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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륙도 하지 못하고...
하늘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라고 하지만 인간이 어찌 그리 만만한 존재인가?
불가능과 무모함으로 안 될 줄 알면서도 달려드는 짐승이 아니던가? 덜컹거리는 하네스에서 쪼그라드는 심장을 부여 잡으면서도 조금만 더 높이, 더 멀리 가려고 하는가?
그렇다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왜 그리 올라가려고 하는가. 네발로 기어다니다 두발로 걸어다니면 만족을 알아야 하는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꼬리뼈가 퇴화한 사실조차도 잊어 버렸다.
오히려 어깨쭉지 밑에 날개가 있는 줄 알고 하늘에 겁도 없이 대든다.
미친놈들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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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6일 현충일.
선국선열을 기리며 조신히 지내야 하는 날이다.
룸상롱 언니들이 유일하게 쉬는 날이 현충일인 오늘인데, 나는 글라이더를 타러 출발한다. 하필 오늘부터 4일 연휴라서 양평으로 가는 길이 차들로 꽉 막혀있다. 평소보다 좀 일찍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출발시간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사이버형과 주응이 형은 결국 출발시간까지 도착하지 못했다. 태명이 형이 조금 기다렸다가 스타렉스로 같이 올라오기로 하고 나머지는 포터에 모두 탔다.
사람이 많아 나와 4명은 적재함에 글라이더와 같이 올라타고 시원한 바람 맞으며 놀러가는 많은 차량 흐름에 몸을 맡긴다. 6번 국도는 어마어마한 차량행렬이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팔당역 근처에 갔을 때 평소에 없던 경찰관이 도로 통제를 한다. 비상상황이다. 적재함에 탄 5명은 몸을 빠짝 엎드린다. 나는 하나의 물건이다라는 마음으로....
다행히 경찰관은 주행선의 차보다는 진입로의 차량 통제에 바빠서 우리를 보지 못했다.
동국대 예봉산 관리사무소에 비행 확인서를 제출하고 임도 출입문을 연다.
임도를 따라 우리의 차량은 덜컹거리며 올라간다. 이때가 적재함에 탄 것의 묘미를 제대로 느끼는 때다. 겨우내 앙상했던 나뭇가지가 어느새 연녹색에서 진녹색으로 변해있고 길가에는 금계국과 개망초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가끔 길가까지 축 처진 나뭇가지가 상념에 빠진 나의 얼굴을 때리긴 하지만 산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정상에 도착할 때 쯤이면 제일 먼저하는 일이 있다. 줄에 메달아 놓은 윈드색을 보기위해 목을 길게 늘어 뜨리는 것이 그것이다. 정풍인지, 바람이 센지, 약한지, 오늘 비행은 어떨지를 윈드색을 보면서 희망을 그린다.
무풍이다.
오늘 윈디에서는 남풍예보가 있었지만 그래도 정풍이기를 바랬는데 기대와는 상관없이 윈드색은 축 처져 자기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어쩔수 없이 전방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전방이륙은 싫은데......쫌 기다려 볼까’
‘이런 날씨면 조금 있으면 배풍이 올건데....어쩌지....’
더미가 전방이륙하여 나간다.
나는 계기와 바리오를 키고 하네스를 착용하며 하늘을 본다. 구름이 하늘 이곳 저곳에 피고 있는 중이고 써멀이 군데군데 있어 보인다.
‘그래 더 기다리다가는 써멀 놓친다. 오늘은 두시간 이상 비행해보자. 그럴려면 지금 이륙해야한다’
산줄을 모아 기체를 들고 슬금슬금 걸어가 이륙위치에 기체를 내려 놓는다.
“오늘은 무풍이니 에이라이저 두 개 다 잡아라”
“써멀 잡는 거 보여줘 봐”
성수형이 이륙을 도와준다. 그리고 몇 명은 기체를 펴주고 누군가는 꼬여있는 산줄을 풀어준다. 고마운 일인데도 불구하고 이젠 당연히 여긴다. 같이 비행하는 동호인이니 그래야만 하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다.
