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에도 색깔이 있다고?
우리 역사에 치욕적이고 굴욕적인 대표적 사건이라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삼전도와 을사늑약이 그것입니다.
삼전도의 치욕이란 병자호란 당시 인조임금이 청나라의 황제 칸에게
삼전도에서 행한 항복의식을 일컫습니다.
칸의 항복 권유 서신을 남한산성에서 받은 조선의 반응을 잘 보여준 일화가
김상헌과 최명길로 드러납니다.
척화파의 거두인 김상헌은 서신을 찟었지만, 주화파인 최명길은
“그대는 찢으시오 나는 맞추리니”라며 명분을 넘은 실리를 택하는
우국충정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오늘날 조국의 정치인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의 김상헌과 최명길 같은 큰 어른들을 느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최명길은 1642년 청나라의 수도 선양으로 끌려가 김상헌이 갇혀 있는
감옥 옆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2년 동안 모진 고초를 겪은 끝에 김상헌과
함께 풀려났다.
청나라는 그들이 풀려날 때에 청나라 황제가 있는 쪽을 향해 절을 하라고 강요했다.
김상헌은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끝내 절을 안 했지만
최명길은 서슴없이 절을 했다.
척화파와 주화파,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감히 한마디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외침(外侵)을 당하면서도 명분만을 중요시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이요,
국력을 기르지 않고 기개만을 떠들어 보아야 나라를 파멸로 이끌 뿐이다.
최명길이 택한 굴욕은 실리 외교 때문이었다. 김상헌과 최명길은
볼모로 잡혀갔던 이국 심양 땅에서 극적으로 화해한다.
두 사람 모두 종묘와 사직을 구할 일념으로 충성을 다했다는 본심은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선전후화론(先戰後和論) 즉 먼저 싸운 뒤
나중에 화의를 하자는 김상헌이나, 선화후전론(先和後戰論)
우선 화의를 해 위기를 넘기고 나중에 싸우자는 최명길은 방법은
서로 달랐지만 목표는 같은 셈이었다.>
(출처: 오소재 민박 강병진 카카오스토리 글 일부 인용)
뚱딴지 같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교회 안을
들여다보면서도 같은 생각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대의를 내세우면서도, 자신과 생각이 다르고
방법이 같지 않으면 등을 지려는 이들을 만나게 되면 떠올리는 생각이
김상헌과 최명길입니다.
분명한 점은 사익이나 탐욕이 아닌 공익을 추구하는 공동체에는
찢는 이도 필요하고, 찢어진 문서를 맞추는 이도 필요한 법입니다.
미주 장신대 총장이신 이상명 박사의 “성서 인물에게서 듣다(홍성사)”에는
복음주의 영성 센터의 설립자인 게리 토마스의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를
9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1. 자연주의 영성- 야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형
2. 감각주의 영성- 오감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형
3. 전통주의 영성- 의식과 상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형
4. 금욕주의 영성- 고독과 단순성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형
5. 행동주의 영성- 참여와 대결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성
6. 박애주의 영성- 이웃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형
7. 열정주의 영성- 신비와 축제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형
8. 묵상주의 영성- 사모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형
9. 지성주의 영성- 생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형
영성이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 임재에 응답하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체험이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삶과 잇닿아 있는
주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성이 깊은 사람은 타인에게 깊은 울림과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밖에 없음은 당연지사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우리는) 9가지의 영성 색깔 중에서
어느쪽에 해당될까요?
그리고 나와 다른 색깔을 지닌 이들을 얼마나 포용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을까요?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