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있는 신자들
갈수록 옳은 말 하는 이들이 무서워집니다. 그분들은 말합니다.
교회는 ~해야 건강한 모습이라 합니다.
또한 성도의 삶은 ~ 해야 한다 합니다.
나아가 바른 목회자의 모습은 이러 이러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들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왜 일까요?
최근 거창한 타이틀을 가진 분이 한국교회의 문제점에 대해 쓴 소논문을
우연하게 인터넷에서 발견하여 훑어 보며 들었던 느낌입니다.
기독교 인터넷 매체 중에도 구구절절 맞는 이야기로 한국교회를
평가하는 곳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목회자로서 교회를 향한 애정이 있기에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면 반사적으로 반응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살아갈수록 제일 간단하면서도 쉬운 것은 말로서 지적하는 것이라 여깁니다.
그런데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분이 기뻐하시는 성도와
목회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하지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신학교에서 학문적으로 배운 교회론과 현장에서 경험하게 되는
교회의 모습에서 느끼는 간극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학자들과 제 삼자들은 이론이나 논리적으로 바른 교회상을 정의하면 되겠지만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현장인의 고뇌는 깊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동일하게 강단에서 목회자가 외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도 동일할 것입니다.
총성없는 전쟁터 같은 세상살이 속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구현해 내어야 하는
신자들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일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참 그리스도인의 표지[標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듣는 것에서 부터
시작됩니다.(요10:3)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과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같은 의미로 사용됨을
복음서를 통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최근 유튜브를 통하여 알게 된 어느 시어머니가 암 투병하는 며느리에게 보낸 편지는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 또는 신자의 신자 됨은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는가를 통하여 드러나게 됨을
보여주는 영상이었습니다.
사연의 주인공은 71세의 할머니로서 양원주부학교 1학년 과정을 다니는 분이라 합니다.
< 사랑하는 며느리에게
며느리 아가야! 오늘은 몸과 기분이 어떠하니? 지금도 변함없이 힘을 내고
웃는 얼굴 보여줘서 너무 짠하고 고맙구나.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믿는 이 시에미의 맘이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구나. 암과 투병하는 너의 맘은 오죽하겠느냐마는 너를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오히려 용기를 주는 네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구나.
같이 기도원에서 이틀을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매달리는 너의 애절함을 어찌 글로
표현하겠느냐마는 그래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시어미는 네게 고맙고 감사할 뿐이란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시고 학교에 가세요. 전 괜찮을 거에요 어머니 학교는
꼭 빠지시면 안돼요. 절 봐서라도 열심히 공부 잘 하셔서 꼭 우등상 타셔야 해요”
이것이 네 마지막 소원이 아니길 바라며 울면서 학교에 왔단다.
이 시어미가 상타는 것을 네게 보여주고 싶단다. 같이 얼싸안고 울며 웃으며
그 때 기쁨을 맛보기를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매달릴 거란다.
너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너를 위해 기도하고 매달리고 있음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또한 유석이가 속타는 마음으로 너를 바라보며 가슴을 부여잡고 아내를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모습과 초췌한 얼굴로 이리 저리 오고가는 모습에 안쓰럽고 안타깝지만
한편으론 네게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견하기도 하구나.
누구보다 답답하고 아득함은 너만 하겠냐만 네 믿음이 그만큼 성장한 모습에 행여나
내가 믿는 주님이 주시는 시험이 아닌가 하는 희망도 걸어본단다. 그렇게 믿자꾸나
그래서 이 시험을 잘 이겨내보자꾸나.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들때 오히려 너의 믿음으로 이 못난 시어미를 위로하며
안정시켜주는 네 모습은 정말 주님 보시기에도 장하고 장하며 꼭 승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구나.
오늘 새벽에도 네 이름을 부르며 목사님과 전교인이
주님께 간절히 아니 간곡히 울며 불며 통성으로 매달렸단다.
사랑하는 지연아, 엄씨 가문과 오씨 집안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리라 믿자.
“할머니 내가 너무 많이 먹어서 엄마 젖이 아픈거야” 네 목숨과도 같은
그 어린 현택이가 7살 밖에 안됐는데 이렇게 물을 때 마다 너무 가슴이 시리면서 아프구나.
우리 현택이를 생각해서라도 힘을 내자꾸나. 힘내서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 보자꾸나.
지연아 우리 사랑하는 며늘 아가야 너희 세 식구들 너무 예쁘고 아름다운데
어느 누구도 너희 가정에 침범 못한다. 그 예쁜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
지켜 나가 보자.
우리 모두가 기둥이 되어 줄꺼다 사랑한단다.
정말 정말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수백번을 써도 부족할 정도로 사랑한단다.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쓰기가 힘들구나 사랑한다 지연아.
널 목숨같이 사랑하는 시어미가>(출처:유튜브 룸바조에서 인용)
교회안의 젊은 여성들이 기피하는 시댁이 교회 중직자 가정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주님을 믿고 사랑한다는 말은, 곧 주님께서 사랑하신 이들을 나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나아가 주님께서 맡겨주신 공동체 구성원을 품어주고 보듬어주는 역활을
감당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주께서 나를 아심을 경험할 때 온전히
나를 앎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책임감 있는 말과 행동은 우리말을 들으시고 기록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말3:16)
품격있는 신자의 출발점이지 않을까요?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구구절절 가슴이 메이고 또
감동입니다
질병으로 고비를 수차 넘긴 시련을
겪은 사람이라 더 절실하게 온 몸으로 느끼며 읽었습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아멘,,,,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