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지게를 진 아이
마포구 현석동
정범태 작가
1960년대
물지게 지어 보셨나요?
전국 어디에도 수돗물 나오지 않는 곳이 없다시피 하니
물이 귀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드물다.
지금은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마포구 현석동 어느 곳
우물가에 여인들이 둘러 서 있다.
자기 차례가 오면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양철물통에 담아 이고 지고 집으로 향한다.
아이가 물통 두개를 물지게에 올리고
일어서려 애를 쓰고 있다.
힘을 모으려고 무릎을 구부리고 허리를 굽혔다.
'그런 시절이 있었지'하고
넘어가려다 보니 여자아이.
플라스틱으로 만든 나비 모양의 머리핀을 꽂았다
"저 물지게는 너무 무거워"
물동이 하나도 들기 쉽지 않은 무게인데...
바닥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
아이의 옷차림은 추위를 견뎌내기엔 너무나 허술하다.
우물가 아낙네들의 옷차림도 다르지 않다.
저쪽 구석의 중3 고1쯤 되는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
낡은 외투 하나 걸치지 못했다.
애를 쓰는 계집아이를 보다가
문득 내 누이 내 어머니생각이 들었다.
이 땅에서 여인들의 삶은 참으로 고단했다.
소학교 입학 전부터 두 세 살 터울의 동생을 들쳐 업고
집안 일을 도와야했던 내 누이 또래 여인들
어려운 집안 살림에 보태겠다고
공장으로 남의 집 식모살이로 떠나야했던 그들.
물동이를 진 아이,
그 사진 속에 그들의 애잔한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누이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한우 님의 페북)