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26─16,4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16,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3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4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느님 공부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욕심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어려서 정말 가난하였지만 부모님은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싶어 하셨지만 학비를 대줄 수 없는 가난 속에서 학교를 가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엄청난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공부가 정말 하고 싶었고, 공부하는 것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그렇게 살았습니다. 세상에 공부가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난이 더 악착 같이 공부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또 어떤 것에 자신이 있는지 자문해보면 사실 아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조금 알고 있다고 뽐내고 으스대지만 그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랍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답답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혼자서 모든 일이 겹치고 힘들어 하늘을 쳐다보고 원망도하고, 억지로 떼도 쓰고, 말이라도 시원하게 해보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책임을 맡으면 사람들에게 말 할 수도 없는 것들이 가슴에 가득 차 있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많은 것들이 가슴에 뭉쳐있어 술이라도 취해서 정신을 놓고 그냥 쉬고 싶은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할 때가 많이 있기도 하지요. 이럴 때 누군가 내 옆에서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을 찾기도 합니다.
무서운 일을 만나도 두려운 것이 있어도, 힘들어도 누군가 나를 도와주고 보살펴 줄 보호자를 찾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나를 지켜주고 다독거려주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너무도 지쳐 주저앉아 있을 때 나를 붙잡아 줄 그런 보호자를 아직도 찾고 있고, 아직도 갖고 싶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그런 보호자를 보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보내주실 보호자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나오시는 분이이시니 아버지와 본질적으로 같다는 말입니다. '콩 심은 데서 콩 나고, 팥 심은 데서 팥 나온다.'는 말처럼 본질적으로 같은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하느님께서 창조하셨으니 하느님에 의해서 존재하고, 성령은 하느님 자체이시니 하느님께서 발(發)하시는 영(靈)이시라는 말입니다. 본질적인 것에서 생겨나는 것을 발(發)한다고 말합니다. 불이 존재하는데 불이 붙으면 발화(發火)라고 하고, 복이 있는데 그 복이 커지는 것을 발복(發福)이라고 합니다. 성령은 하느님 안에서 나오는 존재, 터져 나오는 존재이시기 때문에 나오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제자들이 믿음과 진리에 너무 빈약하기 때문에 보호자가 필요하고, 진리의 성령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로 믿음이 부족하고, 주님을 증언하려는 용기가 부족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머리와 귀와 눈이 막혀져 있기 때문에 이를 알아듣는 머리와 귀와 눈이 되시는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을 받아야 주님을 증언하는 참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으며,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성령을 받아 세례를 받았으니 처음부터 주님과 같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을 증언할 수 있는 신분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증언하면서 살고 있나요? 항상 마음에 걸리는 것이 주님을 증언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그렇게 뽐내며, 그렇게 큰소리치며, 그렇게 배만 불뚝이며, 자신만만하게 살고 있답니다. 바로 우리들에게 진리의 성령이 매 순간 다시 오셔야 합니다. 오셔서 주님을 증언토록 인도해 주셔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6, 1-4)
주님께서 걱정하시는 것은 우리가 포도나무의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처럼 주님께 붙어있지 못하고 잘려나가서 불에 태워질까(?) 걱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력한 접착제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이웃과 하나 되게 하시고, 하느님과 붙여 주셔서 서로 하나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무르며, 당신의 품 안에서 모든 어려움을 막아 주시고, 평화와 축복으로 행복해 지기를 간절히 소망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유혹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우리들을 건져주시며, 당신의 사랑으로 모두 깨끗이 씻어 주시어 우리가 깨끗하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그리스도를 박해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헤로데와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처럼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으며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상처내고 십자가에 지금도 다시 못 박고 있으면서도 주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줄 알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 복음 묵상을 보면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한다고 하는 우리도 사실은 주님을 매일 못 박으며,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주님을 위해서 봉사한다고 말합니다. 교회에서 봉사한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교만함 이면에는 주님을 알지 못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가장 잘 사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이 있답니다. 이렇게 거짓 봉사자의 모습이 바로 '격화소양'(隔靴搔痒:신 신고 발바닥 긁기)의 형국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다음에 후회해도 이미 늦었답니다. 일을 저질러 놓은 다음에서야 십자가에 주님을 못 박은 다음에서야 크게 뉘우치면서 가슴을 치면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답니다. "너희는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6,11-15
11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
12 거기에서 또 필리피로 갔는데, 그곳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로 로마 식민시였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13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14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15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축일5월 6일 성 에보디오 (Evodius)
신분 : 베드로의 제자, 주교
활동 지역 : 안티오키아(Antiochia)
활동 연도 : +67년경
같은 이름 : 에보디우스
예수님의 72명의 제자 중 한 사람이다. 전승에 따르면 성 에보디우스(또는 에보디오)는 사제로 서품되었고, 사도들 중의 어느 한 명으로부터 안티오키아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아마도 그 사도는 베드로(Petrus)인 듯하다. 성 에보디우스는 '그리스도인'이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인물로 믿어진다.
오늘 축일을 맞은 에보디오 (Evodius)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