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는 다 기억해
2022.10.04
어둡고 찬 공기 속에서
오랜 날을 보낸 자전거는
햇볕이 그리웠어.
쉬이이휘익
주인 할아버지 눈썹을 닮은
하얀 벚꽃잎 하나가
바람을 타고 오면
아, 봄이구나.
투둑투둑 내리는 비에
마을 개천의 바위에 낀
이끼 냄새가 느껴지면
그렇지, 여름이야.
탁! 탁! 떵떠러러러렁!
잘 자란 도토리들이 드디어
가지에서 낙하를 하네
지붕 위로 여럿이 안착하는 소리가 들리면
알아, 가을이 왔다는 것.
“할머니! 유리 왔어요!”
도토리들이 자유낙하를 하면
자전거는 미리부터 설레.
가을이 왔다는 것, 그것은 네가 온다는 소식이니까.
너는 창고 문을 열어
자전거는 드디어 햇볕을 보지.
너무나 보고 싶었어.
햇볕, 그리고 그보다 더 따사로운 네가.
네가 오면 자전거는 너무나 신이나.
신이 나서 더욱 빠르게 빠르게 바퀴를 굴려.
그렇지만 앞서갈 순 없어.
너와 속도를 맞춰야지.
자전거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와 발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야.
따릉따릉
네가 딸랑이를 누르면
자전거는 기억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달리던
주인 할아버지의 콧노래를
마을 개천에 비치던 노을을
따르릉따르릉
자전거는 또 기억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네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의
달콤한 내음을
따르릉따르릉
자전거는 또 기억해
네가 처음으로 마당에 핀
꽃을 잔뜩 꺾었던 날
손에 쥐었던 땀을
따르릉따르릉
그리고 자전거는 또 기억할 거야.
아이였던 네가 자라서 다시 너만한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달린 오늘의 설렘을
자전거는 다 기억해
주인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창고에 넣어두었던
꽤 오래전 그날도
네가 다시 자전거를 찾아 준 날의 반가움도.
자전거는 네가 달렸던 모든 길을
잊지 않을 거야.
-글 신보라 https://brunch.co.kr/@tlsqhfk22
-그림 초자몽 https://www.instagram.com/chojam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