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요일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1-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22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자,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좀 더 재미있게 살 걸
나는 어려서부터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큰아들로 살아야 했습니다. 아주 가난하게 살면서 동생들을 돌봐야 하고 가정을 꾸려가야 하는 많은 날을 살아야 했기 때문에 가슴에 응어리진 것이 유난히 많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노는 것은 사치로 생각하고 술을 먹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은 나에게 합당한 것이 아니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에 온전히 몰두해야 한다고 철저하게 무장한 사람으로 공부하고 일하는 것만 올바른 길이라고 고집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의 결혼 생활은 완전히 엉망이었습니다. 아내는 가정을 돌보는 데 헌신적이었고, 40년이 넘도록 학교에 근무하면서 우리 집안을 이끌고 나갔습니다.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그 삶에 지쳐서 이제는 나가떨어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아이들을 따뜻하게 돌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과 소풍을 가거나 놀러간 것은 정말 아주 큰 행사였고, 정말 허둥대며 힘겹게 살았습니다.
내 머리 속에 가득 찬 이런 경직된 삶에 대하여 나는 지금 많은 후회를 하면서 나이가 먹은 다음에야 철이 드는지 지금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기쁘게 사는 것인가? 즐겁고 행복하고 재미있게 사는 것인가? 내가 지금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사실 고민할 것까지는 없다고 하는데 그 문제가 자주 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또한 불행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즐기며 살지 못한 것은 언제나 반성이 되어서 나는 후배들을 만나면 충고하기를 무조건 즐겁고 기쁘게 살라고 말하면 함부로 처신하고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즐기라는 말로 알아듣는 사람도 있는데 얼른 정정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즐기며 기쁘게 살며, 감사하고, 행복하게 살려고 애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논어의 '용야편'에 공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지자 부지호지자; 호지자, 불여낙지자” 知之者 不知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올바른 것을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은 못하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올바른 것이란 반드시 도(道)를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가정생활도 부부생활이나 학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 공부를 잘합니다. 학교에서 억지로 붙잡고 있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무로 사는 삶이 아니라 사람이나 일을 좋아하며, 그 삶이나 일을 즐기라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좋아하고, 예수님과 같이 삶을 즐기는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신 분이어서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주님께 말씀드리고, 애기가 엄마 품에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것처럼 그렇게 그 안에서 즐기며 사는 것입니다. 그동안 올바른 것이라고 아는 것으로 흡족해 하고, 알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나이를 먹고 지난날을 살펴보면서 이제라도 재미있게 살고자 하여도 그게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 와서 모든 일을 좋아하고, 즐기면서 살려고 해도 이미 몸에 굳어져버린 내 삶을 하루아침에 고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려서 고깃국을 먹으면 꼭 설사를 했는데 기름기를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여 생긴 증상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에서야 하지 않던 것을 억지로 하면 다들 이상해합니다. 말도 그렇게 하면 닭살이 돋는다고 합니다.
노래방에라도 가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를 때 잘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운 도둑질’이라고 하였다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나는 항상 학교에서 살았으니 언제나 ‘선생의 티’를 벗어나질 못합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나를 만나는 사람들도 나를 보고 혹시 ‘목사님이 아니냐?’! 고 묻거나 ‘학교 선생님 같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정말 재미있게 살고, 즐기며 살고, 좋아하며 사는 것도 어려서부터, 젊어서 그렇게 살아야 한답니다. 지금 학교에서나 어른들이 아이들을 재미있게 가르치고, 아이들의 적성을 찾아서 개발하고, 즐기며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교회에서도 그렇게 가르치는 것을 보면서 참 현명한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학교에서나 학원에 묶어두고 공부라는 사슬에 묶어두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닌 것처럼 교회에서도 교회의 틀에 묶어두고, 그 틀 안에서 꼼짝도 못하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본래의 뜻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감히 해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면 자동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켜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같이 함으로써 자연적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해서 주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자가 말한 대로 주님을 올바로 아는 것보다 주님을 좋아하고, 하느님 아버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주님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즐기는 사람은 하느님 품안이 즐겁고 편안하고, 안락해서 그 안에서 마냥 기쁘고, 행복해서 나도 모르게 찬송하고 찬미하며, 나도 모르게 기뻐 용약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즐길 수 있으려면 주님께서 보내 주시는 성령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내 삶을 완전히 바꿔주실 성령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여 여러분이 헛된 것들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4,5-18 그 무렵 이코니온에서는 5 다른 민족 사람들과 유다인들이 저희 지도자들과 더불어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괴롭히고 또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하였다. 6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일을 알아채고 리카오니아 지방의 도시 리스트라와 데르베와 그 근방으로 피해 갔다. 7 그들은 거기에서도 복음을 전하였다. 8 리스트라에는 두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앉은뱅이로 태어나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었다. 9 그가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 있었는데, 그를 유심히 바라본 바오로가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알고, 10 “두 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 하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러자 그가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다. 11 군중은 바오로가 한 일을 보고 리카오니아 말로 목소리를 높여, “신들이 사람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2 그들은 바르나바를 제우스라 부르고 바오로를 헤르메스라 불렀는데, 바오로가 주로 말하였기 때문이다. 13 도시 앞에 있는 제우스 신전의 사제는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문으로 가지고 와서, 군중과 함께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 14 바르나바와 바오로 두 사도는 그 말을 듣고서 자기들의 옷을 찢고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소리를 지르며 15 말하였다. “여러분,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16 지난날에는 하느님께서 다른 모든 민족들이 제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17 그러면서도 좋은 일을 해 주셨으니,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곧 하늘에서 비와 열매 맺는 절기를 내려 주시고 여러분을 양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18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군중이 자기들에게 제물을 바치지 못하도록 겨우 말렸다.