전방이륙 자세를 취하고 앞을 한번 보고 달려나간다. 기체가 잘 올라온다. 라이저를 놓고 브레이크를 잡아 머리위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해야 하는데 라이저를 한번 더 당긴다. 그리고는 달려나간다. 뛰는 속도가 늦었음을 느낀다.
‘에라 모르겠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던진다. 이륙장 경사가 있어 왠만해서는 살려주는데....
‘어...어...이상하다.....’ 땅바닥이 얼굴과 멀어지지 않는다. 발에 뭔가 걸린다.
바닥의 풀들이 너무 잘 보인다.
“쿵....”
바닥에 몸이 부딛친다. 구른다. 기체를 보니 잘 펴져있다. 내 몸은 바닥에 붙어 끌려간다. 경사면을 따라 몇 번 구르다가 등쪽에 큰 충격을 느낀다.
‘에이 시팔...이건 좆됐다.....’
몇 번의 충격 후 나뭇가지에 걸려 기체도 멈추고 나는 바닥에 처 박혀 메달려 있다.
근데 몸이 이상하다.
말이 나오지 않는다. 등쪽이 아프다.
숨이 가쁘고 가슴이 아린다.
“선배 괜찮아요?
‘저건 지숙이의 목소리인데’
‘아퍼...쫌 도와줘’라고 말은 하지만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대답이 없어요. 다친 모양입니다. 빨리 내려가 보자”
누구인지 모를 목소리가 반갑다. 식은땀이 난다.
하네스의 버클을 풀 힘도 없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왔다. 누구인지 분간이 안된다.
‘고맙습니다’라고 말은 하지만 나오지 않는다.
“야..손잡아”
“하네스 풀어”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다. 눈을 들어 보니 임표형이다.
“내 손잡고 올라가자”
‘말이 안 나옵니다’
“일단 올라가자”
어찌어찌 하네스를 풀고 임표형 손을 잡고 한발을 뗀다.
나머지 사람들이 기체 회수하는 것을 볼 힘도 없다.
이륙장에 깔아놓은 그물망을 밟고 어찌어찌 올라온다.
숨은 가빠오고 식은땀은 계속나고 ...
“일단 앉아서 좀 쉬어”
“가슴쪽이 아파 앉는 것도 힘들어요”
이제서야 겨우 말이 나온다.
누구와 얘기하는 줄도 모르겠고 난 내 얘기만 한다.
“우선 병원으로 데려가”
스타렉스에 올라타는 것도 힘들다.
“핸드폰이 하네스에 있는데.....”
“핸드폰은 가져가야 해. 좀만 기다려”
태명이형과 내가 탄 스타렉스는 거의 빈차 상태로 경사심한 내리막을 내려가다 보니 조그마한 돌맹이에도 덜컹거린다. 한번씩 흔들리면 숨이 막히며 예리한 막대기로 내장을 쑤시는 거 같이 아프다.
“태명이 형. 좀 천천히...”
“조금만 참아봐”
적재함에 타서 올라올 때 그렇게 아름답게 보았던 금계국이 이젠 장애물로 보인다. 길이 멀다. 경사가 약해진 길에 진입하니 조금 살거 같다.
“오늘 차량이 많아 구리병원까지 갈려면 아마도 한시간 이상 걸릴건데. 그때까지 견딜 수 있겠냐?”
태명이 형이 내 안색을 보며 물어본다. 식은땀을 많이 흘리고 있다.
“119 부를까? 그것이 빠를거 같은데”
아픈 와중에도 가만히 생각해 본다. 단순히 통증만 있으면 어떻게든 참겠는데 숨 쉬는 것이 불편하다.
갑자기 악화되면.... 덜컥 겁이난다.
숨 못쉬면 죽는 거잖아.
사고 순간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도 깊은 호흡이 되지 않는다. 거저 얕은 호흡만 가능하다. 억지로 깊게 숨을 들이마시면 찢어지는 통증이 있다.
