱신을 하면서도 세례 때의 약속을 잊고 살기도 합니다. 피정을 받을 때마다 아주 큰 소리를 치면서도 한 달도 못가서 모두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매 순간 우리에게 오셔도 우리는 외면하여서 그분을 쓸쓸히 되돌아가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언제나 외톨이로 계신답니다. 나의 결심이 아무리 커도 실행을 못하고 있는 자신을 다시 살펴봅니다. 신앙은 장난이 아니라는 말을 자주 하면서도 신앙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세상의 위신이나 체면에 더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자신이 참으로 답답하답니다.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게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데도 말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7,51─8,1ㄱ
그 무렵 스테파노가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말하였다.
51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조상들과 똑같습니다.
52 예언자들 가운데 여러분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의로우신 분께서 오시리라고 예고한 이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그 의로우신 분을 배신하고 죽였습니다.
53 여러분은 천사들의 지시에 따라 율법을 받고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54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스테파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스테파노는 이 말을 하고 잠들었다.
8,1 사울은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
축일4월 16일 성 베네딕토 요셉 라브르 (Benedict Joseph Labre)
신분 : 평신도, 증거자
활동 연도 : 1748-1783년
같은 이름 : 베네데토, 베네딕도, 베네딕또, 베네딕뚜스, 베네딕투스, 베네딕트, 분도,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성 베네딕투스 요셉 라브르(Benedictus Josephus Labre, 또는 베네딕토)는 부유한 상인의 15자녀 가운데 맏이로 불로네 근교에서 태어났다. 1770-1776년 사이에 그는 수차에 걸쳐 수도회에 입회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너무도 신중하다는 이유로 또 건강상의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결국 수도성소가 자신의 길이 아니라 생각한 그는 로마(Roma) 순례 길에 나섰는데 맨발로 구걸하면서 기도 중에 걸어갔다. 그로부터 3-4년 동안 그는 서유럽의 성지 이곳저곳을 순례했는데, 이탈리아의 로레토(Loreto), 아시시(Assisi) 그리고 바리(Bari), 스위스의 아인지델른(Einsiedeln), 프랑스의 파레르모니알(Paray-le-Monial),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등지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무소유를 실천한 순례자로서 어디를 가나 항상 맨발로 여행하며 노천이나 추녀 밑에서 밤을 새웠다. 누더기 옷을 입고 더러운 몸으로 문전걸식 하면서도 약간의 돈이라도 얻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는 말 수가 적은 대신 기도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다른 사람들의 냉대마저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1774년부터 로마에 머물던 그는 낮에는 성당에서 기도와 성체조배를 하고, 밤에는 콜로세움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건강을 많이 해치게 되었다. 결국 그는 1783년 성주간 수요일에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한 뒤 허물어지듯 쓰러진 후 어느 푸주한의 집에서 임종을 맞았다.
로마 사람들은 이 '새로운 프란치스코 성인'의 높은 성덕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다. 40시간 성체조배 신심의 전파자이기도 했던 그는 1860년 복자품에 올랐고, 1881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면서 노숙인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또한 성 베네딕투스 요셉 라브르는 서방 교회보다 동방 교회에 더 많이 알려진 수덕적인 성소를 받은 성인이다. 그는 항상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보’가 된 그리스의 살로이와 러시아의 유로디비에 견줄만한 위대한 성덕을 쌓았다고 평가된다.
오늘 축일을 맞은 베네딕토 요셉 라브르 (Benedict Joseph Labre)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