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방법
양재진
엄마가 너무 미웠어요. 어린 시절 작은 상처들까지도 새록새록 생각나 더 미웠어요. 늙으려면 곱게 늙어야지, 컴퓨터 게임이 다 뭐야… 가증스럽고, 밉고, 원망스럽고, 철저하게 뼛속까지 미웠어요.
기름 아끼려고 삼척냉골에서 떠는 것도 미웠어요. 여기저기 아프다는 것도 아주 꼴도 보기 싫었어요. 그러면서도 컴퓨터 게임에 빠져서 휴대폰으로 인증 받아가며 돈쓰는 것도 기가 막혔어요.
다른 집 엄마들은 손주들도 잘봐주던데… 이 핑계 저 핑계로 산후조리 한번 제대로 해주지도 않았던 것도 원망스럽고, 자식들의 부족한 부분을 모두 아빠 탓으로 돌리는 것도 어이없었어요.
컴퓨터게임에 빠져서 나날이 창백해지고 시들어가는 것도 보기 싫고, 틈틈이 빠듯한 살림에서 떼어 용돈을 줘도 모두 쓸데없는 데에 쓰는 것 같아 화가 나고, 또 그러는 내 자신이 한심했어요.
내가 아는 사람들마다 만나기만하면 그들 앞에서 엄마를 헐뜯고 증오를 품었어요.
얼마 전 진저리쳐지게 잠이 오질 않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깊은 상념에 정신은 한없이 또렷해지던 그 날 밤에, 입술을 깨물며 결심했어요. 무슨 수를 내야겠다고.
엄마가 보는 앞에서 망치로 컴퓨터를 자근자근 조각내야지, 인터넷 선도 조각조각 잘라버리고 집어던지고, 디지털기기에 대해 무지한 아빠에게 엄마가 이렇게 해서 전화비며 돈이며 쓴다고 얘기하고 감시하게 해야지…
어떤 모녀지간이건 그 미묘한 갈등은 모두 조금씩 안고 살아가지만, 최근에 컴퓨터 게임에 빠진 일로 인해 우리 엄마와 나의 갈등상황은 절정에 치달았고, 모든 원인은 컴퓨터라는 상자 때문인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가슴은 더 방망이질해댔고 잠은 오질 않고, 머릿속은 차가운 얼음물에 담가 놓았던 것처럼 더 맑아지기만 했습니다.
옆에서 잠들어있는 막내 영은이와 하루의 고단함과 그간의 피로가 담겨진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나를 불편해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살그머니 거실로 나왔습니다.
널려진 장난감과 책들을 정리하고 바닥을 걸레질하고,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검색창에 「컴퓨터 중독 치료법」을 쳐봤습니다. 이런저런 관련 글들이 나왔지만 딱히 시원한 답은 없었습니다.
다시 컴퓨터를 끄고 멍하니 앉아 액자 속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틀렸어, 틀렸어. 그건 아니야!”하는 음성이 들립니다. 그러면서 순식간에 종이에 물감이 번지듯, 헝클어진 퍼즐조각이 맞춰지듯, 생각들이 마구 떠오르며 알아서 정리를 해줍니다.
『엄마는 외로운 거야. 네가 미워하니까 더 컴퓨터에 매달리는 거야. 엄마는 따뜻한 위로가 필요해. 안아주고 다독여줘. 22개월 영은이랑 똑같아. 네가 엄마한테 사랑이 갈급한 만큼 엄마도 그래.』
그래, 일단 부모님 집부터 따뜻하게 해드려야 될 텐데… 하지만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으로 아이들 셋을 가르치고 먹이고 입히기도 벅차고, 더구나 3월 새 학기땐 웬 돈이 그리 많이 필요한지…
그때 번뜩 스치는 생각, 영은이 돌 반지가 생각났습니다. 최근 치솟는 금값을 바라보며 아끼고 아껴두어야지 했는데…
잠시 갈등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래, 영은아. 네가 엄마 대신 효도해주렴.’
그렇게 잠 못 이루던 밤은 지나고 새날이 되고,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자잘한 일들을 처리하고는 금은방에 전화를 해서 금 시세를 알아보았습니다.
영은이 것이랑 가은이 때 것이랑 모아보니 4돈 정도 되네요.
그걸 팔아 친정에 갔습니다.
여전히 얼음장 같은 썰렁한 집안.
주유소에 전화해 기름을 배달시켜 두 드럼 꽉 채워드렸습니다.
잠시 외출했다 들어오신 아빠가 눈물짓습니다,
고맙다며… 금세 밝아지는 엄마아빠의 표정…
미지근하게 덥혀지는 방바닥만큼 제 마음도 따뜻해집니다.
아빠가 말씀하십니다.
“내가 늙고 몸은 아프고, 수입은 없고 집은 춥고… 그거 걱정하느라 속을 썩이니 네 엄마가 그러더구나,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말랬는데 왜 그렇게 고민하냐」고… 그래서 「그것도 내가 벌 때 일이지」했더니 네 엄마가, 그럼 기도를 하라고, 구체적으로 기도하라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제가 잠 못 이루던 바로 그날 밤에 아빠는 기도를 하셨답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이렇게 곧바로 응답이 될 줄은 몰랐다며, 아빠는 은혜를 받으셨답니다.
사랑으로 감싸 안으니 부모님과 저까지 또 여러 사람이 행복해집니다. 사랑 하나로 여러 문제가 쉽게 풀립니다.
그날 매달 말일이 월급날인 남편은 회사사람들과 회식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날 밤 친정에서 저녁까지 먹고 앉아서 놀다가 월급이 입금이 됐는지 전화로 확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돈이 입금이 되어있는 겁니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잘못 입금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남편 왈, 특별 보너스가 나왔답니다. 그동안 지방에서 열심히 일해 줘서 고맙다고 사장님이 특별보너스를 주셨답니다.
부모님 댁에 넣어드린 기름 값보다 더 많은 금액을 주셨습니다. 짜릿한 전율이 흐릅니다.
너무나 행복합니다. 엄마도 기뻐하십니다. 이 얘기를 들은 언니도 하나님께서 두 배로 채워주셨노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내 마음에 천국을 어지럽히는 건 미움이라고 하십니다.
이 일은, 우리가족 모두의 작지만 아주 큰 체험이 되었습니다.
행복합니다. 채워주신 물질도 기쁘고, 마음의 평온함도 감사하고, 정말 부족하고 어리석은 저를 사랑해주심도 은혜스럽고 행복합니다. ♣
월간쪽지 해와달 2008년 4월호 / 주부. 대전. 인터넷 갈릴리마을 글 가족 / 필명: 은스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