“형. 119 부르시죠”
태명이 형이 운전하면서 119에 전화건다.
“산에서 다친 사람 데려가는데 숨을 잘 못 쉽니다. 예... 운길산역으로 오세요... 아. 차량이 없나요? 그러면 덕소쪽으로 갈까요. 예....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태명이 형은
“사고가 많은 가 보다. 119 차가 없어서 좀 기다려야 한단다.”
3부쯤 내려오니 전화가 온다. 119와 태명이 형이 한참을 통화하더니 운길산역에서 만나기로 했단다.
임도를 벗어나 차량이 아스팔트길을 주행하니 아픔도 조금 덜하다. 운길산역에 도착하니 119가 없다.
“좀 기다려야 하나. 일단 비상깜빡이 켜고 좀 기다려 보자”
느낌상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119가 온다. 태명이 형이 손짓으로 차를 우리쪽으로 부른다.
허리를 숙이고 엉거주춤 119 차량에 오르려고 하니
“아버님. 어디 아프세요?”
우씨. 뭐 아버님.
아무리 볼품없어도 아버님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닌데. 아픈거보다 더 빈정 상한다.
대답을 하지 말아 버릴까?
“숨이 잘 쉬어 집니다.” 말도 헛 나온다.
“숨 쉬는 것이 힘듭니다. 가슴이 막 찌르는 거 같고......”
최대한 아픈 표정을 지으며 구급대원에게 대답했다.
“입으로 호흡하지 마시고 코로 호흡하세요. 하나 둘...예...잘 하시네요...”
구급대원 시키는 대로 코로 호흡하니 훨씬 편해진다.
헬멧을 쓰고 고글 착용한 구급대원의 예쁜 얼굴도 보인다. 저런 예쁜 아가씨가 나에게 아버님이라니......당장 염색을 해야지...
“성함이 뭐예요?”
이름부터 묻기 시작해서 생년월일, 주소, 사고 위치, 다친 경위 등 꼬치꼬치 묻는다.
“길이 막혀 양평으로 갈 겁니다.”
구리병원으로 가야하는데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빨리 병원에 데려 다 주기만을 바랄뿐.
양평병원 응급실 문을 열고 119 구급대원과 같이 들어서니 의료진이 다가온다.
나에게 아버님이라고 한 예쁜 여자 119 구급대원이 의료진에게 나의 나이, 사고경위와 바이탈이 어쩌고 저쩌고 전해준다.
의사 앞으로 가자 당장 CT 찍어라는 오더를 내린다. CT를 찍고 응급실에 다시 오니 구급대원은 가고 없다.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는데......
CT 결과는 금방나왔다.
의사는 표정의 변화없이
“갈비 3,4,5번 나갔고요. 기흉이 보입니다.”
“예. 뭐라고요”
고거 넘어졌다고 갈비가 3대나 부러진다고.
“왼쪽 가슴 갈비 3번, 4번. 5번 부러졌고요. 부러지면서 폐를 찔러 폐에 공기가 차 있는 상태입니다. 이걸 기흉이라고 하는데요. 그렇게 심각한 상태는 아닙니다.”
CT사진을 보여 주면서 의사는 설명이라고 하면서,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니.
아퍼 죽겠는데. 숨도 잘 안쉬어 지는데 뭐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고.
돌팔이 같은 놈 아닌가.
“아. 예..”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이 나온다
“구리쪽 병원 알아봐 줄께요. 저쪽에 있는 침대에 가서 기다리세요”
오늘은 연휴라 전문의가 없어 여기서는 치료가 안 되어 흉부외과가 있는 구리병원을 알아 봐 준단다.
숨을 못 쉬어 어찌될까 내심 걱정을 했었는데 어쨌거나 병원에 오니 안심이 된다.
응급실 베드에 앉아 연계병원을 기다리며 멀뚱히 1시간 정도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지며 주위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 입원이 필요할텐데.... 출근은 어떻하지? 사무실에는 뭐라고하지?’
