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맞이하는 친구들
바닷가로 내려와 살면서 친구가 생겼다.
십오년 전에 옥계의 해변가로 내려와 작은 집을 짓고 거기서 시를 쓰며 사는 분이다. 바닷가 산책길에서 만나 친구가 됐다. 내가 글을 보냈더니 그가 이런 시를 보내왔다.
‘석양은 끝도 없이 아름다운데 다만 석양이 너무 가까이 있구나’
나이 팔십이 넘은 그의 감상인 것 같았다. 아름다운 글이었다. 노년에 만났지만 진정한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영혼의 친구인 것 같다.
또 다른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지리산 자락에 낡은 집을 구해 십이년간을 참선수행을 하고 명상을 하며 지내는 분이었다. 그는 차박을 하면서 전국을 흐르기도 한다. 그가 보낸 카톡 내용은 이렇다.
‘어떤 남자가 주차장에서 멋진 차를 타려는 순간 노숙자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차가 멋지네요
남자가 말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세요?
노숙자는 이렇게 되물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요?’
도를 닦는 사람의 의미있는 메시지였다.
삼년전 그가 쓴 수필집을 보고 찾아가 만났었다. 그리고 친구가 됐다.
나는 새로 생긴 노년의 친구들과 영혼을 교류하는 게 즐거움 중의 하나다. 그들의 겉모습만 보고 팔자 좋다고 경솔히 판단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 분들은 평생 깨끗한 노동으로 감사한 밥을 만든 사람들이다. 가족에 대한 의무도 성실하게 수행했다. 정년퇴직을 한 후 자기를 찾아 산속이나 바닷가로 가서 사는 분이었다.
나는 또 다른 친구들이 생겼다.
나는 거의 매일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린다. 탈랜트나 배우들이 아름다운 얼굴을 화면에 올려 세상에 알리지만 나는 글이라는 도구로 세상에 마음을 전한다. 그것은 동시에 세상에 말을 거는 행위이기도 하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속 깊은 얘기를 글로 보내온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한 적은 없지만 마음과 마음이 흐른다. 그 분들은 노년에 맞이하는 새로운 친구가 아닐까. 나는 새로운 친구들과 마음을 교류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나는 또 다른 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다.
바닷가에서 나는 진지한 노년의 독서를 한다. 책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소설가, 철학자, 수도사, 정치인등 다양하다. 죽은 지 오래되어 한 줌의 흙으로 남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들은 글로 남아 지금도 나의 마음의 벗이 되고 있다. 친구란 꼭 몸을 가지고 유형적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질문하고 그들은 책 속의 글로 대답한 친구들이 많다.
오늘 아침 혼자 찬송을 부르다가 문득 이런 가사가 가슴으로 다가왔다.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예수도 아주 가까운 친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남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마음을 열지도 못했다. 오히려 꽁꽁 닫아 걸었다. 내게 다가오는 사람도 밀어내는 성격이었다. 사람들이 모여 영양가 없는 잡담을 하는데 끼어 있다가 돌아올 때면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직장에서의 회의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때면 차라리 내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는 게 더 좋았다. 그게 개인적인 성향인 것 같았다. 그런 속에서도 친구는 하늘이 보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그런 친구는 내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 그 모습을 드러 냈다.
내가 경제적으로 힘들 때가 있었다. 돈을 꾸러 다녔다. 오랜 세월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 냉정하게 거절당했다. 여유 돈이 있는 걸 분명히 아는데도 내게는 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그의 친구가 아니었던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때 별로 친한 것 같지 않았는데 선뜻 돈을 꾸어준 사람이 있었다. 또 아파트의 옆집에서도 아뭇소리 하지 않고 돈을 빌려주었다.
내가 모략을 당하고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하이에나 무리같이 모두 나의 파멸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위기에는 적들이 자신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때 한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나를 구해줬다. 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희귀병에 걸려 고생할 때가 있었다.
중동지역에 갔다가 독충에 물린 것이다. 대학병원의 전문의도 치료방법을 모르겠다면서 손을 놓았다. 나는 단지 그의 논문의 소재로 호기심의 대상인 것 같았다. 그때 발표된 논문까지 모두 찾아보면서 내게 치료의 길을 찾아준 의사가 있다. 아주 오래전 그가 법망에 들어와 몸부림칠 때 약간 도와준 적이 있는 의사였다.
어쨌든 그런 사람들이 하늘이 내게 보내 준 친구가 아니었을까. 그런 친구들은 교제한 기간의 길고 짧음에 상관이 없었다. 나는 그 때 그 때 하나님이 보내주는 다양한 친구들이 있다. 이해관계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영혼을 교류하는 것은 노년의 즐거움중 하나다.
[출처] 노년에 맞이하는 친구들|작성자소소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