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의 고통
권영심
오늘 구월동을 다녀 오면서 놀랍고도 안타까운 모습을 보았다.
예술회관역에서 버스를 타고 앉아 있는데, 어느 정류장에서 입구가 소란스러웠다. 나는 별 일이 없으면 버스를 타고 운전기사 뒤 쪽 두번째 좌석에 앉는데 오늘도 그랬다. 내가 폰을 보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고개 를 든 것은 기사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아! 뒷 사람이 좀 밀어주든지 아니면 버스타지 마세요! 이렇게 정류장에 서 있으면 안 돼요!"
기사의 이 말에 남자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큰일 날 소리하지 마시요! 이 아줌마 올리려면 두 팔로 껴안아야 하는데, 그랬다간 성추행으로 고발하면 어쩔거요?"
대체 이게 무슨 소리 일까?
나는 일어나서 입구로 갔는데 놀라고 말았다. 출입구를 꽉 채운 젊은 여자가 계단을 오르지 못해 용을 쓰고 있었다. 실제 그렇게 뚱뚱한 사람은 처음 보는가 싶었다.
우리동네에 유명한 비만체가 몇 명 있는데, 그래도 그녀들은 느릴망정 움직임에 그다지 힘들어하지 않았다.
여름에 온 몸에 땀을 흘리면서 입에 아이스크림을 달고 다니는 모습이 안타까웠을 뿐이다.
그런데 이 여인은 버스에 오르지를 못하고 있었다.
양손으로 버스 문가를 잡고 애쓰고 있으나, 입은 옷이 동산같이 되어 보행을 더 방해하고 있었다.
나는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아저씨, 좀 밀어 주세요?. 내가 잡아서 힘을 줄테니까요."
내가 여자의 한 손을 잡고 남자가 두 손으로 밀고 해서 여자는 간신히 버스에 올랐고 헉헉거렸다.
빈 좌석은 일인석 뿐이었는데 그 몸으로 앉기는 불가능했다. 나는 내가 앉았던 이인석에 그녀를 앉게 하고 그 앞에 섰다.
얼굴과 목이 옷에 파묻혀 정말이지 동산만 했다. 무거운 몸에 옷까지 엄청 부피가 커서 현실의 사람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얼굴이 하애지면서 진땀이 흐르고 숨이 계속 거칠었다. 저혈당쇼크 증상의 하나였다.
나는 백에서 얼른 사탕을 꺼내어 껍질을 까서 다짜고짜 입 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 가까이 대고 소근거렸다.
"어서 씹어서 삼켜요. 당뇨 환자죠? 지금 저혈당 쇼크가 오는 것 같아요."
사탕을 씹으면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 그렁했다.
그때 기사의 화난 목소리가 또 들렸다.
"아줌마! 아줌마는 버스 타면 안 되요! 내릴 땐 또 어떡하냐구요?
어디 내려요? 빨리 가족에게 전화해서 정류장으로 나오라고 하세요?"
기사를 나무랄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릴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내가 내리는 곳 네 정류장 앞이었다. 집에 전화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지방에 일하러 가고 엄마는 병원에 자신을 내려 주고 식당에 일하러 갔다고 했다.
나이는 들었으나 기혼이 아니라 미혼이었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나면 택시를 탔는데, 오늘은 멈추는 택시가 없어 마침 버스가 오자 승차할 생각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내릴 곳에 먼저 내려서 그녀의 몸을 잡아 주었고, 그녀는 탈 때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내렸다.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이제 39세라는 나이가 너무 아깝다고!.
죽을 힘을 다해 살을 빼라고 말했는데 그녀의 비만의 원인을 듣고 나는 할말을 잊었다.
9년 전이라면서 보여 주는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어여쁜 아가씨였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먹방 유투브를 시작했으나,
구독자가 시원치 않고 음식값만 많이 드는데다가,
살이 급격하게쪄서 직장도 그만두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죽고 싶다면서 고개를 숙이고 골목으로 느릿느릿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공포스러웠다.
어쩌면 좋단 말 인가...
* 뎃글 : 이 글을 쓴 것은 사월 초의 어느 날이었어요.
그 날은 꽃샘바람이 유난히 쌀쌀해서 마치 초겨울 같았어요.
버스에 오르려 애쓰던 그녀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 합니다.
온 몸이 올록볼록, 손도 마치 풍선을 불어 놓은듯 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는 것까지 도와준 후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눈물을 흘리더군요.
나는 의학적인 도움과 함께 식이요법과 운동을 겸해서 반드시 뺄 것을 몇 번이나 말해 주었습니다.
부모님이 불쌍하지 않느냐고?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해서라도 반드시 살을 뺄 것을 진심으로 부탁 했습니다.
먹방으로 망가진 사람들을 이래저래 여럿 보면서
제발 더 이상의 쓸데없는 그런 방송이 생기지 말기를 바랍니다.
(출처 / 박승배 님의 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