‘와이프는 비행 못하게 할텐테...’
‘와...오늘 재수없네...’
‘병원비는 얼마나 나올까? 실비보험에 사고 특약을 없앴는데....’
‘수술은 필요없겠지’
‘내가 왜 사고가 났지’
사고 순간을 생각하니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의도적으로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우스운 생각도 들고 쪽팔린다는 생각도 들고 왜 그랬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기분만 자꾸 더러워지는 거 같아 치료생각만 하기로 한다.
바쁘게 움직이던 의사가 전화를 받은 후 내 베드로 와서
“내일 구리병원 외래로 흉부외과 접수하여 진료 받으세요.”
“소견서와 CT영상 받아가시면 됩니다”
참으로 간단명료하다.
응급실에 의사가 혼자 있어 바쁜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의사들은 환자에게 제발 자세하게 설명 좀 해주라.
숨 쉬는 게 불편한 이유가 뭔지. 내일 진료 전 까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지금도 아픈데 약은 왜 안 주는지. 아 쫌 설명 해주면 안되나.
지나가는 간호사에게 답답한 거 물어보고 성웅이 형에게 전화걸어 현 상황 설명하고 차를 요청했다.
조금 후 윤묵이 형이 전화와서 내 차를 몰고 오는 중이라고 한다.
고맙다. 윤묵이 형은 곰처럼 생겼는데 행동도 곰처럼 한다. 우직하니 듬직하다.
존재 자체가 믿음을 주는 사람이다.
윤묵이 형의 운전도움으로 양평에서 구리에 있는 집에 왔다
방에 누우니 아픔의 강도가 점점 세진다.
아들에게 진통제 사 오게 하여 한 알 먹었지만 도저히 안 되어 한 알 더 먹었다. 등쪽이 아프니 눕는 것도 편하지 않다. 거의 앉은 자세로 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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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깨다를 반복했다. 시간은 왜 그리 안 가는지.
8시 30분부터 외래접수를 한다고 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진료받을 욕심에 8시에 병원 도착하였다. 그렇치만 9시 30분이 지나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이런거 보면 의사를 많이 뽑는 게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전공의가 없으니 의사가 더 귀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여기 까맣게 보이는 부분이 공기가 차 있는 부분인데 왼쪽 폐 위쪽입니다. 이게 반 정도 크기이면 튜브를 넣어 강제적으로 빼내는 것을 고민해야 하는데 이정도면 괜찮을 거 같아요. 일단 입원하여 사오일 경과 지켜 보면서 치료할께요.”
“아. 예.... 그리고 뼈 부러진게 많이 아픈데요”
“갈비뼈 여기 어긋난거 보이죠. 이건 붙을 때까지 있어야 합니다. 갈비라서 달리 방법이 없어요. 뼈 부러졌으니 당연 아픕니다. 진통제 처방도 있습니다.”
의사들은 재수없게 말하는 교육을 받는지 처음에는 설명 잘 하다가도 꼭 이런다.
부러졌으니 아프다고..
그럼 아프니깐 안 아프게 해달라는 소리인 줄 정말 모르나.
의사들은 머리도 좋으면서 행간의 뜻을 그렇게 이해 못하나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가.
어제 구급대원에게 아버님 소리도 들은 이 몸인데....
그래도 내몸을 맡길 사람은 의사뿐이다. 마음에 안 들어도 말을 잘 들어야지 어쩌겠는가.
“예 고맙습니다”
그런데 당장 입원을 받아주는 것이 아니었다. 오후 3시에 입원수속 받으란다.
와..씨.... 아퍼 죽겠는데...
병실에서 치료는 없다. 산소 호흡기와 가슴 보호대가 전부이다.
밥 먹고나면 진통제 주고 수액을 달아준다.
산소포화도도 96% 나오는데 왜 산소호흡기를 주는지 설명도 없다. 수액은 또 왜 다는지. 수액 링거줄이 없으면 환자처럼 보이지 않으니 환자처럼 보이게 할려고 일부러 그러는거 같기도 하다. 나 같은 환자만 있으면 간호사도 필요 없을 거다.
