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체같은 뻐꾸기의 습성
두견새라 불리우는 뻐꾸기는 여름새로 분류되는 조류입니다.
뻐꾹 뻐꾹 하는 두견새의 울음소리는 한적한 산골에서 들으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런데 뻐꾸기의 습성을 알게 되면 이 새는 더욱 흥미를 가지게 하는 조류입니다.
뻐꾸기는 아프리카와 동남아 지역에서 겨울을 나는 새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주로 5월 중순에 와서 7-8월에 떠나가는 철새입니다.
뻐꾸기는 자신의 새끼를 키우지 않고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탁란성 조류입니다.
그런데 뻐꾸기가 자신의 알을 낳아서 넣어 두는 새집은 "붉은머리 오목눈이"나
"딱새"둥지라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 새들이 낳은 알 틈 바구니 속에 자신의 알을 은근슬쩍
넣어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붉은머리 오목눈이나 딱새가 뻐꾸기알을 부화 시키면
뻐꾸기는 다른 알들이나 다른 새끼들을 둥지에서 떨어뜨리고 혼자서
둥지를 차지하고 자신을 부화 시켜준 새에게서 먹이를 받아먹으며 자랍니다.
흥미로운 점은 뻐꾸기가 자신의 둥지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두견새는 우리나라에 머무르는 3개월이 채 되지 않는 기간 안에 짝짓기와
번식을 동시에 다 해야 하기에 자신만의 둥지를 지을 시간이
없음을 본능적으로 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수컷새가 망을 보는 틈을 타서 빈 둥지에 알을 슬며시 가져다 놓는
일면 파렴치한 행위를 한다고 합니다.
석달안에 새끼 뻐꾸기를 낳고 길러서 함께 동남아나 아프리카로
장거리 귀소 길에 오르는 두견새의 습성을 우리는 본능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갓 태어난 새끼 두견새가 둥지안의 다른 알이나 새끼들을 잔인하게 밀어내거나
깨뜨리고 자신만 살아남는 생존 습성은 교육이나 가르침의 결과가 아닌
유전 인자 속에 심겨진 신비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신앙을 말하면서 자신의 종교를 무교나 무 신앙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사람의 내면속에는 어떤 형태든지
신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예컨대 양구군 해안면을 다녀간 사촌은 국내에서 가장 큰 분지로 알려진
해안을 둘러 보며, 이러한 분지가 형성된 과학적 근거로 옛날에
하늘에서 대형 운석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말을 들으며 내심 가설에 불과한 설명이지만 그러한 설명에
아무런 의심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현대인들의
이성 역시 특수한 믿음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동물들이 살아가는 행동 습성들을 본능이라는 단어로 정당화 시키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뻐꾸기의 번식 행위는 창조주의 신비 영역에 해당된다 하겠습니다. 자연과 동물속에 깃든 하나님의 신비와 능력을 하나님께서는 자기의로 가득차있던 욥이라는 인물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내용이 구약성경 욥기 38장부터 나옵니다.
그중에서도 들나귀나 타조, 매 ,독수리를 예로 들면서 그들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합니다.
나아가 욥기 40:6절 부터 하나님께서는 욥으로 하여금 침묵할 수 밖에 없도록
하는 질문을 합니다.
6.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7.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겠으니 내게 대답할지니라
8.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9.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천둥 소리를 내겠느냐
10. 너는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며 영광과 영화를 입을지니라(욥기 40:6-10)
이렇듯 우주와 자연의 운행과 신비에 대하여 창조주 하나님께서
욥에게 물으시자 결국 동방의 의인이라 불리웠던 욥은 하나님 앞에
굴복하게 됩니다.
1. 욥이 야훼께 대답하였다.
2.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지 이루십니다. 3. 부질없는 말로 당신의 뜻을 가린 자,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영문도 모르면서 지껄였습니다.(욥기 42:1-3), 공동번역)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알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세계 곧 자연을 관찰하면 하나님의 신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20)
두견새의 얌체같은 습성을 보며 이해할 수 는 없지만 자연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속성과 일하심을 음미해보게 됩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