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회장님의 카톡에서]
♦️仙問(선문) 仙答(선답)♦️
어느날 계곡이 깊은 산속에서 큰 선바위를 만났다.
수천년을 살아온 선바위가 신선(神仙)에게 묻고 있다.
신선(神仙)께서 인간들을 보실때
가장 어리석은 것이 무엇인지요?
신선(神仙)께서 미소(微笑)로 말씀하셨다.
첫째는,
어린시절엔 어른되기를 갈망(渴望)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다시 어린시절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는 것이 도무지 무얼 모르는 철부지 같다.
둘째는,
돈을 벌기위해서 건강을 잃어버린 다음,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돈을 모두 병원(病院)과 약방(藥房)에 바치고 돈을 다 잃어 버리는것이다.
셋째는,
미래(未來)를 염려하다가 현재(現在)를 놓쳐 버리고는
결국 미래도 현재도 둘 다 누리지 못하는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人間)은 절대 죽지 않을것처럼 살지만,
조금 살다가 살았던적이 없었던 것처럼 죽는것을 모르고 사니까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신선(神仙)이 선바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선바위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선바위는 나즈막히 말했다.
그러면 인간들이 꼭 알고 살아가야 할 교훈을 신선(神仙)께서 직접 말씀해 주시지요.
신선(神仙)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대개 '사랑한다' 는 말은 하지 아니하여도 그를 지극(至極)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하나는, 어느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는 단지 몇초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지만,
그 사람의 상처(傷處)가 아물기에는 몇년이 걸릴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銘心)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부자는 아주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진것이 적어도 그것으로 만족(足)하며
이웃과 나누며 사는사람이 가장 부자 인것을 꼭 기억해 두어야 한다.
커피 한잔 마시며 처음에는 뜨거워서 못마시겠더니 마실만하니 금방 식어버린다.
인생도 그렇다. 열정이 있을때가 좋을때이고, 식고나면 너무늦다. 커피는 따뜻할때 마시는것이 잘마시는 것이고, 인생은 지금 이 순간에 즐겁게 사는것이 잘사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알때쯤 사랑은 변하고, 부모를 알때쯤 부모는 병들고, 자신을 알때쯤 많은걸 잃는다.
흐르는 강물도, 흐르는 시간도 잡을수 없다. 모든게, 너무 빨리 변하고 지나간다.
우린 항상 무언가를 보내고 또 얻어야 한다.
매일 서로 인사를 나눌수 있는것도 축복인 것이다.
모두 모두 지금 즐겁게 그리고 열심히 사는게 중요하겠지요.
(받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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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백년 전쟁 때 영국의 태자였던 에드워드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지나가는 이여!,
나를 기억하라!
지금 그대가 살아 있듯이 한 때는
나 또한 살아 있었노라!
내가 지금 잠들어 있듯이 그대 또한 반드시 잠들리라,”
유럽을 정복한 알렉산더대왕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거든 나를 땅에 묻을 때 손을 땅 밖으로 내놓아라. 천하를 손에 쥐었던 이 알렉산더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갔다는 것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 위함이다
유명한 헨리 8세의 딸로서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1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훌륭한 정치수완을 발휘해 영국의 왕정을 반석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 역시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짧은 말을 남겼다
“오직 한 순간 동안만 나의 것이었던 그 모든 것들!!”
몇 년 전 시애틀타임스는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여성작가 제인 로터의 부고를 실었는데
이 부고를 쓴 사람은 바로 작가 자신이었다
그는 삶이란 선물을 받았고 이제 그 선물을 돌려 주려 한다면서 남편에게 쓴 유언에
“당신을 만난 날은 내 생에 가장
운 좋은 날이었다”고 전했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고 살아있는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이 감동을 준다
중국의 동산 선사는 살아 있을 때는 철저하게 삶에 충실하고 죽을 때는 철저하게 죽음에 충실하라고 가르쳤다
그가 죽기 전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이생은 멋진 여행이었다
다음 생은 어떤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 밖에도 많은 묘비명이 있지만
제일 쇼킹한 것은 버나드 쇼 (1856~1950)의 묘비명이다
그는 1950년 사망할 때까지 극작가·평론가·사회 운동가 등의 폭넓은 활동을 하면서 192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이
“저와 같이 뛰어난 용모의 여자와 당신처럼 뛰어난 자질의 남자가 결혼해 2세를 낳으면 훌륭한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며 구혼의 편지를
보내오자
버나드 쇼는 “나처럼 못생긴 용모에 당신처럼 멍청한 아기가 태어날
수도 있지 않겠소”라며 거절했다
이렇게 오만함과 익살스러움으로 명성을 떨쳤던 버나드 쇼는 94세까지 장수하며 자기의 소신대로 살았다.