그리고보면 나도 잊을만하면 입원을 하는 거 같다. 역순으로 기억해 보면 4년전 패러 착륙하다 척추 압박골절로 2주간 입원했고, 그 전에는 디스크 수술로 입원을 했던 것 같다. 독감으로 2~3일 입원한 적도 있고 아버지 병간호로 1주일 넘게 병실에 있었던 적도 있다.
별다른 치료없이 병실에 있으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난다. 내 앞의 아저씨는 식도암 환자인데 밤에는 끙끙 앓으면서 잠도 못자는 상태다. 나이도 이제 63세인데...... 2기 상태에서 발견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 옆의 아저씨는 디스크가 심해 며칠 후 수술한다고 대기 중인 환자이다. 나머지 두 분은 커튼으로 꼭 막아놓고 있다. 간호를 마누라가 해 주니 그런 모양이다.
갑갑한 병실 생활이다. 토요일 새벽시간에 엑스레이 찍었고, 일요일에는 유투버만 신나게 보고 월요일을 맞는다. 월요일 새벽에 엑스레이 또 찍었다.
드디어 의사 회진하는 시간이다. 금요일 입원을 하고 토요일 일요일이어서 의사를 못 만났으니 궁금한 것 다 물어보아야지.
입원 후 처음 의사를 만난다. 의사 만나는 일이 이렇게 반가울 일인가.
의료대란 시대라서 그런가. 헷갈릴 정도다.
“엑스레이 확인 했는데, 내일 퇴원하세요”
회진와서 의사가 하는 첫마디이다.
“아....그래요....”
이 의사는 아마도 사업을 했어도 잘 했을거다.
상대방의 의중을 확 찌르는데 일가견이 있다.
퇴원하라는 소리에 물어볼 것도 설명해 달라는 것도 다 잊어 버렸다.
“선생님 수고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찌질하게도 내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그날 밤. 병실에 누워 내가 왜 병실에 있는지 생각해 본다. 그래도 며칠 지났고 내일 퇴원한다고 하니 조금은 차분해 지는 기분이다. 처음에는 화만 났고 생각하기도 싫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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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전방이륙이 후방이륙보다 어렵게 느껴진다. 어깨에 전해지는 라이져의 무게를 느낄 수 없고 한쪽이 기울어졌다는 사실도 뒤에서 얘기해주지 않으면 잘 알지 못한다.
한때는 전방이륙을 잘 했었는데..... 저번에도 무풍상태에서 전방이륙하다 처 박았다. 경사가 심해 컨트롤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이륙장 환경 탓도 있지만 이륙준비하여 라이져만 손에 잡으면 바빠진다.
왜 이럴까?
착륙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두발로 예쁘게 내린 기억이 없다. 하네스로 땅바닥을 청소하며 내리고 기체는 앞으로 꼬꾸라지고. 착륙바람이 좋아 모두가 사뿐히 내리는 상태인데도 나만 엉덩이로 내린다. 하네스만 불쌍하고 테이프가 이곳 저곳 덕지덕지 붙어있다.
이륙과 착륙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원인이 뭘까? 긴장을 안해서.....그건 아니다. 이륙장의 썰레임과 긴장감은 항상 있어왔고 예쁘게 예쁘게 내려야지 하는 마음은 내릴 때 마다 했으니까.
공부가 부족한가? 이륙과 착륙의 원리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 횟수만 해도 아마도 천번은 될텐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렇게 이륙과 착륙이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 지금 타고있는 기체로 바뀐 시점부터인거 같다.
패러를 배울 때 사용한 지금은 없어진 에델(edel)의 아트라스와 그 다음 기체인 진(GIN)의 오아시스를 탈 때는 이착륙이 무척 예뻤던 걸로 기억한다. 좁은 학교 운동장에도 내리고 어린이날 행사시 시내 복판에 있는 종합운동장 안에 착륙할 때도 긴장없이 멋있게 착륙하여 박수도 받고 하였는데. 엉덩이 착륙은 더더욱 없었었는데.
