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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신 바리톤 토마스 크바스토프( '(Thomas Quasthoff, 1959~)는 ‘작은 거인’으로 불린다. 1988년 ARD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후 바리톤으로서 30여장의 앨범을 발매했고 독일 에코 클래식상을 6번, 미국 그래미상을 3번 받았다.
크바스토프는 독일 하노버 근처의 힐데스하임에서 장애를 지닌 채 태어났다. 임신중인 어머니가 입덧을 완화하려고 먹었던 ‘탈리도마이드’ 부작용 때문이었다. 그는 132㎝의 키에 손가락은 일곱 개뿐이다. 두 팔은 어깨에 붙은 것처럼 아주 짧다.
그런데 그의 곁에는 영혼의 동반자’로 함께 살아왔던 형 ‘미하엘'이 있었다. 어린 토마스가 ‘난쟁이’라고 놀림받거나 누군가의 주먹에 얻어맞았을 때, 어디선가 미하엘이 바람같이 나타나서 ‘그 놈’을 흠씬 두드려팼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토마스의 집은 음악적 분위기가 지배를 했다. 어머니는 피아노를 쳤고 아버지는 아마추어 성악가였다. 재즈를 좋아한 형 미하엘은 지하실에서 클라리넷과 색소폰을 연주했고, 토마스는 윗층에서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를 노래했다. 이 ‘음악적 환경’은 장애 때문에 음대 입학을 거절당했어도 그가 음악을 계속 공부할 수 있었던 토대였다.
그는 소프라노 카를로테 레만을 찾아가 매주 20마르크를 부엌 식탁에 올려놓고 레슨을 받았다. 그러면서 형과 함께 재즈 바에서 연주하고 노래했다. 돈을 벌기 위해 힐데스하임 은행에서 일하거나 NDR방송국 성우를 하기도 했다. 부드러운 바리톤 음성으로 라디오 뉴스를 진행했다.
일주일에 절반은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성악 공부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마침내 1988년 ARD콩쿠르에서, 음대에서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유일한 참가자였던 그가 우승했다.
소울 메이트였던 형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크바스토프 2012년 은퇴를 선언했다. 현재는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악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크바스토프는 스스로를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말했다. ‘자신에게 늘 진실하십시오. 자신이 아닌 어떤 사람의 모조품이 되지 마십시오. 눈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발자국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Stay true to yourself. Don’t be an imitation of someone else. I have to make my own footsteps in the snow).
+ 자기가 자기에게 절망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우리를 실망시킬 것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룬 것이나 다른 사람이 목표가 되면 그것을 이룬다하여도 그것은 자기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발자국이 있습니다. 자신 만을 발자국을 만들기 위해 자신에게 진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다면 그 자체가 최고입니다. (문병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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