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해서 혼났습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가수 전인권 님의 사노라면 이라는 노래의 초반 가사입니다.
인생의 년 수가 늘어갈수록 삶에 대한 이해와 조망이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을 지내보면, 한 해라는 시간과 인생살이에는 닮은꼴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별히 한줄기 소나기가 내리려 할 때의 자연현상은 깊은 사유를 일으킵니다.
쨍쨍 햇살이 내리쬐다가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들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광경을 보노라면 그것이 영원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하늘과 따가운 햇볕이 드러나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오묘함을 절로 고백하게 됩니다.
그런데 인생을 사노라면 이렇듯 흐린 날도 있고, 먹구름과 비바람치는 스산함을 느낄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소나기를 피하고 보면 화창한 햇살의 기운을 받을 때가 대부분입니다.
한 해를 시작한지도 엊그제 같은데, 어느듯 한달이라는 시간도 훌쩍 떠났습니다.
코로나 19가 시작된 이후부터 전염병 창궐 방지를 위하여 시골 마을의 마을회관들도 공식적으로 모임 금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조금씩 모임이 활성화되다가 올해부터는 점심 식사까지도 공동으로 하는 중입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겨울철에 행하던 마을회관 음료봉사 사역 역시 중단되었다가 금년부터 재개를 하고 있습니다.
본 교회는 농한기에 마을회관을 방문하지 않으면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는 마을입니다.
더불어 어르신들의 면면 역시 회관을 찾아가서 뵙게 되면, 여러 가지 점에서 유익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미미한 생강차 한잔이지만 차를 받으시는 어르신들의 표정에서“미안해서 어쩌나”라는 모습이 묻어나옵니다.
설날 밑이지만, 그래도 연휴가 시작되기 전이어서 아내와 함께 생강차를 끓여서 3개 마을의 회관을 찾았습니다.
도촌리 마을은 어르신들이 모이지를 않아서 마산리(마을 뒷산의 모양이 말을 닮았다 하여 마산리라 함)에 가자 생각보다 많은 어르신들이 계셨습니다.
지난주에 비해 거의 배수가 넘는 분들에게 생강차를 대접하는데, 몸이 불편하신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다른분에게 돈을 빌리는 것입니다.
그분 왈“목사님께 신세진게 많아서 뵌 김에 헌금해야 한다”면서 급히 돈을 융통하여 전해주시기에 참 민망했습니다.(참고로 이분은 비신자이시고, 지난해 교회에서 김장하며 한박스를 드렸더니 좋으셨던가 봅니다.)
10여분의 어르신들이 보는 앞에서 헌금을 하려고 빌리는 모습을 보며 받을 수도, 그렇다고 그 마음을 무시할 수도 없는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 귀한 마음만 받겠노라 했더니, 주위 분들이 “그래도 성의로 하시는 것이니 받으시라고” 권하셨습니다.
낯 뜨거운 헌금을 주머니에 넣고서 회관을 나오려고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고 문을 나서는데 할머니 한분이 외출하셨다가 들어오시며 봉투 하나를 전해 주십니다.
“이게 뭔가요?”라 했더니, 지난번 너무 고마웠다며 감사의 표시니 받으라며 아내의 가방에 넣어셨습니다.
년초의 어느 날, 아내와 읍내의 쭈꾸미 식당을 점심때 찾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저희 테이블 옆에 앉아 계신 네 분이 마을 어르신 두 가정이셨습니다.
순간적으로 들었던 생각이 저분들에게 언제 다시 점심을 대접할 기회가 있겠는가 싶어서 그분들의 식비를 계산했습니다.(아마도 그분들에게는 좋으셨던가 봅니다.)
마음 가는 대로 목회자의 입장에서 사랑의 실천을 한 것뿐인데, 봉투에 그날 식사비보다 조금 더 많은 액수를 헌금으로 드리신 그 마음이 저로서도 감사했습니다.
시골 교회 목회자로 살아가면서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게 배웠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하여도, 선한 일 자체로 영혼 구원이 될 확률은 적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받은 자(엡2:10)이기에 의의 병기로 쓰임받아야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비신자들의 심리 속에는 교회가 선한 일을 하는 것은 당연시하지만, 조금이라도 선하지 않는 일에 집중한다 싶으면 비난한다는 사실입니다.
민망한 헌금을 받으며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지상에서 구원의 방주 역할을 감당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씨름해야 할 것들을 이론이 아닌, 삶 속에서 행하며 살아가는 목회자이길 다짐해 봅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