기체 속도와 회전, 특히 바람이 좀 쎌 때 정풍받으면 전진이 되지않아 뒤로 밀리는 경험을 하고 난 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지금의 보난자로 바꿨다.
보난자는 나에게 금맥이라는 이름값을 해 주었다. 써멀에서 핸들링, 전진속도, 풋바의 성능 등 전에 타던 오아시스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를 경험시켜 주었다. 산 능선에서 뒤로 밀려도 마음의 부담이 없어졌고 가스트 속에서 자기마음대로 흔들리면서도 써멀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보난자.
진짜 금맥을 찿아 서부로 가는 카우보이가 된 느낌이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이륙과 착륙보다는 써멀, 리사이드 열, 전진속도, 최고고도, 에어타임 등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 넓은 이륙장을 가진 보령에서도 이륙하다 처박고, 하천바닥에 내리기도 하고, 넓은 주차장에 내리면서도 꼭 몇 대없는 주차한 차 위에 내려 차주에게 보상을 해 주기도 하고, 막상 찍을려고 하면 찍지도 못하면서.... 이륙하다 처박고, 착륙할때는 엉덩이로 쭉 깔면서 내리고.....그리하면서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비행 중의 열과 고도, 비행거리, 에어타임에 정신을 잃어서....
지금생각하니 이륙과 착륙이 기본이라는 것을 잊고 비행을 하고 있었다.
비행 후 클럽 마당 벤치에서는 그날 비행의 영웅담을 얘기한다. 모두의 얼굴에는 비행의 아쉬움과 만족감 그리고 사고없는 비행에 대한 안도감이 공존한다.
대개 두세그룹으로 나뉘어 대화가 이루어지는데 이착륙 얘기가 나오면 나는 딴 그룹쪽으로 슬그머니 간다. 그랬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륙과 착륙은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이었다.
바보가 따로 없었다.
주말 아침 글라이더를 타러 나올 때면 아내의 얼굴을 똑바로 처다 보지도 않고 무심한 척 그냥 신발을 신으며 “다녀 올 께”라고만 한다. 혼자만 주말을 즐기러 가는 미안한 마음과 주말시간을 같이 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이다.
말로는 당신도 배워 같이 타러 다니자라고 하지만 막상 배운다고 하면 선뜻 동의를 못할 거 같다. 내가 불안한 마음을 견디지 못할거 같기 때문이다. 글라이더가 쉬운 활동이 아닌 것을 잘 알기에...
운이 좋게도 아내는 밖에서 하는 일보다는 집에서 하는 일을 더 좋아한다. 나에게는 좋은 핑계이기도 하다. 서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니 불만 갖지 말라고 괜한 엄포를 놓기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내는 항상 “조심히 다녀와”라고 말을 한다. 그 말이 그냥 하는 말로 들렸었는데 최근에는 괜시리 신경이 쓰였다.
살아가면서 무당처럼 신기는 없지만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적중될 때가 있다. 최근 이상하게도 몇 년 동안 아무 일 없이 글라이더를 탄 것이 이상하다라고 느껴지고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때도 되었는데라고 느껴졌다.
꼭 집어 뭐라고 말은 못하지만 찝찝한 느낌이 있었다. 회사에서도 만약 내가 일주일이나 이주일 자리를 비우면 어찌될까? 책상을 빼 버리지는 아닐까? 하는 우스운 상상도 하였고...
다친 이유에 대한 각자의 주장과 논리를 클럽 앞 마당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벌어졌을거다. 쫄 비행을 하고도 서너시간 얘기를 하는 우리인데 얼마나 큰 얘깃거리인가? 안 봐도 비디오다.
이륙자세. 견재. 속도. 기체의 능력에 따른 반응. 교육. 연습 등등...
나오는 모든 얘기가 모두 다 옳거나 모두 다 틀리다고도 말을 할 순 없지만 전부 나름의 타당한 이유는 된다.