하지만 그가 남긴 묘비명이 충격적이다.
“내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는 동서양에 걸쳐 명성을 떨치고 의미 있는 삶을 살다간 문인이요,
철학자며 노벨상까지 받은 인물이다.
이런 사람이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며 우물쭈물했다고 자평한 것이다.
그도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았다고 후회했을까?
앞으로 남은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갈 것이다
남은 생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누군과와의 비교하지 않은 나만의 삶
인생 2막!!
한 번쯤 되뇌이며 성찰하고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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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다 림
어느 해 봄, 히말라야 산 밑 작은 마을에
젊은 서양 여인 한 사람이 찾아들었습니다.
마을의 한 여관에 숙소를 정한 여인은
곧장 마을 앞의 계곡으로 내려가
큰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는
말없이 산 위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녹은 눈과 흙이 섞여 탁하게 흐린 물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며 어둠이 내릴 때까지 석고상처럼 앉아 있던 여인은
사물의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어두워질 때쯤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한 곳에서 계곡물을 바라보며
그해 봄과 여름을 보내고는
눈이 내리고 다시 물이 얼어붙기 시작할 때쯤 그녀는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봄,
산 위의 얼음이 녹기 시작할 무렵
마을을 다시 찾은 그녀는
같은 계곡의 바위 위에 앉아
물끄러미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여름까지 지내다가
눈이 내리기 시작할 때쯤
마을을 떠났습니다.
여인의 이러한 행동은 해를 반복해
백발이 되고 허리가 굽어질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어느날,
이젠 흐려진 눈으로
계곡 아래를 바라보던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미친 사람처럼 정신없이 내려가
물줄기사이 바위틈에 걸린
새파랗게 젊은 청년의 시신을
품에 안았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히말라야로 등반을 떠났다가
조난으로 얼음 속에 오랫동안 파묻혀있다가 얼음이 녹으면서 떠내려온
그녀의 옛 약혼자였던 것입니다.
우화인지 실화인지,
히말라야 산 밑 어느 마을에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는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 <샘터>라는 잡지의 뒷 표지에 올라있던 내용입니다.
현실적으로 쉽게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기다림'이라는 추상어(追想語)가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로
그려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조난사고로로 세상을 떠난
젊은 시절의 약혼자를 그리며
평생을 기다린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가끔 이 이야기가 떠오를 때면
'기다림'이라는 명제(命題)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합니다.
사람이나 어떤 사물에 대한 기다림은
그 자체가 지닌 수동적이며
소극적인 의미때문에
오늘날처럼 적극적인 생활자세가
요구되는 세태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삶의 태도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이
오직 적극적인 생활 자세로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때때로 한 발 물러서서 지나온 과정속에
쏟아 부었던 노력의 결실을 기다리며
삶을 관조하는 여유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가톨릭에는 '피정(避靜)'이라는
신심과정이 있습니다.
이는 '피세정념(避世靜念)'의 줄임말로 '세상을 피해 마음을 고요히 가짐'을 의미하지요.
이 피정의 영어 'retreat'는 '
한발 뒤로 물러섬'의 원의(原意)를
지니고 있습니다.
미국의 강철 왕
'앤드류 카네기'의 사무실에는
갯벌에 걸린 한 척의 배 그림이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비록 지금은 썰물이어서
배가 뜰 수 없지만,
언젠가 바닷물이 가득 밀려오면
배가 그 위에 떠서 드넓은 대양으로
항해해 나갈 수 있을 것이고,
그때를 기다리며 자금의 어려움을
참고 이겨낸다는 의미가
그 그림 속에 담겨 있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적극적인 삶으로 한 분야에서
제 일인자가 되고자 했던 카네기에게
이러한 기다림의 철학이 있었다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가
크다 하겠습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에 얽힌 고사는
나무 유명하여 새삼스럽게 그 뜻을
부연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려운 일이나 기쁜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새롭게 전개될 일들을
조용히 기다리는 변방 노인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할 생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새옹(塞翁)'이 가르쳐 준
'기다림의 지혜'를 인용하여
'희회기(熙晦機)'라는 중국 원나라 승려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지요.
"인간사 길흉화복은 새옹지마 같으니
(人間萬事塞翁馬),
퇴침헌에서 빗소리 들으며 잠이나 자려네.
(退枕軒中聽雨眠)."
그것이 젊었을 때
조난당한 약혼자이든,
사업의 번창이나 세속적인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든,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가끔 한발 뒤로 물러서서 바라는 것들을 조용히 기다려보는 자세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쉼 없는 노력과 쟁취를 향한 투쟁만이
우리의 삶을 성공과 행복으로
이끌어 준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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