축일4월 29일 성녀 가타리나 (Catherine)
신분 : 수녀, 교회학자, 신비가 활동 지역 : 시에나(Siena) 활동 연도 : 1347-1380년 같은 이름 :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성녀 카타리나 베닌카사(Catharina Benincasa, 또는 가타리나)는 시에나의 한 염색업자의 25명의 자녀 가운데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생기발랄하고 상냥한 성격을 지녔으며, 아버지가 항상 점잖게 굴라고 하는 말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과 6살의 어린 나이에 자신의 생애를 미리 보는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 그녀는 부모가 자신을 결혼시키려는 모든 노력에 반항하고, 오로지 기도와 단식에만 전념하였다.
그녀는 16세 되던 해에 도미니코 3회원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그리스도, 마리아, 성인들에 대한 환시는 더욱 잦아졌고, 동시에 악마적인 환시도 종종 일어났다고 한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특히 나병환자와 같은 절망적인 병을 앓는 환자들을 간호하는 일을 즐겨하였다. 그녀가 받은 초자연적인 선물들로 인해 열렬한 지지자들이 지나치게 열광하였기 때문에, 그녀가 혹시 협잡꾼이 아닌가 하여 고발됨에 따라 도미니코회의 총회 석상에까지 출두한 일도 있었다. 그 당시 카푸아(Capua)의 복자 라이문두스(Raymundus, 10월 5일)가 그녀의 고해신부로 임명되었으나 곧 그녀의 영적 친구가 되었고, 후일에는 그녀의 전기 작가가 되었다.
시에나로 돌아온 성녀 카타리나는 페스트로 황량해진 도시에서 주민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였고, 선고받은 죄수들을 찾아 돌봤으며, 평화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분쟁을 해결하였다. 그녀는 터키인에 대항하고자 십자군을 모집하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Gregorius XI)를 적극 지원하였고, 1375년 피사를 방문하는 도중에 오상 성흔을 받았다. 그런데 이 오상은 생전에는 잘 볼 수 없었는데, 임종할 즈음에는 확연히 드러났다고 한다. 그녀는 피렌체(Firenze)와 로마(Roma)의 그레고리우스 교황 간의 불화를 중재하는 데에는 실패하지만, 아비뇽(Avignon)의 교황좌가 1376년에 로마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 후로는 자신의 신비적인 체험들을 기록하는 일에 전념하여 “대화”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1378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가 서거하고 우르바누스 6세(Urbanus VI)가 교황으로 선출되자, 이를 반대하는 일단의 추기경들이 스위스 제네바(Geneva)의 로베르투스(Robertus)를 대립교황(클레멘스 7세)으로 선출하는 사건이 발생해 교회에 큰 분열이 일어났다. 이처럼 혼란한 시기에 성녀 카타리나는 단호히 우르바누스 6세 교황을 지지함으로써 분열을 종식시키고 교황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고행과 희생으로 인해 극도로 쇠약해진 그녀는 결국 1380년 4월 29일 33세의 젊은 나이에 로마에서 숨을 거두었다.
성녀 카타리나는 그리스도교의 신비가 중에서도 대가에 속한다. 그녀는 “대화” 외에도 400여 통의 서한들을 남겼다. 그녀는 1461년 교황 비오 2세(PIus II)에 의해 시성되었고, 1939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으며, 1970년 10월 3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1999년 10월 1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를 누르시아(Nursia)의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7월 11일), 성 메토디우스(Methodius, 2월 14일)와 성 키릴루스(Cyrillus, 2월 14일) 형제, 스웨덴의 성녀 비르지타(Birgitta, 7월 23일), 십자가의 성녀 테레사 베네딕타(Teresia Benedicta, 에디트 슈타인 Edith Stein, 8월 9일)와 함께 유럽의 여섯 수호성인 중 한 명으로 지명하였다.♧
오늘 축일을 맞은 가타리나 (Catherine)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