그 이유에 한가지 더 보태면 괜히 모를 기분도 이제는 포함시키고 싶다.
내 인생경로에서 이번 일이 하나의 액댐이라고 믿고 싶다.
다쳐서 병원에 누워 있으니 안부 전화와 문자가 많이 온다. 걱정이 되고 안타까운 마음에 연락을 하는 것이리라 모두 고맙다. 패러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칠 수 있고 언제나 위험한 행위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조그마한 사고소식에도 귀를 세울 수 밖에 없다. 서로 공감하면서 위로를 나누기 위해서. 그래야 조금이라도 불안감을 없애고 안도감을 가질수 있으니깐.... 나의 이번 사고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은 나의 욕심이고 다만 모든 비행인의 액댐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사고 뒤처리와 구조에 고생을 한 미호형, 병상형, 지숙, 기아자동차 동호인분, 그리고 병원으로 집으로 이동시켜준 태명형, 윤묵형 고맙고 감사합니다. 문자와 안부연락으로 이래저래 힘을 주고 회복을 기원해 준 회장님이하 회원 모두에게 큰 절로 고마움을 표현합니다. 일일이 답변 못 한거 퉁 치려 하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넙죽.
아침에 하도 답답하여 장이 열리는 아파트 주차장에 잠시 나갔다 들어오니
“그 몰골로 어디 나갔다 오냐?” 마누라의 일갈에 합죽이가 되었습니다.
첫댓글 대하소설 읽는 느낌
아픈건 모르겠고
진로를 글 쓰는 쪽으로 잡았어야 했어
본인의 아픈 흑역사일텐데 그것을 다른 비행자들을 위한 교훈으로 글로 옮긴 종수님의 마음에 경의를 표합니다.
역시...
3탄도 기대됨.
하늘을 미치도록 동경하는 울 종수~화이삼!!!!!!!!!
쾌유를 빕니다_()_
눈에 눈물이 고였어요 ㅠㅠ
어여 쾌차하시기 바랍니다~
이런아픈사연이 있었군요 빠른쾌유를기원하며 동병상련의 이품을 상기하는 글이었습니다.~~힘내시게 아우님
글솜씨가 작가수준 이네요 빠른 쾌유를 바랍니다
종수는
직업이 소설가일거야.
아니면
적어도 글쓰는 쟁이인거는 확실해!
하늘산 온 이후 일케 긴글도 첨이지만 넘 실감나고 감동이~~쫌만 참고 빠른 시일내 얼굴 함 보자~^^
빠른 쾌유를 진심으로 빕니다~~~
다행이라고해야하나....그날하루를다본것같은 글입니다...
사고 소식 듣고 바로 안부인사 못 드려서 죄송스럽습니다 형님..부디 빠른 쾌유를 빌며 다시 예봉산의 하늘을 비상하시기를 빌겠습니다.
글솜씨가 보통이아니네
아파누우니 오만잡생각이 다나니
심정이해하내
기왕엎어진물 천천히 쓸어 담아 닦아내는 맘으로 마음달래고
쾌유바라내 곧다시만나기를 바라내
이 정도는 병가지상사일세.액땜했다고 생각하고 어여 툭툭 털고 일어서게.혹자는 사고당한 종수보고 패러는 위험한 취미라고 하겠지.그러면서 그만 접으라고 말할거야.허나 지구촌 안전지대가 어디있는가. 안전한 곳은 어디있나.통계적으로 도로에선 하루 평균 10명씩 죽고...동일본 쓰나미땐 또 얼마나 죽었나.그저 생각대로 마음가는대로 인생 사는거야.넘어지면 일어나고 뿌러지면 붙이면서 말이다...다시 날자.새들처럼~!!
"의사들은 재수없게 말하는 교육을 받는지" 공감백배..ㅋㅋㅋ
빨리 쾌차해서 클럽에서 보세..ㅎㅎ
윤묵이형님은 ...... 곰이다!!!
언넝 쾌차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